-배기량 기준 조세 개편, 동상이몽 제각각
대통령실이 자동차세 개편을 권고한 이후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배기량 기준으로 과세하다 보니 1억원이 넘는 전기차의 자동차세가 2,000만원 정도의 배기량 1,500㏄보다 많고 비싼 가격이라도 저배기량 HEV 방식이면 100% 내연기관보다 세금이 적은 탓이다. 살 때는 재산을 구입하는 것이어서 가격 기준으로 세금을 납부해 이견이 없지만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동차세는 그야말로 다양한 항목이 반영될 수 있어 벌어지는 현상이다.
현재 방식은 ‘재산 가치’와 배기량을 기준 삼는데 자동차세는 보유 및 운행 단계의 세금이라는 점에서 ‘재산 가치’ 뿐 아니라 ‘도로이용’, ‘환경’, ‘에너지’, ‘탄소 배출량’도 들어갈 수 있다. 심지어 완성차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도 ‘운행’이라는 큰 개념 안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각 항목의 관점으로 보면 기준은 다시 세분화된다. 도로이용 측면에선 하중 부담을 감안해 자동차의 무게를 세금 기준으로 삼을 수 있고 에너지 관점으로는 전기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탄소 배출량을 기준하면 운행 중의 배출만 넣을 수도 있고 완성차 제조에 필요한 모든 부품의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기준할 수도 있다. 전자를 감안하면 전기차는 무탄소가 되고 내연기관은 탄소 과다 배출로 세금을 더 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선택해도 자치단체는 자동차세의 세수 감소를 원하지 않는다. 설령 세입이 줄면 기름에서 부족분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기름에 포함된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럼 다시 국세가 줄어 중앙 정부 재정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골치 아픈 논란을 뒤로 하더라도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은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FTA 체결 때 배기량 기준 조세 제도는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설령 미국과 재합의를 통해 개편해도 대체 무엇을 기준 삼느냐에 따라 모든 이해 당사자의 유불리가 결정된다. 여기서 이해 당사자란 자동차를 보유한 국민, 같은 국민이라도 수입차와 국산차 보유자, 친환경차와 내연기관 보유자, 배기량이 큰 차와 작은 차 보유자, 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입장이 모두 제각각이다. 어느 누구할 것 없이 전제는 자신들의 부담은 늘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 그러면서도 친환경차 보급은 늘려야 한다. 하지만 친환경차 등록이 늘어날수록 전체 자동차세의 정부 수입은 감소한다. 다시 말해 특정 이해 단체의 부담 증가 없이 세제를 개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정부가 세금을 감면하거나 늘리면 누군가는 부담이 발생하지만 혜택을 보는 쪽도 있다. 그래서 자동차 개편은 한 마디로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자 내연기관은 ‘가격+탄소 배출량’, 친환경차는 ‘가격+중량’으로 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제도를 그렇게 바꾸면 제조사는 배기량 축소를 지향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이때 세입은 감소한다. 친환경차라면 중량 감축을 위해 배터리 용량을 축소하고 1회 충전 최장 주행거리는 짧아진다. 정부의 보조금이 이를 상쇄할 수 있겠지만 보조금은 해마다 축소돼 영향력도 떨어진다. 결국 제조사는 배터리 용량 축소로 세금 부담을 줄여 구입 저항을 낮추려 한다. 이때 이용자는 충전횟수가 늘어 구매 저항이 또 다시 발생한다. 다시 내연기관이 늘어나 탄소 배출이 증가하면 국가적으로 미래 자동차산업 경쟁력은 퇴보한다.
그래서 최적의 결론은 그냥 도로세 신설이다. 배기량 기준 제도는 그대로 두고 도로세를 세금 기준 항목에 추가하되 내연기관과 친환경차의 부담 차이를 만드는 게 낫다. 물론 내연기관과 친환경차 세부담은 공통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때 친환경차는 감면을 적용해주면 된다. 반면 내연기관은 세 부담은 늘어 친환경차로 수요 이동을 촉진시킬 수 있고 자치단체는 친환경차의 도로세를 통해 내연기관 감소에 따른 자동차세 재정 부족의 일부를 보전받을 수 있다. 만약 도로세를 부과할 때 ‘중량’ 기준을 삼는다면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차등을 두면 된다. 전기차가 내연기관 대비 무겁기 때문이다.
자동차세 문제는 매우 복잡한 방정식이다. 하지만 복잡할수록 단순한 논리가 오히려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배기량 기준 세제는 그대로 두고 도로세를 통해 세입과 국민들의 부담을 조정하면 된다. 한 마디로 100% 내연기관 구매자들과 무거운 전기차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하자는 제안이다. 모두가 만족 가능한 세제 개편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