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서 협업 시대로 전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올해 글로벌 시장에 판매될 EV(PHEV+BEV)가 1,700만대에 달할 것이란 예상을 내놨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완성차 판매는 9,220만대다. 따라서 올해 신차 판매 중 EV 비중은 18.4% 정도에 달하는 셈이다. 조사기관마다 신차 판매 예상치가 다르지만 대부분은 20% 정도의 EV 비중을 내다본다.
IEA는 낮은 마진, 불안정한 배터리 가격, 고금리, 인플레이션, 구매 인센티브 폐지로 성장이 둔화되지만 여전히 EV 수요가 많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1,700만대 가운데 중국에 판매될 물량을 1,000만대로 예측했다. 그 이유로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내연기관 대비 EV 가격이 저렴해야 하는데 이를 맞춘 제조사는 중국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국가발전개혁회원회(NDRC)는 올해 중국에 등장할 신차 150종 가운데 EV를 110종 이상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그만큼 규모의 경제가 커져 가격은 더 내려갈 것으로 본다. IEA는 실제 중국에서 지난해 판매된 EV 가운데 약 60%의 제품 가격이 내연기관 대비 저렴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반면 유럽과 미국은 여전히 내연기관 가격이 높다는 점을 지목한다.
그런데 한국도 내연기관 대비 EV 가격이 높은 것은 유럽 및 미국과 마찬가지다. 기아가 EV3를 내놓으며 보급형을 외치지만 준중형급 내연기관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다. 나아가 내연기관 중형 세단보다 높은 경우도 있다. 보조금을 받았을 때 가격이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저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픔이다.
그럼 왜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유는 생산 비용, 특히 인건비가 핵심이다. 1대를 만들 때 투입되는 인원이 같다면 한국의 생산 비용은 중국의 3~4배에 달한다. 실제 폭스바겐은 중국 생산 EV를 유럽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운송비와 관세 등 모든 비용을 감안해도 제조 원가 측면에서 중국 생산이 스페인 공장 대비 절반에 불과해서다.
현대차가 쏘나타 택시를 중국에서 생산, 한국에 가져오는 것도 비슷하다. 생산 비용을 고려하면 한국으로 들어올 때 물류비용 및 관세, 그리고 개별소비세, 교육세 등의 세금 23%를 더해도 국내 생산 대비 이익이 높다는 뜻이다. 설령 이익이 없다면 국내 생산-판매 제품은 손해를 볼 때 중국 생산-수입-판매 제품은 손해가 적거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부에선 조립 품질의 차이를 언급하지만 이미 제조 과정의 로봇 공정이 대부분 동일한 만큼 숙련도에 따른 조립 품질 차이는 옛날 인식이다.
부품 조달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부품기업의 대부분은 완성차회사의 공급에 생존을 건다. 하지만 국내 생산-공급이 중국 생산-공급으로 조금씩 바뀌는 움직임은 오래된 얘기다. 그만큼 공급 가격이 중요한 탓이다. 이미 단순 부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 국내 수입되는데 지난 2000년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시작돼 현지 부품 공장이 멈췄을 때 국내 완성차 공장 또한 멈춰선 게 대표적이다. 완성차에 들어가는 부품기업의 생산지가 중국 우한이었기 때문이다. 부품사로선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에 공장을 세웠고 코로나로 생산이 멈추니 완성차 공장도 가동을 중단했다. 한 마디로 공급 불안이 있어도 원가 싸움에서 중국을 능가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의 인건비가 올랐다고 하지만 아직 국내에 비하면 무척 저렴하다. 그래서 중국 생산을 포기할 수 있는 부품 기업은 거의 없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중론이다.
그렇다고 마냥 두고볼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차의 상황 돌파구로 프리미엄 전략 확대를 조언한다. EV와 HEV, ICE 등을 가리지 않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확대하거나 새롭게 런칭하는 방법이다. 이때 완성차회사 뿐 아니라 글로벌 인지도를 가진 기업과 합작 브랜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현대차와 LG전자가 프리미엄 합작 브랜드를 만들고, 기아와 삼성전자가 손잡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식이다. 생산은 현대차와 기아가 하되 판매는 LG전자와 삼성전자 등의 글로벌 거점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EV 시장의 진입이 ICE 대비 상대적으로 낮고 전자제품 이미지가 입혀지는 시대를 고려하면 오히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중국을 비롯해 일본도 점차 자동차회사와 전자기업이 손잡고 새로운 브랜드 런칭에 나서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