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그 많던 초소형 전기차는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25년09월29일 08시30분 박홍준
트위터로 보내기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공유


 -안전성 논란에 각종 규제까지 발 묶어
 -보조금 축소 직격탄..경형 전기차 등장에 설 곳 잃어
 -새로운 모빌리티 주목받는 유럽과는 대조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도심 한복판에서 콩알만 한 전기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르노 트위지를 시작으로 대창모터스의 다니고, 쎄보모빌리티 쎄보-C, 에디슨EV(구 쎄미시스코, 현 스마트솔루션즈)의 EVZ까지. 많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초소형 전기차를 내놓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약 640대로 시작한 시장은 2019년 2,764대까지 판매가 늘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시장은 2023년 2,129대를 기록해 전년 대비 30.9% 증가하며 회복 조짐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주춤했다. 이제는 언급된 차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레이EV, 캐스퍼 일렉트릭 등과 같은 경형 EV 판매가 급증하며 초소형 전기의 비중은 줄어드는 양상이다. 초소형 전기차는 왜 사라졌을까. 

 

 일단 시장 환경 자체의 변화가 크다. 한때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이 판매를 떠받쳤지만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리자 소비자들은 기아 레이 EV, 현대 캐스퍼 EV 같은 전기 경차로 눈길을 돌렸다. 같은 값이면 더 넓고 안전한 차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작은 차체가 주는 불안감은 현실이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충돌시험에서 일부  정면 충돌 항목에서 ‘0점’ 판정을 받으며 소비자 신뢰를 잃었다. 차체 중량을 600㎏ 이하로 묶은 규제는 충돌 안전장치와 대용량 배터리 탑재를 가로막았다. 게다가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 진입은 법으로 금지돼 활용 폭이 좁았다.

 

 가격에 민감한 초소형 전기차 특성 상 보조금 축소도 직격탄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23년 550만원이던 환경부의 초소형 전기차 보조금은 지난해 250만원으로, 올해는 200만원으로 줄었다. 이 마저도 명목상의 보조금일 뿐 현재 환경부가 고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차종에 초소형 전기차는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다. 

 

 쎄보모빌리티, 대창모터스, 스마트솔루션즈 등 기업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쎄보모빌리티는 2019년 첫 차 쎄보-C를 출시한 뒤 1인승 밴 까지 내놓으며 꾸준히 제품 라인업을 확장했지만 판매는 수백 대 수준에 머물렀다. 전남 영광 공장 설립과 인도네시아 현지 생산 추진 등 확장을 모색했으나 주류 시장 진입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대창모터스는 다니고 시리즈로 한때 초소형 전기의 대명사처럼 불렸지만 공장 완공 지연과 화재 사고, 출고 지연 등 악재가 겹쳤다. 매출은 일시적으로 개선됐으나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스마트솔루션즈(구 에디슨EV)는 더 심각했다. EVZ를 내놓았지만, 주가 조작 의혹·감사 의견 거절·상장폐지 위기 등 경영 리스크가 언론을 도배하면서 제품보다는 투자자 피해 기사로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언론의 관심 곡선만 보더라도 초소형 전기의 부침이 드러난다. 쎄보모빌리티는 '도심 꼬마 전기차'라는 시승기나 신차 소개 기사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다 최근에는 보도 빈도가 줄었고 대창모터스는 전시회와 신차 발표 기사로 주목받던 2022~2023년 이후 공장·재무 이슈가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스마트솔루션즈는 2024년 들어 상장폐지와 소송 기사로 언론에 등장하는 빈도가 오히려 급증했지만, 초점은 기술이 아니라 위기였다.

 

 해외 상황은 사뭇 다르다. 대형 완성차 브랜드들이 초소형 전기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트로엥 아미다. 2020년 출시된 아미는 최고속도 45㎞/h, 1회 충전 주행거리 75㎞라는 제한된 성능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면허 없는 자동차’로 청소년들이 탈 수 있는 이동수단으로 각광받았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는 만 14세 이상 청소년도 간단한 안전교육만 받으면 운전이 가능해 대중교통 대안이나 부모의 ‘두 번째 차’ 개념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판매가는 6,000 유로(약 900만원) 안팎으로 설정돼 전동킥보드와 경차의 중간 지대를 차지했고 카셰어링 서비스에도 대거 투입됐다. 같은 기반의 피아트 토폴리노는 레트로 디자인과 브랜드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이탈리아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완성차 브랜드들이 초소형 전기차를 미래 도심 모빌리티로 진지하게 키우고 있다. 한국에서 급격히 사라진 것과 달리 제도적 뒷받침과 명확한 소비자층을 확보한 덕분이다. 결국 초소형 전기의 성패는 기술보다 사회적 수용성과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국의 초소형 전기차는 기술보다 제도의 벽에 가로막혀 잠시 반짝하다가 자취를 감췄다. 기업들의 도전은 이어졌지만 안전과 보조금, 제도 설계의 한계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시트로엥 아미와 피아트 토폴리노가 또 다른 도시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결국 같은 ‘작은 차’라 하더라도 사회가 어떻게 품어내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사는 늘 비슷한 장면을 반복한다. 산업혁명기의 증기기관차도 처음에는 ‘사람을 질식시킨다’는 조롱을 받았지만 곧 세상을 바꾼 동력이 됐다. 문학 속에서도 ‘작은 존재의 힘’을 일깨우는 사례는 많다.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처럼, 작은 존재가 모여 거인을 묶어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한국에서 초소형 전기차가 남긴 짧은 궤적도 그와 닮았다. 당장은 미미하고 실패처럼 보일지 몰라도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교통의 판도를 바꿀 씨앗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듯해도, 이 ‘작은 차의 꿈’이 다시 깨어날 날은 언젠가 다시 올 지 모른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