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절도와 광기 사이'..토요타 GR야리스·GR코롤라

입력 2025년11월04일 12시1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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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의 스티어링, 절도감으로 완성한 라인
 -노면을 움켜쥔 차체, 기계적 균형이 신뢰감 높여
 -거친 3기통의 리듬, 4기통과는 또 다른 매력 보여줘

 

 엔진이 깨어날 때의 첫 진동은 예상보다 거칠었다. 1.6ℓ 3기통 터보 엔진의 울림이 차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차가 살아있다고 느껴질 만큼 생생히 다가왔다. 토요타 시모야마 테크니컬 센터. 뉘르부르크링을 닮은 언덕과 점프 구간, 그리고 연속 코너가 이어지는 GR의 비밀 정원에서 토요타 GR 야리스와 GR 코롤라를 경험했다. 

 

 기자를 트랙으로 안내한건 토요오카 사토시 처완기능양성부장. 토요타의 여러 차들을 갈고 닦는 테스트드라이버를 양성하는 한편 토요타 차들의 '맛'을 결정짓는 모리조(토요다 아키오 회장)의 핵심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다. 

 

 토요오카 부장이 몬 GR 야리스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서킷에서 여러 번 스티어링을 고쳐 잡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는 단 한번의 조작으로 깊은 코너를 그려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고 있는 듯 자연스럽다고 느껴졌을 정도다. 브레이크를 깊게 밟는 일도 거의 없다. 속도와 라인을 예측하며 차의 밸런스를 끊김 없이 유지했다. 

 



 

 차체는 노면을 물었다. 단단히, 그리고 끝까지. 뉘르부르크링의 점프 섹션을 연상시키는 언덕 위에서도 GR야리스는 차체를 가볍게 띄우고는 다시 정확히 착지했다. 타이어가 노면을 다시 붙잡는 그 짧은 순간조차 불안감이 없었다. 차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에도, 중심이 무너지지 않는 감각. 단순히 서스펜션의 성능이 아니라 차체 강성과 무게 밸런스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는 뜻이다.

 

 GR야리스는 짧은 휠베이스에서 오는 순발력이 인상적이었다. 드라이버가 코너 진입 직전 살짝 가속을 풀자, 리어는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즉각 그립을 되찾았다. 이건 전자제어가 아니라 기계적 균형에서 오는 안정감이었다. 3기통 터보는 회전수를 높일수록 거칠게 포효했지만 그 진동이 이상할 만큼 리듬감 있게 다가왔다. 단기통 바이크의 거친 박동이 아니라, 짜여진 악기의 울림에 가까웠다.

 

 이어지는 주행은 GR코롤라였다. 같은 엔진, 다른 무대. 코롤라는 야리스보다 체격이 크지만 트랙에서는 오히려 더 여유롭다. 304마력의 출력과 넓어진 트레드가 만들어내는 안정감 덕분이다.

 가속 시 노즈가 들리지 않는다. 전자식 다판클러치 기반 GR-FOUR 시스템이 전후 구동력을 끊임없이 분배하며 차체가 노면 위에서 수평을 유지한다. "여기선 더 빠르게 나갈 수 있다"며 코너 탈출 시에도 스로틀을 망설이지 않고 끝까지 밟고 나가는 모습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핸들링은 날카롭다기보다 정교했다. 차가 코너를 돌며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순간조차 ‘이 정도는 괜찮다’는 신호가 전해진다. 마스터드라이버의 손끝은 그 신호를 읽고 단 한 번의 스티어링으로 라인을 마무리한다. 그 움직임은 절도감 그 자체였다. ‘스킬’이라는 말보다 ‘균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속도계가 200㎞에 가까워 질 때에도 차는 요동치지 않았다. 차체가 도로를 눌러 붙잡는 듯한 감각이 허리에 닿았다. 이 신뢰감은 단순한 접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차의 모든 부품, 서스펜션, 부싱, 타이어, 심지어 차체 패널의 강성까지. 일체로 작동할 때만 만들어지는 감각이다.

 

 사운드는 독특했다. 3기통 터보 엔진의 박동은 4기통처럼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불규칙함이 GR의 정체성을 만든다. 고회전으로 치달을수록 점점 터프해지는 음색, 터빈이 내뱉는 얇은 휘파람 소리, 머플러 끝에서 터지는 압축음이 절묘하게 섞인다. 단순한 배기음이 아니라, ‘기계가 살아 움직이는 소리’였다.

 


 

 GR야리스는 반사신경처럼 움직이는 차였다. 한계가 어딘지 묻기보다 그 한계를 짜릿하게 넘나드는 차. 반면 GR코롤라는 침착했다. 같은 엔진을 품고도 더 넓은 무대에서 ‘신뢰감’이라는 단어를 새겼다.

 

 두 차는 완전히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운전자의 실력을 감춘다기보다, 드러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직하고 투명하다. 실수는 그대로 노면 위에 남지만 잘 달렸을 때의 쾌감은 그 어떤 차보다 클 것 같았다.

 

 비가 내리기 직전 시모야마의 공기는 여전히 습했고, 엔진의 열은 아직 식지 않았다. 토요타가 말하는 ‘좋은 차’는, 아마 이런 감각일 것이다. 정교함과 생동감, 절도와 광기. 그리고 그 한가운데, 인간이 있었다.

 

 나고야(일본)=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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