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달리고 싶은 플래그십, 벤틀리 더 뉴 플라잉스퍼

입력 2025년08월18일 09시3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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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에 맞지 않는 역동적인 주행성 갖춰
 -W12 잊게 만드는 PHEV 주행감도 매력

 

 미국 몬태나. 들쑥날쑥한 로키 산맥과 그 위를 덮은 만년설, 해발 3,000m에 달하는 고도와 차가운 아침 공기,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며 뻗은 직선 도로까지. 이곳에서 만난 벤틀리 플라잉스퍼는 그 자체로 특별했다. 웅장한 산맥을 배경으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차체 크기 때문 만은 아니다. 화려한 내장재가 주는 호사와 짜릿한 퍼포먼스가 공존하는, 스티어링을 잡기 전까지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 때문이었다. 

 


 

 ▲디자인&상품성
 플라잉스퍼는 전면부에서부터 시선을 압도한다. 블랙 글로스 매트릭스 패턴 그릴과 블랙 글로스 플라잉 B 로고가 중심을 잡고 양쪽에 자리한 크리스털 커팅 LED 매트릭스 헤드램프는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반사한다. 크롬이 배제된 블랙 라디에이터 그릴과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된 프론트 범퍼 하단의 대형 에어 인테이크는 성능 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 모든 요소는 플라잉스퍼가 단순한 세단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만든다.

 

 측면은 길게 뻗은 차체와 유려한 루프 라인이 백미다. 플래그십 세단의 품격과 스포츠 투어러의 날렵함을 동시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22인치 10스포크 휠은 강한 시각적 존재감을 주며 블랙 글로스로 처리한 윙 벤트와 다크 틴트 윈도우 서라운드가 고급스러움을 강화한다. 도어 하단의 뮬리너 애니메이티드 웰컴 램프는 문을 열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벤틀리 윙 로고를 노면에 비춰 승하차 순간까지도 특별한 경험으로 만든다.

 







 

 후면은 안정적인 차폭과 낮게 깔린 비율로 완성됐다. 다크 틴트 테일램프와 블랙 글로스 베젤은 전면부와 디자인 톤을 맞춘다. 스피드 전용 리어 범퍼와 디퓨저는 고성능 이미지를 강화한다. 다크 틴트 머플러 팁은 퍼포먼스 세단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고 블랙 컬러로 처리한 벤틀리 레터링은 고급스러운 느낌도 더한다.

 

 실내는 첨단과 장인정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큼브리안 그린 가죽 시트는 화이트 콘트라스트 스티칭과 3D 다이아몬드 퀼팅으로 장식돼 있으며 패턴은 시트뿐 아니라 도어, B필러 안쪽까지 이어진다. 대시보드와 도어 상단에 적용된 월넛 원목 소재는 자연스러운 나뭇결과 따뜻한 촉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2열은 플라잉스퍼의 플래그십 세단다운 위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자리다. 넓은 레그룸과 헤드룸, 그리고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트가 장거리 주행에서도 편안함을 유지한다. 웰니스 시팅 기능은 탑승자의 체온과 습도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며 자동 자세 조정 기능이 장시간 이동 후에도 피로를 줄여준다. 마사지 기능은 없느니만 못한 일부 차종과 다르게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섬세한 압력으로 작동한다.

 


 

 중앙 암레스트에는 컵홀더와 소형 수납공간, 시트와 공조, 오디오를 조작할 수 있는 터치 컨트롤러가 배치돼 있다. 선택 사양인 네임 오디오 시스템은 뒷좌석에서도 전방위적으로 균형 잡힌 사운드를 제공하며 이중 접합 어쿠스틱 글래스가 외부 소음을 줄여 실내를 이동하는 라운지처럼 만든다.

 

 아무래도 좋다. 플라잉스퍼의 2열에 충분히 만족할만한 사람들도 있을 테다. 그런데 사실 플라잉스퍼는 2열보다 1열에서 즐겨야 하는 차다. 

 

 ▲성능
 파워트레인은 4.0ℓ V8 트윈터보 엔진과 190마력 전기모터 구성이다. 합산 최고출력은 782마력, 최대토크는 102.05㎏·m다. 정지 상태에서 100㎞/h 가속은 3.5초 최고속도는 333㎞/h에 달한다. 이전 세대의 W12보다 출력은 19%, 토크는 11% 향상된 것으로 벤틀리 세단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일대의 쭉 뻗은 직선로는 플라잉스퍼의 성능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엔진과 전기모터가 동시에 터져 나오며 속도계 바늘은 순식간에 솟구친다. 과거 W12가 만들어냈던 묵직하고 관능적인 힘은 이제 더 날렵하고 치밀한 토크로 대체됐다.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서곡이 갑자기 일렉기타 연주로 전환되듯 예상을 깨는 변화가 온 몸을 깨운다.

 


 

 로키산맥을 넘나드는 와인딩 로드에서는 그 진가가 더욱 뚜렷하다. 긴 차체를 잊게 만드는 반응성과 코너링은 컨티넨탈 GT를 떠올리게 한다. 스티어링을 살짝만 꺾어도 차체는 주저 없이 기울고, 전자제어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과 능동형 토크 벡터링이 네 바퀴에 동력을 정밀하게 배분한다. 덕분에 뒷좌석이 주무대일 것 같은 이 덩치의 대형 세단이 산악 도로에서 과감히 몸을 날리는 스포츠 세단처럼 움직인다.

 

 올 휠 스티어링 덕분에 산뜻한 느낌은 배가 된다. 저속에서 회전 반경을 줄여 타이트한 코너를 쉽게 공략하게 하고 고속에서는 안정성을 높인다. 벤틀리 다이내믹 라이드와 트윈 밸브 댐퍼는 주행 모드에 따라 서스펜션 강성을 폭넓게 조율해준다. 굳이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옮길 필요도 없다. 벤틀리 모드만으로도 차체를 단단하게 묶어 코너를 날카롭게 공략한다.

 

 전동화의 이점도 확실하다. EV 모드에서는 전기 모터만으로 140㎞/h까지 가속할 수 있으며 25.9㎾h 배터리로 최대 76㎞를 주행한다(WLTP 기준).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최대 829㎞를 달릴 수 있어 몬태나의 광활한 직선과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번의 충전·주유로 완주할 수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세단이었던 플라잉스퍼. 그 시절이 단순한 기록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속도를 완벽히 다루는 정밀함과 우아함은 벤틀리의 매력을 가감없이 느끼게 해준다. 

 

 ▲총평
 몬태나의 직선로와 와인딩은 플라잉스퍼의 모든 성격을 드러냈다. 직선에서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폭발적인 가속이 코너에서는 대형 세단의 한계를 뛰어넘는 민첩함이 살아났다. 뒷좌석의 호사와 운전석의 짜릿함이 공존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신형 플라잉스퍼는 플래그십 세단의 우아함과 스포츠 세단의 퍼포먼스를 동시에 품었다. W12의 향수를 잊게 할 만큼 강력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세밀하게 다듬어진 섀시, 그리고 장인정신이 빚어낸 실내와 첨단 편의 기능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국내 판매 가격은 3억7,570만원, 퍼스트 에디션은 4억4,190만원. 결코 가볍지 않은 가격이지만 이 차가 주는 경험은 숫자를 넘어선다.

 

 몬태나(미국)=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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