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철, 기아 기업전략실 전무
-"출장서 부도 소식 들어..하늘 무너졌다"
-상처 기억하는 조직, 디자인·모빌리티로 체질 전환
기아의 80년 역사를 되짚는 자리에서 한 임원이 끝내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1990년대 부도 국면을 온 몸으로 겪은 '기아맨'의 기억은 80주년을 맞은 지금도 상처이자 다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아는 5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비전 스퀘어에서 '기아 80주년 기념 행사'를 열고 첫 사사(社史) '기아 80년'과 축약본 '도전과 분발/기아 80년'을 소개했다. 인라 현장에서는 사사 발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80년 헤리티지 토크 세션'도 함께 열렸다.
토크 세션에 나온 정의철 기아 기업전략실 전무는 마이크를 잡은 이후 여러 차례 말을 멈췄다. 30여년 전 자신의 인생과 회사를 동시에 뒤흔든 사건을 떠올리자 감정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정 전무가 기아에 입사한 것은 1991년 말.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30대 초반 대리 시절, 그는 브라질 프로젝트로 해외 출장 중이었다. 그리고 1997년 7월 15일, 현지에서 회사 부도 소식을 들었다. 정 전무는 "그 소식(부도)을 듣고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이후 많은 동료가 회사를 떠났고 정말 참담한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토크 세션을 위해 진행된 사전 인터뷰에서도 그는 여러 차례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무대 위에서도 당시를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사회자가 “지금도 눈물이 맺힌다”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고, 방청석에서도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정 전무는 기아의 재기 비결을 “기아인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정의했다. "다시는 부도가 나선 안 된다는 전 임직원의 비장한 각오와 헌신, 의지, 열정이 있었다"며 "현대차그룹 합류 이후 정몽구 명예회장 주도의 성공적인 통합, 정의선 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기아의 체질도 완전히 바꿨다"고도 말했다.
정의선 회장이 강조해온 ‘디자인 경영’이 단순히 차를 멋있게 만드는 전략이 아니라 조직 문화 전체를 바꾸는 작업이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정 전무는 “제품 스타일 변화만이 아니라 사고 방식을 일신하고 조직 문화를 확 바꾸면서 기아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디자인 경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사사 기아 80년은 두 바퀴 자전거와 오토바이에서 출발해 삼륜차·승용차·전기차·PBV까지 이어진 기아의 궤적을 ‘도전과 분발’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 책이다. 김철호 창업자의 ‘기술입국·산업보국’ 정신,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글로벌 경영, 정의선 회장의 디자인 경영과 ‘기아 대변혁’까지 80여 년의 여정을 담았다.
사사 편찬을 맡은 이장규 고문은 기아의 역사를 “두 번의 부도, 12년 넘는 은행·법정관리, 제3자 인수까지 겪은 특이하고도 희한한 회사의 역사”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도가 났는데도 새 공장을 짓고, 은행 관리를 받으면서도 신차 개발을 멈추지 않았던 회사”라고 강조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