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아닌 '경영' 전면에 나선 오너 가문
-산업 개척에서 미래 모빌리티까지, 공헌 분명해
-성취 뒤에 남은 과제, 차근차근 해결해나가길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주영 창업회장,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이 미국 오토모티브뉴스가 선정한 창간 100주년 기념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소식의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 서구의 자동차 명가들은 대체로 소유 가문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BMW그룹을 소유한 콴트 가문, 스텔란티스와 페라리를 지배하는 아넬리 가문, 포드 일가는 지분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경영 현장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다. 이와 달리 현대차그룹은 세대를 거치며 오너가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 기업의 방향을 몸소 설계해왔다. 한국식 기업가 정신이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신화를 만든 개척자 같은 인물이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시작해 건설·조선·자동차 산업을 잇달아 일으켰고 전후의 폐허 속에서 국토 재건을 주도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국토의 혈관”이라 표현했고 자동차를 “그 혈관을 흐르는 피”라고 말했다. 도로와 자동차를 연결 지은 그의 시각은 한국 경제 발전의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포니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다. 우리의 첫 고유 차종이라는 자존심이었다. 우리나라가 차를 만드는 나라로 도약했음을 알린 신호탄이었고 자동차를 사치품이 아닌 생활의 필수품, 나아가 국가 경제를 이끄는 성장 엔진으로 자리잡게 했다는 점도 의미 있다. 산업화와 국민 생활 수준 향상을 동시에 견인했다는 뜻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이 토대 위에서 현대차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1998년 외환위기에서 기아를 인수해 지금의 기틀을 잡았고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사내에 품질본부를 신설하는가 하면 글로벌 연구개발 및 생산 거점을 구축하며 '값싼 차' 이미지를 '믿을 수 있는 차'로 바꾸는 데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간 200만대를 팔던 회사가 700만대 규모까지 커지는 데에도 그의 역할은 컸다.
정의선 회장은 단순한 '창업주 3세'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기아의 경영을 맡은 이후 성과를 내기 시작한 이래 그룹의 운영을 책임지기 시작한 2020년부터는 전기차, 수소차,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AAM)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규모를 키우고 있다. 아이오닉5와 EV6가 세계 시장에서 잇따라 호평받았고 제네시스와 현대 N 브랜드는 브랜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세 세대의 발자취는 한국 사회 전반에도 깊이 새겨졌다. 정주영은 산업화와 근대화의 동력이었고, 정몽구는 한국 제조업의 신뢰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정의선은 시대적 과제 앞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도전정신, 위기 극복, 미래 준비라는, 우리 경제와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공유한 집단적인 경험과도 꼭 닮아있다.
이번 수상은 글로벌 무대에서 현대차그룹이 쌓아온 성취를 인정하는 자리이자 서구 자동차 가문들과의 차이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계기다. 콴트, 아넬리, 포드 가문이 소유자로 남아 있다면 현대차그룹의 세대는 직접 경영을 통해 길을 닦아오며 성과를 냈다. 한국식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토모티브뉴스도 이 같은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들은 특집면을 통해 “(세 사람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고 오늘날 세계적인 제조 강국이자 자동차 강국으로 변모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경영 가문의 무게는 영광만큼이나 무거운 과제도 동반한다. 소유와 지배 구조가 오너 일가에 집중돼있다는 점은 비단 현대차그룹만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지적되어온 문제다. 권한이 한 데 집중된 경영 방식, 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 구조적인 문제는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다.
그래서 오토모티브뉴스의 평가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산업 개척, 위기 돌파, 미래 도전이라는 성취의 서사, 그리고 한국 경제가 걸어온 길을 확인시켜줬지만 앞으로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경영 가문의 무게는 자산이 될지 미래가 될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