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디자인, 세련된 구성
-하드코어 성격 가감 없이 드러내
지금까지 기억 속 애스턴마틴은 아름다운 디자인처럼 신사적이고 배려있는 스포츠카였다. 하지만 신형 밴티지를 접하고 난 다음에 편견이 무너졌다. 기본적인 특성은 그대로 간직한 채 완전히 새로운 반전 매력을 드러낸 것. 스릴과 짜릿함이 공존하고 두려움과 즐거움이 함께 어우러진, 말 그대로 오리지널 ‘펀 투 머신’이었다. 한편으로는 요즘 시대에 이보다 거칠고 강한 악동이 또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사람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디자인&상품성
외관은 완성형으로 거듭났다. 비로소 애스턴마틴 패밀리-룩을 맞춘 것. 대표적으로 헤드램프다. 어딘가 모르게 눈과 눈 사이가 멀었던 예전의 밴티지는 잊어도 좋다. 세로 형태의 매우 크고 고급스러운 디테일로 꾸민 헤드램프는 멀리서 보면 DB12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이와 함께 애스턴마틴을 상징하는 거대한 그릴과 주름을 넣은 보닛, 에어 덕트의 위치까지 균형감이 상당하다.
여기에 두툼한 카본 스플리터를 장착해 에어로 다이내믹에도 큰 도움을 줄 듯 하다. 옆은 잘 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4.5m에 달하는 컴팩트한 길이와 2m에 육박하는 너비, 1.2m의 극단적으로 낮춘 높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앞뒤바퀴 사이 거리를 뜻하는 휠베이스는 2.7m로 상당히 늘씬하다. 즉 앞뒤 오버행이 무척 짧다는 뜻이다. 라이벌과 비교해도 길이는 짧은데 휠 베이스는 길어 무척 재미있는 운동신경을 자랑한다.
한껏 부풀린 팬더와 별모양의 20인치 휠, 앞쪽 400㎜ 및 뒤쪽 360㎜의 대구경 디스크, 큼직한 6P 캘리퍼까지 본격 질주를 위한 모든 구성을 갖췄다. 우아하면서도 절제 미를 갖춘 캐릭터 라인과 부드럽게 떨어지는 루프라인, 날카로운 사이드 스커트는 덤이다. 부분 변경답게 뒤는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 기존 밴티지도 훌륭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릴 형상과 유사한 테일램프, 입체적인 트렁크, 과감한 디퓨저와 쿼드 배기 시스템까지 모든 요소가 뛰어나다.
실내는 큰 폭의 변화를 거쳤다. 대칭 형태의 센터페시아와 완만하게 기울어진 센터 터널, 견고하게 맞물린 버튼의 느낌까지 비로소 럭셔리 브랜드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감성 품질로 이어진다.
최고급 가죽과 정교한 스티치, 알칸타라의 합이 상당하며 15개의 1000w가 넘는 바워스 앤 윌킨스 사운드 시스템도 압도적이다. 붉은 빛이 들어오는 애스턴마틴 시동 버튼과 센터 터널에 붙어있는 시트 조절 스위치, 위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올라가는 날개 모양 형상의 도어까지 헤리티지 자부심을 높이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밴티지의 또 다른 특징은 공간에서 나온다. 적어도 라이벌 쿠페와 비교했을 때 가장 다양한 활용 능력을 보여 준다. 센터 콘솔, 글로브박스, 심지어 시트 뒤쪽에 위치한 별도의 칸막이 수납까지 장거리 그랜드 투어러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정점은 트렁크로 향한다. 격벽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모습이며 매우 크고 여유로운 공간을 보여 준다.
▲성능
기다란 보닛 안에는 V8 4.0 트윈 터보 엔진이 들어있다. 최고출력 665마력, 최대토크 81.6㎏∙m를 발휘하며 이전 대비 155마력, 11.7㎏∙m나 높아진 수치다. 이를 바탕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시간은 단 3.5초면 충분하며 최고 속도는 시속 325㎞다. 시작부터 상당히 거친 소리를 토해내며 등장을 알린다. 그리고 시종일관 으르렁거리며 도로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참고로 밴티지에는 노멀 모드가 없다. 가장 순한 맛은 스포츠부터다. 더욱이 기존과 비교했을 때 서스펜션 댐핑 값이 조금 더 단단해졌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한 성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가속페달을 조금만 밟아 봐도 차의 본성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가고 뒤쪽 타이어를 짓이기며 휘청거린다. 힘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가속이며 도로 위 악동으로 변모한다. 짜릿한 속도감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머리가 얼얼하고 하염없이 박수를 치게 된다. 그만큼 혼을 빼놓을 정도의 폭발적인 성능을 갖고 있는 차다.
코너에서는 남다른 즐거움을 전달한다. 바로 밴티지가 갖고 있는 독보적인 기능 때문이다. 가변식 트랙션 컨트롤이 주인공인데, 뒷바퀴 제어를 담당하는 트랙션 컨트롤을 임의로 설정해 미끄러트리는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
총 8단계로 구성돼 있으며 간극이 상당해 각기 다른 차를 모는 것 같다. 일반적인 와인딩 로드에서는 3단계만 놓아도 충분할 정도로 미끄러지는 폭이 크다. 5단계 이후부터는 마음만 먹으면 본격적인 드리프트도 가능하다. 손 쉽게 꽁무늬를 뺄 수 있으며 책임은 오로지 운전자 몫이다.
그만큼 가변식 트랙션 컨트롤을 잘 활용하면 누구보다 재미있고 능숙한 드라이버가 될 수 있지만 자칫 욕심이 과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례 할 수도 있다.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꾸준한 연습을 통해 차와 혼연일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쨌든 다양한 부분에서 운전 즐거움을 높이는 애스턴마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자세 제어 장치를 활성화 하면 보다 정교한 그립을 바탕으로 또 다른 펀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50:50의 정확한 무게배분과 알루미늄 차체가 주는 경쾌하고 견고한 강성, 알맞게 찾아 들어가는 8단 자동변속기의 궁합도 훌륭하다. 마치 앞으로 다가올 코너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반 박자 먼저 반응하며 깔끔한 포물선을 그려낸다.
앞 275/35ZR 21, 뒤 325/30ZR 21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5 타이어는 뜨거운 노면을 끈적하게 붙잡으며 최상의 접지력을 보여줬다. 한계점이 높고 운전자 의도에 맞춰 그립을 아낌없이 활용한다.
마치 내 몸에 딱 맞는 탭댄스 신발을 신은 것처럼 자유자재로 차와 춤을 출 수 있다. 타이어 온도가 70도 부근까지 올라가면(계기판에 실시간 타이어 온도가 나타난다) 그립은 더욱 정교해지고 UHP 타이어의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이 여름, 밴티지와 최상의 시너지를 내며 퍼포먼스 완성도를 높여준다.
이와 함께 짧은 앞뒤 오버행과 컴팩트한 차체가 와인딩 실력을 더욱 증가시키며 손 맛을 보게 되면 자꾸만 산길을 찾아 떠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애스턴마틴하면 뻥 뚫린 직진 도로를 시원스럽게 내달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GT카의 이미지가 강했었는데 밴티지를 보니 사뭇 색다르고 반전 매력이 상당하다.
운전에 대한 욕구를 높여주는 또 하나의 킬링 포인트가 있다. 바로 사운드다. 굵직한 바리톤 음색이 차를 감싸고 실내에 과감하게 들어온다. 엔진음과 배기음이 절묘하게 섞이며 새로운 합주를 만들어 내고 환상적인 교향곡 한편을 금새 완성한다. 양 손에 위치한 패들시프트로 지휘를 하면 이보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따로 없다. 레드존을 향해 나아가는 클라이막스와 변주는 엄청난 흥분을 부추기며 웅웅 거리는 공명음마저 기분 좋게 들린다.
▲총평
밴티지는 애스턴마틴의 매력을 다채롭게 표현해 줄 당찬 막내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기대보다 훨씬 짜릿하고 풍부하며 유쾌한 드라이빙을 제공한다. 차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애정이 곱절로 깊어지며 운전 실력은 저절로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에 환상적인 디자인은 여전하고 패밀리-룩 구성을 통해 평소 아쉬웠던 품질까지 부쩍 끌어올렸으니 구매 가치는 더욱 높아질 듯하다. 강력한 패스트 팔로워 등장에 라이벌은 바짝 긴장해야겠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