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 기조 역행은 브랜드 지속성에 발목
-국내 기업, 유연한 제품 대응 및 대체 시장 발굴 필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매년 발간하는 세계 자동차통계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이 미국 땅에서, 미국인의 손으로 만든 자동차는 1,010만대다. 그리고 같은 해 미국 내에서 등록된 신차는 1,423만대다. 단순 계산으로 410만대는 해외에서 수입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은 2022년 264만대를 해외로 수출했다. 따라서 미국은 연간 1,010만대를 생산해 746만대를 미국에 판매하고 264만대를 수출하며, 677만대를 수입하는 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자동차 보호주의를 들고나올 태세다. 극단적으로 264만대 수출을 포기하고 677만대의 수입을 막아도 413만대 생산은 미국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 마디로 1,400만대 전부를 미국산으로 채우겠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실제 수입산의 절반 이상이 멕시코에서 들어온다는 점도 불만이다. 따라서 멕시코산 완성차에 관세를 부과해 수입 장벽을 높이면 미국 생산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멕시코 뿐 아니라 자칫하면 한국, 일본도 대상이다.
그런데 미국이 생각하는 자동차산업 보호는 철저하게 내연기관 중심이다. 오죽하면 트럼프 당선인은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기관인 환경보호국 국장에 환경보호 법안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인물을 지명했다. 리 젤딘(Lee Zeldin) 전 하원의원은 2035년 가솔린차 판매 금지를 반대하고, 하원의원 시절 주요 환경 법안에도 늘 불만을 품었던 인물이다. 환경보다 미국 기업의 힘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환경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다.
여기서 미국 기업의 힘은 막강한 화석연료의 지배력을 의미한다. 결국 미국은 미래보다 점차 기울어지는 내연기관 산업을 미래로 삼겠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EPA의 연비 규제 및 탄소 배출 기준 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심지어는 EV에 대한 세금 감면과 기타 인센티브 축소 및 폐지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캘리포니아주의 독자적인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설정 권한 또한 연방 정부로 이관하겠다는 으름장(?)도 흘린다.
이런 미국의 입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다. 미국이 내연기관의 회귀를 선언한 만큼 친환경차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전망과 미국의 내연기관 집중화는 스스로 친환경차 부문을 약화시켜 미국의 미래 자동차 경쟁력이 엷어질 것이란 시각이다. 실제 GM을 비롯한 일부 완성차기업은 트럼프 2기에서 도입할 친환경차 인센티브 폐지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환경 규제 완화 등은 미국차의 해외 진출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음을 은근히 고민한다. GM이 현대차 등과 손잡은 이유도 결국 미국 정부의 단기 정책을 벗어나 기업 자체의 장기적인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이다.
실제 미국 내 완성차기업 가운데 내연기관의 확대를 반기는 곳은 많지 않다. 있다면 아이러니하게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 정도다. 테슬라는 환경 규제 완화로 거대 완성차기업의 친환경 보폭이 느려지면 테슬라의 전기차 독점력이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내 전기차 점유율이 떨어진 데다 전동화에 미온적이었던 기업들이 구매했던 탄소 크레딧 판매도 되살아 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가치는 지속성에 있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도 당장의 내연기관 판매 증가는 달콤하지만 미래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내연기관 회귀를 선언해도 완성차기업의 친환경차 집중화는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유한한 정치에 무한 지속을 추구하는 기업의 미래를 맡길 수 없는 탓이다. 제아무리 1,400만대 시장을 가진 미국이라도 내연기관 활성화는 오히려 탄소를 규제하려는 다른 국가에 비해 미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로 연결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럼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미국 내 친환경차 생산을 늘리면 된다. 다만, 제품 대응은 유연해야 한다. BEV와 HEV, PHEV 모두 대응 가능한 생산 방식을 가져가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생산-미국 수출’ 물량의 대체 시장 발굴이다. 당장 미국향 수출 물량이 모두 대체되기는 어렵지만 여러 나라로 분산 수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수출이 규모를 떠받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