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F1의 정신을 잊은 축제

입력 2025년10월16일 08시5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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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치스 런 유니버스, 현장 사고로 논란
 -안전 공백, 보여주기식 열정 과한건 아니었나

 

 피치스 런 유니버스는 자동차와 음악, 패션,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축제로 매번 화제를 모았다.

 


 

 올해도 그랬다. 스케일은 유독 컸다.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이 국내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 발테리 보타스가 W13 머신을 몰고 에버랜드 일대를 질주하는 모습을 누가 상상해봤을까. 레드불의 잠수교 쇼런 이후 12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F1 머신의 질주여서 팬들이 갖는 의미는 더 컸다. 

 

 그러나 그 화려함 일변에는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은 위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대 행사로 마련된 모터사이클 트랙 주행 중 한 대가 펜스와 충돌하며 인근 관람객이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이중 안전 설치물' 뒤에서 관람 중이던 일부 관객에게 충격이 전달됐다고 설명했지만 현장에 있던 이들의 대부분은 '이중 안전 설치물' 이라는 존재에 의구심을 표한다. 일부 베리어에 물이 채워져 있지 않았기에 기본적인 방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랙은 엄연히 위험 구역이다. 우리가 이걸 너무 느슨하게 여기고 그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이다. F1을 비롯한 국제자동차연맹(FIA) 주관 국제 대회에서는 스태프는 물론 취재를 위해 출입하는 사진기자조차 헬멧과 방염복을 착용해야 한다. 피트 구역에서는 연료나 오일 같은 인화성 물질, 고열의 타이어와 엔진, 빠르게 달리는 차가 혼재하기 때문이다.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해외 서킷의 관람석은 고강도 철망과 다층 방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곳에서는 ‘관객이 더 가까이서 보게 하는 것’보다 ‘관객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피치스가 AMG 스피드웨이에 그런 철망을 세워야 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방어 장치, 명확한 위험 경계선, 동선 통제만큼은 반드시 있었어야 한다.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 2만여명이 몰린 트랙은 이미 안전의 경계를 벗어나 있었다.

 

 현장의 모습은 여러모로 위험해보였다. 차와 관람객 사이의 간격은 걱정될 만큼 좁아보였다. 스피커는 작동하지 않아 상황 안내가 들리지 않았고 푸드코트의 긴 줄과 관람 공간은 뒤섞였다. 어디가 안전구역이고 어디가 위험구역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2만여명이 몰린 현장이 통제되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그 결과 미끄러진 바이크가 펜스를 넘어 관람석으로 돌진했다. 

 

 피치스 측은 여인택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안전검증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왜 애초에 그런 조직이 없었느냐’는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피치스는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데엔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다. 그런 조직이라면 최소한의 안전 기준은 가장 먼저 고려됐어야 한다. 계획서의 항목이 아니고 현장에서 입증되어야 하는 신뢰다. 그 신뢰가 무너진 순간 아무리 세련된 무드도 공허해진다.

 

 

 물론 이들의 시도 자체를 폄훼할 수는 없다. F1 머신이 실제 트랙을 달리는 장면을 국내 팬들이 직접 보는 건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다. 피치스는 그 경험을 현실로 만든 몇 안 되는 브랜드다. 그러나 진심이 보여주기로 흐르지 않으려면 현실에 대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자동차를 중심에 둔 행사를 기획하면서 자동차의 물리적 위험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문화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최근 F1의 인기가 급상승하며 전 세계적으로 모터스포츠가 ‘힙’한 문화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그 흐름에 편승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무대를 흉내내는 순간 그것은 문화가 아니라 모방이 된다. 피치스 런이 그 파도에 올라탔던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진정한 F1의 정신은 속도나 스포트라이트에 있지 않다. 치밀한 준비와 완벽한 팀워크, 철저한 안전 관리 위에 세워진 결과다. 자동차를 다루는 한, 위험은 늘 함께한다. 그 사실을 외면한 축제는 아무리 멋져도 불안하다.

 

 피치스 런 유니버스가 다시 열린다면 더 이상 ‘멋진 장면’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철저한 준비, 정확한 통제,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무대를 보고 싶다. 그것이 진짜 문화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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