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F1 동력학 엔지니어
-빠르고 정확한 판단 가능한 F1 드라이버
-모터스포츠 통해 자율주행 기술 도움 기대
자율주행 패러다임의 등장은 하드웨어 집약적이던 자동차 산업의 체질을 소프트웨어 융합 산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자율주행의 최종 목표는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완벽에 가깝게 안전한 도로 교통수단을 실현하는 것이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지만 해결책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동차 메커니즘이 아닌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가능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는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신규 인력 채용 트렌드를 보면 더욱 정확히 알 수 있다. 최근 자동차 회사의 R&D 채용 공고를 보면 자동차 회사인지 전자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자동차 R&D 인력 채용 시장에서 하드웨어 중심의 기계 공학 인력 수요는 자취를 감췄다. 반면, 인공지능, 로보틱스, 전자 제어,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 수요는 폭발적이다.
국내 여러 대학의 기계/자동차 공학과도 더 이상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연구를 하지 않는다. 특히, 전동화 물결의 직격탄을 맞은 내연기관 연구는 기계 공학 분야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아가 자동차 패러다임의 변화, 자본의 흐름에 맞춰 바뀐 결과다. 자율주행이 주도하는 지금의 자동차 연구 및 시장은 소프트웨어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자동차 분야에서 자율주행만큼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영역이 또 있다. 바로 F1을 필두로 한 모터스포츠다. 모터스포츠에서 레이스카 하드웨어 성능만큼 중요한 것이 드라이버의 감각과 지능, 즉 드라이버 소프트웨어다. 모터스포츠는 인간과 자동차의 한계를 동시에 시험하는 극악의 자동차 테스트 베드다.
프로 레이싱 드라이버는 스스로 트랙의 가장 빠른 경로를 찾고 시시각각 움직이는 주변의 충돌 요소들을 예측, 회피한다. 또 레이스카 하드웨어의 여러 성능 한계를 제한된 시간 내에 학습하고 최적의 컨트롤을 유지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F1 드라이버는 시속 300㎞를 넘나들며 레이스카를 성능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이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즉 프로 레이스 드라이버는 인공 지능 드라이버가 넘어서야 할 궁극의 목표나 마찬가지다.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붐은 자율주행 레이스카 분야를 개척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낳았다. 하지만 자율주행 산업의 전체 규모를 생각하면 인공 지능 레이싱 드라이버 (Racing Driver)와 레이스 드라이빙 (Race Driving)에 대한 투자 규모는 매우 작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속도 증가에 따른 안정성이 가장 대두된다. 지금의 수준이라면 자동차 성능 한계선 근처에서 생기는 불확실성까지 자율주행이 처리하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 수준 자율주행 서비스에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고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시속 130㎞ 정도에 머문다. 주행 구간의 곡률이 커지거나 충돌 위기 등 자동차 거동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안전 속도는 훨씬 더 떨어진다. 현재 자율주행 차를 이용한 레이스는 2~대 미만의 레이스카가 서로의 물리적 간섭을 최대한 피하는 간격을 정해두고 랩타임을 겨루는 수준이다. 컨트롤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공격과 방어까지 구사하는 레이스 드라이빙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드라이버를 자동차에서 지워 없애려는 자율주행과 이를 상상할 수 없는 모터스포츠, 이 두 가지 상황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다림이 더 필요할 뿐 기술 개발이 고도화되고 자율주행이 완벽해지는 시점이 되면 인공 지능 드라이버는 선수들이 운전하는 수준의 지능을 품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레이스 드라이빙 정점에 F1이 있기 때문에 분명 자율 주행이 배울 거리가 있다.
F1 드라이버를 탐구한다고 해서 인공지능 드라이버가 레이스 드라이버로 단번에 탈바꿈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극한의 레이스를 가능케 하는 사람의 실력, 이를 수학과 과학적으로 접근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자율주행에 적용된다면 안전성, 효율성, 신뢰성을 보다 완벽에 가깝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F1이 자율 주행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김남호 F1 동력학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