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LG 트럭"이었던 이스즈 전기트럭
-자동차 생태계 새로운 페러다임 가능성 높여
최근 막을 내린 "2024 인터배터리"에서 이른바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 SDI)"의 인기는 놀라웠다. 꽉 들어찬 인파에 제대로 된 관람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예상보다 더 높다는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눈을 사로잡았던건 유독 북적였던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 부스 구석에 위치한 트럭이다. 우리나라에도 판매되고 있는 일본 이스즈의 준중형급 트럭 엘프가 주인공이다. 이날 공개한 이스즈 엘프 EV의 경우 배터리 셀과 모듈, 팩은 물론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BMS)까지 모두 LG엔솔의 제품이 적용된 최초의 차다. 사실상 LG엔솔의 모든 솔루션을 집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LG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지 않을 뿐 구현 능력만은 충분하다. 배터리와 모터는 물론 디스플레이와 LED 모듈 등 자동차의 주요 부품들을 생산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충전기 시장까지 진입하며 자동차용 전장사업과 모빌리티 인프라 등 미래 먹거리를 키워내고 있다.
LG의 자동차 산업 분야의 핵심은 단연 배터리다. 1992년 럭키금속(LG화학 전신) 주도 하에 2차전지 연구를 시작했고 1995년부터 충·방전이 자유로운 2차전지 양산을 위해 독자개발에 착수한다. 1997년 세계 최대 용량(1800mAh)이자 세계 최경량(150Wh/㎏)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을 시작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LG의 배터리 제조 능력이 입증되기 시작한건 제너럴모터스(GM)와의 협업을 통해서다. 2009년 출시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쉐보레 볼트(Volt)는 물론, 볼트 EV 설계에 깊숙이 참여해 전기차 연구개발 노하우를 축적했다. 양측의 인연은 최근 설립한 배터리 합작법인 "얼티엄 셀즈"까지 이어지고 있다.
LG의 배터리사업부는 2020년 LG화학에서 벗어나 LG엔솔로 새롭게 출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GM을 넘어 폭스바겐그룹,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등 거대 제조사들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고 현대차그룹, 스텔란티스 등과 합작 법인을 결의해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LG엔솔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CATL과 BYD에 이은 3위, 중국을 빼면 2위다.
물론 LG엔솔의 셀을 공급받는 회사는 많다. 그런데 일본의 정상급 상용차 회사가 패키징과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BMS)까지 이 같은 핵심 설계를 모두 LG에 일임했다는 건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소프트웨어를 넘어 파워트레인 분야의 주도권도 IT기업이 잡게 될 수 있다는 상상은 정말 과한걸 지 의문이 간다.
사실 배터리와 패키징, 소프트웨어만의 이야기만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LG전자는 1960년대부터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가전기기용 모터 연구를 시작해 1998년 전력량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인버터 기술 내장 드라이브 모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는 현재의 가전용 전기모터를 넘어 전기차용 구동모터를 제조하는데에도 중요한 노하우로 활용되고 있다.
LG의 모터 기술이 자동차 분야에서 빛을 발한것도 GM과 관련이 깊다. LG는 2015년 GM의 구동모터 공급사로 결정되며 자동차 업계에 처음으로 모터를 납품했고, 이는 볼트 EV에 탑재돼 2018년 워즈오토 선정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됐다. 최근에는 마그나와 합작법인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LG Magna e-Powertrain)을 설립하고 전기차 파워트레인 사업을 본격화했다.
LG가 사실상 배터리와 제어 소프트웨어는 물론, 전기모터와 감속기 모듈 등 전기차 구성요소 대부분의 기술력을 확보한 상황이다. 내연기관 시대의 보쉬와 콘티넨탈이 자동차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듯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는 LG가 이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있을 지 모를 일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