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BMW R1300RT, '바이크에 닫힌 섬'을 열다

입력 2025년08월01일 07시4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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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틱하고 슬림해진 디자인 눈길
 -품격 지켜주는 자동변속, 편안함과 재미 모두 잡아
 -풍부한 편의기능, '빠르게'가 아닌 '멀리' 가고싶은 바이크

 

 영종도는 바이크에게 닫혀있는 섬이다. 굳이 가야 한다면 여객선이 드나드는 월미도에서 배를 타거나 탁송용 화물차에 싣는 방법 뿐이다. 가까운 곳에 있지만 의외로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영종도에서 라이딩을 해본 이들이 많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BMW R1300RT를 달린 이 날은 더 귀했다. 

 

 

 처음 마주한 R1300RT의 디자인은 새롭다. 이전 세대의 R1250RT가 육중함과 묵직한 존재감으로 대형 투어러다운 위엄을 뽐냈다면 이번 세대는 그 위엄 위에 날렵함과 세련됨을 더했다. 마치 투어링 바이크가 입은 디지털 수트 같다.

 

 헤드램프는 낮게 깔렸고 상부 페어링은 슬림하게 다듬어졌다. 사이드 페어링은 단단한 볼륨을 유지하면서도 공기 흐름을 타고 흐르듯 매끄럽게 정리됐고 후면부는 특유의 테일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날렵하게 떨어진다. 전체적으로는 좀 더 사이버틱한 인상이다. 단순히 차체가 작아진 게 아니라 시각적으로 가볍고 빠르게 느껴지게 만든 것에 가깝다.

 

 무엇보다 차체 상부 그러니까 계기반과 오디오, 스피커가 자리한 공간이 훨씬 정리되어 시야가 트여 있어 투어러 특유의 심리적 부담도 줄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이게 RT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슬림하고 도시적이다. BMW는 이를 통해 대형 투어러도 더 이상 무겁고 투박할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

 



 

 바이크는 기계이기 전에 ‘사람을 위한 도구’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시트는 높이와 기울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핸들바 위치도 조작성과 편안함을 모두 만족시킨다. 동승자를 위한 시트와 다리 공간도 넓어졌으며 확장형 사이드 박스까지 갖춰져 장거리 투어에도 걱정이 없다. 전방 시야를 개선한 디지털 계기반과 오디오 시스템, 능동형 크루즈 컨트롤(ACC), 충돌 경고, 차선 변경 경고 등 라이딩 어시스턴트 기능은 장거리에서 피로를 덜어준다

 

 잔잔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도로, 낮게 깔린 비행기 이착륙의 굉음, 그리고 그 위에 흐르는 음악. R 1300 RT의 고급 오디오 시스템은 단순한 스피커를 넘어선다. 10.25인치 TFT 디스플레이 옆에서 울리는 사운드는 주행의 배경이 아니라 중심이 된다. 선율 하나가 풍경을 감싸고, 감정은 점점 더 깊어진다. 머리 위로 착륙하는 비행기, 옆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좋아하는 음악까지. 모든게 즐겁다. 

 

 파워트레인은 1,300cc 수평대향 2기통 박서 엔진을 탑재했다. 최고출력 145마력, 최대토크는 15.2㎏·m. 스펙만 보면 제법 자극적으로 들리지만 실제 주행감은 전혀 다르다. 결코 운전자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신 노련한 항해자처럼 여유롭게 그리고 자신 있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가속을 시작하면 박력보다는 품격이 먼저 느껴진다. 페달을 밟을수록 속도계는 꾸준히 올라가지만, 바이크는 침착하다. 정제된 반응, 안정된 자세, 그리고 흔들림 없는 균형. 박서 엔진 특유의 낮은 무게 중심이 이 모든 걸 뒷받침한다. 도심에서도, 고속에서도, 엔진은 시종일관 단단하게 라이더를 지탱한다.

 

 흥미로운 건 그럼에도 차체를 기울이는 게 무척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덩치만 보면 코너를 부담스러워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좌우 무게 중심이 워낙 낮게 배치돼 있어 조향이 수월하고 와인딩 로드에서도 한 박자 빠르게 몸을 실을 수 있다. 단순한 투어러가 아닌 스포츠 바이크의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 마디로 편하게 달리되 재미는 결코 놓치지 않는다.

 

 BMW가 이번 R1300RT에 처음으로 도입한 자동변속 시스템 ASA는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다. 자동 모드에서의 변속 타이밍은 기계의 리듬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순간적인 변속 충격으로 느껴질 수 있다. 클러치가 없는 구조 탓에 조작 개입 여지가 적은 점도 초반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몇 ㎞만 달려보면 그 감각은 곧 ‘편안함’으로 바뀐다. ASA는 주행에 개입하지 않는 선에서 부드럽고 정확하게 기어를 조정하고 수동 모드에선 풋레버 하나만으로 변속할 수 있어 여전히 바이크를 다룬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장거리 주행이라면, 이 자동변속은 꽤 훌륭한 동반자가 된다.

 

 섀시와 서스펜션 시스템은 탑승자를 중심으로 세팅되어 있다. 전륜에는 새롭게 개발된 EVO 텔레레버, 후륜에는 EVO 패럴레버가 적용됐고, BMW 모토라드 최초로 도입된 다이내믹 섀시 어댑션(DCA)은 주행 모드에 따라 차체 높이, 캐스터 각도, 시트 포지션까지 함께 변화시킨다.

 

 다이내믹 프로 모드에선 후방이 30㎜ 높아지며 더욱 공격적인 자세를 띠게 되고, 휠베이스도 짧아져 보다 날렵한 조종성이 강조된다. 반면 레인이나 로드 모드에서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세팅으로 전환되어 장거리 투어에 최적화된 느낌을 준다. 저속 감속 시엔 원래 높이로 복귀해 발 착지성까지 챙긴다. 그야말로 라이더의 상황과 욕구에 따라 바이크 스스로가 태도를 바꾼다.

 


 

 R1300RT는 단순한 럭셔리 투어러를 넘어서, 감정이 깃든 기계였다. 우아하고도 안정적인 주행감, 장거리에서도 부담 없는 편안함, 고급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날렵하고 사이버틱해진 디자인, 그리고 코너에서의 예상 밖의 민첩함까지. 이 차는 멀리 가기 위한 바이크가 아니라, 멀리 가고 싶게 만드는 바이크였다.

 

 금지된 섬에서 누렸던 자유. 그날의 기억은 R1300RT 덕분에 선명하게 남았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든 괜찮을 것 같다. 이 바이크라면, 어디든 환영이다.

 

 시승한 R1300RT의 가격은 알파인 화이트가 4,290만원, 스타일 트리플 블랙이 4,380만원.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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