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포르쉐 박물관
-한 눈에 담는 전설적인 포르쉐 스포츠카
-브랜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어
포르쉐 마니아라면 꼭 한번쯤 가봐야 하는 성지가 있다. 바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포르쉐 박물관이다. 브랜드 탄생과 역사적인 모터스포츠 기록, 시대를 빛낸 차들로 가득한 곳이며 방문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에 최적인 장소로 불린다. 전설적인 스포츠카들은 물론 미래 포르쉐의 발전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진정한 원더랜드였다.
2009년 문을 연 포르쉐 박물관은 슈투트가르트 외곽에 위치한다. 정확히는 지난 1976년 20대의 전시가 가능한 620㎡(약 187평) 규모로 첫 문을 열었는데 이후 1억 유로의 비용을 투입해 잠실 야구장 만한 크기의 부지로 확장했다. 또 본사와 공장이 있는 주펜하우젠 지역이며 포르쉐 광장이라고 불릴 만큼 맨 앞단에서 수문장 역할을 한다.
원형 로터리에 들어서면 독특한 건물이 맨 처음 시선을 끈다. 실제로 하얀 바탕에 단 세 기둥으로 떠받힌 박물관 건물은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불쑥 솟은 조형물도 인상적인데 영국의 아티스트 게리 주다(Gerry Judah)가 만든 작품명 ‘인스퍼레이션 911(Inspiration 911)’이 주인공이다. 높이 25m의 기둥 끝에는 역사적인 포르쉐 911 대표 라인업 3대가 올려져 있다. 하늘을 향해 달리는 듯한 모습에서 강한 자부심과 정체성이 드러난다.
1층은 티켓 부스와 함께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샵 등이 있으며 클래식 포르쉐를 복원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투명창도 마련했다. 본격적인 전시 공간은 2층과 3층이다. 새하얀 배경에 장식을 최소화해 관람객들이 자동차와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게 핵심이다. 가장 처음 마주한 차는 1898년식 Egger-Lohner-Elektromobil Modell C2 Phaeton이다. 이름처럼 전기모터를 장착한 자동차로 오늘날 전기차의 원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포르쉐는 1800년대 말부터 이미 전기모터를 장착한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
관람은 역사적인 시대별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페르난디드 포르쉐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해 브랜드의 태동기, 발전과 번영이 순서대로 정리돼 있었다. 포르쉐를 상징하는 차들은 이 같은 노력의 결과물로 당당한 위용을 드러냈다. 실버 바디가 인상적인 356 시리즈는 쿠페와 스피드스터, 카브리올레, 심지어 경찰차 버전까지 폭 넓게 살펴볼 수 있었고 최초의 911과 타르가도 매력적인 자태와 함께 플래시 사례를 받았다. 911은 포르쉐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차다. 그만큼 모터스포츠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당시 활약했던 경주차를 시대별로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중앙에는 917/20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1971년 당시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프랑스 디자인 회사 SERA와 함께 917을 가지고 파격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그 결과 양쪽에 큰 돌출부가 있고 풍성하고 매끄러운 바디 라인의 917 쇼트 테일이 완성됐다. 너비는 기존 917에 비해 24cm 늘어났다.
휠은 휠 아치 안쪽 깊이 숨어 있으며 노즈는 롱테일 쿠페처럼 낮고, 납작한 모양을 갖게 됐다. 여기에 과감한 핑크색 바디 컬러를 적용하고 푸줏간 스타일로 부위별 명칭을 차체에 디자인해 전무후무한 레이싱카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핑크피그"라는 애칭의 917/20은 1971년 르망에 출전해 돌풍을 불러 일으켰고 예선전에서 가장 빠른 레이싱카로 기록됐다.
스프린터 황제로 불리는 935 베이비도 있다. 터보 기술 적용을 통해 배기량을 1,425㏄로 낮췄고 경량화에도 집중했다. 이를 위해 언더바디는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대체됐고 전면부 및 플라스틱 바디 부분은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두르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너무나 가벼워 "베이비"라는 애칭이 붙었다. 이 외에 GT챔피언십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포디움 가장 위에 선 GT1 "98, 르망 24시에 복귀하면서 발표한 프로토타입 레이싱카 919 하이브리드 등이 볼거리를 더했다.
중앙 광장에는 포르쉐의 창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1939년 개발한 "typ 64"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도색 없이 뼈대만 남았는데 커다란 차체와 굴곡만 봐도 주변 분위기를 압도하며 경건해졌다. 한편으로는 오늘날 포르쉐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했다. 참고로 typ 64는 4대 한정으로 생산됐으며 현재는 3대가 소실,전 세계에 딱 1대만 존재한다. 이 외에 농기계는 물론 세계대전 당시 탱크, 비행기 등 군수품 개발에도 참여한 만큼 다양한 문서와 개발 도면 등이 전시돼 있어 흥미를 더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는 실험적인 차들이 대거 등장했다. 924, 928, 968과 같은 이름도 생소한 포르쉐인데 팝업식 헤드램프는 물론 커다란 트렁크를 갖고있고 지상고가 높은 쿠페 모습이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으로 결과가 좋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박물관에서 해당 차들을 보니 무척 신기하고 새로웠다.
1990년대로 들어오니 익숙한 차들이 대거 보였다. 현실적인 클래식 카로 불릴 만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던 차들이다. 이후 200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판매 상승과 브랜드 성장을 이끈 차들이 전시돼 있었다. 파나메라, 카이엔, 카이맨은 물론 911 R, 한정판 터보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차도 있었는데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카(Cars)"로 유명해진 샐리 카레라가 웃으며 전시돼 있었다. 아마도 가장 많은 포토 대기줄이 있던 곳으로 기억된다.
시리즈 전시를 지나자 수많은 트로피들이 사람들을 맞이했다. 3만회 이상 모터스포츠에서 우승했다는 기록과 함께 전시된 각각의 트로피들이다. 중앙에는 르망24시 우승 트로피가 가장 크고 당당하게 있었고 각종 내구레이스와 랠리 등 종류 상관없이 형형색색 훈장으로 가득했다. 하루아침에 얻어질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가치 있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가장 마지막에는 포르쉐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곳이다. 대표 전기차 타이칸이 전시돼 있었고 전동화 파워트레인의 구조를 살펴보면서 기대를 높였다. 현행 911 시리즈의 스페셜 버전도 특별함을 더했다. 곳곳에는 포토존과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를 해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있었고 도슨트 프로그램도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어 여유를 갖고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포르쉐 박물관은 급변하는 흐름 속 새로움으로 가득한 시대에서 헤리티지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한다. 자동차를 향한 끝 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정상의 위치에서 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포르쉐 박물관은 꼭 가봐야 할 버킷 리스트가 분명하며 큰 감동과 깊은 여운으로 전해진다. 관람 비용은 성인 12유로이며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슈투트가르트=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