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미국산 밀어주기'에 반등
-주요 국가들 잇따라 보잉 항공기 구매 러시
-생산 속도 회복에 국내 항공사도 훈풍
미국이 주요 국가들과 무역 협상을 타결 지을 때 마다 뜻밖의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기업이 있다. 미국의 항공우주기업 보잉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발표하며 보잉 항공기 100대 구매를 약속했다. 앞서 영국,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와이 협상에서도 보잉 항공기 주문이 포함됐다. 방글라데시도 "2년 안에 신형 항공기가 필요하다"며 보잉 여객기 25대를 주문했지만 이 또한 관세 협상을 위한 카드로 해석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이와 관련해 "보잉의 성장은 미국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라며 "이 같은 수주 성과는 수년간 위기를 겪어온 보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산 구매'를 무역 협상의 핵심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불과 몇년 전 까지 보잉이 신뢰의 문제를 겪고 있던 것과는 사뭇 대비된다.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라이온에서 737 맥스8이 추락해 189명이 사망했고 이듬해인 2019년 3월에는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같은 기종이 추락해 157명이 사망한 바 있다. 조사 과정에서 비행제어 소프트웨어(MCAS) 결함과 조종사 매뉴얼 누락 등 기술·관리적 문제가 드러났다.
당시의 문제로 미국 연방항공청(FAA)을 포함한 주요 당국은 생산 및 운항 제한을 걸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항공업계 전반이 얼어붙었고 보잉은 대규모 정리해고와 공장 폐쇄, CEO 교체 등 연이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1월에는 알래스카항공의 보잉 737 맥스9 여객기가 고도 5,000m 상공에서 기체 일부가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품질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기도 했다.
지금의 분위기는 다르다. 잇따른 수주에 보잉은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올해 2분기 보잉은 매출 227억5,000만 달러(한화 약 31조6,375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34.8%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는 2019년 이후 최대 분기 실적이기도 하다. 순손실 규모는 1억7,600만 달러(한화 약 2,446억원)로 1년 전보다 대폭 줄었고 현금 소진도 2억 달러(한화 약 2,780억원)로 감소했다. 2분기 항공기 인도량은 150대로 2018년 이후 최대치이며 상반기 누적 인도량은 280대로 작년 연간 실적의 80%를 이미 달성했다.
생산 속도의 회복은 실적뿐 아니라 국내 항공업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29일 국토교통부 항공기술정보시스템(ATIS)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들어 7개월 동안 보잉 항공기 7대를 신규 도입했다. B737-8 1대, B787-9 1대, B787-10 5대 구성으로 이미 지난해 한 해 들여온 보잉기(6대)를 넘어섰다. 제주항공은 올해에만 보잉 B737-8 항공기 4대를 도입했으며 연말까지 2대를 추가로 인도받을 계획이다. 에어프레미아는 B787-9 기종 2대를 새로 들여왔고 티웨이항공도 B737-8과 B777-300ER 등 보잉 항공기 3대를 확보했다. 지난해 인도량과 비교해 빠른 속도다.
보잉은 그동안 FAA의 생산 제한 지침에 따라 B737 시리즈 월간 생산량을 38대로 제한받아 왔지만 최근 품질 시스템 개편과 인력 보강 등을 통해 생산 효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켈리 오트버그 보잉 CEO는 “안전성과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며 "FAA와 협의해 월간 생산 한도를 42대로 상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항공기 산업은 계약부터 인도까지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정치적 변수에 따라 계약이 변경되거나 취소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4월 보복 조치로 보잉 항공기의 인도를 거부한 바 있다. 또 방산 계약의 경우 고정가격 조건이 붙을 가능성이 있어 수익성에는 제약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보잉의 회복 흐름은 뚜렷하다. 블룸버그는 보잉의 올해 매출을 857억 달러(약 119조1,730억원)로 전망하며 전년 대비 28.8%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가도 4월 초 저점(136.59달러·한화 약 19만원)에서 65%가량 급등하며 시장 기대를 반영했다.
업계 관계자는 "보잉이 관세 협상 테이블 한 가운데에서 활용되며 실적을 회복하고 있는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라며 "기재 확보에 골머리를 앓아왔던 각국 항공사들이 수혜를 입고 있고 국내 항공사들도 그 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