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량제와 고령화에 갇힌 택시, 해법은?
-한은 보고서, "로보택시 제도적으로 못막아"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택시에서 쾌적한 경험을 느꼈던 마지막이 언제인지.
택시는 그런 존재가 됐다.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관리가 안 된 차, 승객을 불편 또는 불안하게 만드는 태도까지. 최근엔 전기 택시가 늘어나며 회생제동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기사들이 급가속·급감속을 반복해 승객들이 멀미를 호소하는 일도 많아졌다.
이런 와중에 정작 필요할 땐 잘 안잡힌다. 특히 비가 오거나 지하철이 끊기는 심야, 강남·홍대·종로 같은 상권에서는 호출료를 올려도 응답률은 바닥이다. 빈차가 눈앞을 지나가도 목적지를 묻고는 고개를 젓고 앱 화면엔 ‘배차 실패’만 몇 번이고 뜬다. 선택권은 승객이 아닌 기사에게 넘어간 시장, 그게 오늘의 택시다.
이 틈새를 새로운 기술이 파고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거리를 달리는 로보택시는 이미 낯선 풍경이 아니다. 웨이모와 바이두는 수억㎞에 달하는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며 인간보다 더 안전한 주행을 입증하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웨이모 자율주행택시가 유인택시에 비해 교차로 사고 확률이 96% 낮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8.5점에 달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자율주행택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일관성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승차 경험이 널뛰지 않는다. 요금은 사전에 확정되며, 경로와 소요 시간은 예측 가능하다. 호출 실패나 목적지 가려 태우지 않는 일도 없다. 24시간 동일한 품질이 유지되고 기사 피로도나 근무 교대의 변수가 사라지니 심야·악천후에도 공급을 늘릴 수 있다. 모든 이동이 데이터로 남아 안전·품질 관리가 쉬워지고 불친절·난폭운전 같은 리스크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용자 입장에선 가격, 대기시간, 안정감이라는 요소가 동시에 개선되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 구조가 이와 정반대 방향에 서 있다는 점이다. 기사 평균 연령은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EV 전환 속도는 빠른데 교육·훈련 체계는 뒤따르지 못했다. 개인택시 비중이 높아 공급이 분산돼 있고, 총량제는 유연한 증·감차를 가로막는다. 택시 면허가 가계의 자산이자 노후 보장으로 기능해 왔기 때문에 제도 변화가 곧바로 자산가치 급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 전반을 움켜쥐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택시는 현상 유지중이다.
면허가 여전히 고가에 거래된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이용 경험의 체감 품질은 떨어지는데 제도적 희소성이 가격을 지탱한다. 타다·우버·카카오를 둘러싼 지난 갈등의 연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상자에 넣을지, 새 상자를 만들지로 싸우다 시간이 흘렀다. 소비자 후생, 전환 비용, 데이터 주권 같은 본질적 질문은 뒷전으로 밀리고 면허 가격과 업권 구획이 논쟁의 전부가 되었다. 호출 체계는 플랫폼화됐지만 우리가 거리에서 느끼는 경험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은 정년퇴직하는 고령 택시기사를 자율주행으로 대체하는 실험을 이미 시작했다. 호주는 우버의 등장으로 면허 가격이 폭락하자 주정부가 직접 나서서 바이백프로그램을 도입해 불과 1년 만에 개인 면허의 99.7%를 매입했다. 이해관계를 보상과 제도로 흡수하며 산업 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반면 한국은 우버와 타다 논란에서 보듯 새로운 시도가 등장할 때마다 격렬한 반발과 규제 강화로 막아섰다. 그 결과는 멈춤이었다.
문제는 이제 멈춤이 곧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규제를 통해 자율주행택시 진입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글로벌 자율주행택시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50% 이상 성장해 2034년에는 1,9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14조 원 이상을 투자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차 테스트조차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나아갈 길도 제시한다. 첫째, 택시면허 총량제를 완화해 자율주행택시 진입로를 열어야 한다. 둘째, 기존 종사자들에게는 엑시트 플랜, 즉 퇴로를 제공해야 한다. 면허를 매입·소각하고 일부는 자율주행 기업의 지분을 배분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호주 사례처럼 빠르게 실행하지 않으면 충격은 더 커진다. 셋째, 개혁은 지방 중소도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종과 판교처럼 인프라가 이미 갖춰진 도시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고 전국으로 확산하는 전략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변화의 순간을 놓친 산업과 국가는 한결같이 몰락했다. 19세기,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열강의 개항 요구를 거부하다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국력을 빼앗겼다. 20세기 초 영국은 자동차 산업의 선두주자였음에도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정책 방향을 잃었고 결국 주도권은 독일과 미국으로 넘어갔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산업들이 내부 규제와 투자 지체로 경쟁력을 잃고 중국 기업들에 주도권을 내준 경험이 있다. 기술의 흐름 앞에서 시간을 잃는 것은 곧 시장 자체를 잃는 것이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