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효율 모두 잡은 ‘전동화 드림라이너’
-전기차의 낯섦 지우는 직관적 주행감
아이오닉9을 보면 자동차라기보단 항공기가 떠오른다. 그것도 연료 효율과 장거리 항속 능력으로 항공 산업의 기준을 바꾸고 있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나 에어버스 A350 같은 차세대 여객기 말이다. 공기를 다루는 방식, 공간을 설계한 접근방법, 무엇보다 누구나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 까지 닮아 있다. 이런 점 때문일까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선정한 '2026 올해의 차' 라는 타이틀은 단순한 상품성을 넘어 세그먼트의 기준점으로 평가받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디자인&상품성
차를 처음 보면 ‘크다’는 인상이 먼저 온다. 전장 5,060㎜, 휠베이스 3,130㎜라는 수치는 대형 SUV를 넘어선다.
전면부는 마치 항공기의 노즈(기수)처럼 공기를 가르는 역할에 집중한 인상이다. 각을 세운 SUV와 달리 전체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표면과 낮게 깔린 비례가 특징이다. 파라메트릭 픽셀 램프는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야간에는 마치 활주로를 따라 점등되는 유도등처럼 또렷한 시각적 리듬을 만든다. 하단에 자리한 듀얼 모션 액티브 에어 플랩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공기 흐름을 제어하는 장치로, 항공기 플랩처럼 상황에 따라 열리고 닫히며 효율을 끌어올린다.
측면은 아이오닉9의 성격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실루엣은 전통적인 SUV와는 결이 다르다. 기아 EV9이 박스형 실루엣으로 정통 SUV의 이미지를 강조했다면 아이오닉9은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공기역학을 중심에 둔 설계다. 긴 휠베이스와 매끈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트테일 형상은 마치 항공기 동체를 연상시킨다.
특히 항공기 터빈을 형상화한 휠 디자인과 차체 전반의 유선형 흐름은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공기를 다루는 설계에 가깝다. 그 결과는 공기저항계수 0.259Cd라는 수치로 이어진다. 대형 SUV라는 체급을 감안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목표치다.
후면부는 공기를 정리하는 테일(꼬리)의 역할에 충실하다.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루프와 테일게이트 형상은 와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형적인 공력 설계다. 이를 감싸는 픽셀 타입 리어램프는 전면과 마찬가지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드러내면서도 항공기의 후미등처럼 수평으로 넓게 퍼진 안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특히 뒤에서 바라보면 차체가 넓게 깔리며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내는 ‘객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평평한 바닥 구조와 여유로운 2·3열 공간은 장거리 비행을 전제로 설계된 항공기 캐빈과 유사한 접근이다. 여기에 릴렉션 시트, 스위블링 시트, 다이내믹 바디케어 시트 등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성격을 강화한다.
상품성 측면에서도 구성은 상당히 촘촘하다. 기본 트림부터 110.3㎾h 배터리, 400V/800V 멀티 충전 시스템,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 히트펌프, V2L 기능, 12.3인치 파노라믹 디스플레이 등이 대거 포함된다.
가격을 보면 경쟁력은 더 또렷해진다. 세제 혜택 기준 7인승은 6,715만원부터 시작해 캘리그래피가 7,792만원 수준이다. 보조금 적용 시에는 약 6,441만원대부터 접근 가능하다. 이 체급, 이 배터리 용량, 그리고 기본 구성을 고려하면 플래그십 전기 SUV라는 위치 대비 가격 설정은 상당히 공격적인 편이다. 단순히 크기만 큰 차가 아니라, 구성까지 고려한 ‘패키지 상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높다.
▲성능
단순한 출력 수치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승차는 항속형 AWD로 최고출력 303마력, 최대토크 61.7㎏·m를 발휘한다. 절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고성능을 표방하는 차는 아니지만, 이 차의 핵심은 출력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
운전을 즐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E-GMP 플랫폼 특유의 낮은 무게 중심과 긴 휠베이스가 만들어내는 거동이 인상적이다. 차체 하부에 대용량 배터리를 배치한 구조 덕분에 롤 억제력이 뛰어나고 코너 진입 시 앞머리가 과하게 들리거나 뒤가 가볍게 흐르는 느낌이 적다. 특히 중속 코너에서는 차체가 노면에 눌린 듯 안정적으로 돌아나가는데 이는 대형 차급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다.
서스펜션 세팅은 분명히 컴포트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단순히 물렁한 방향이 아니라 초기 입력은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이후에는 단단하게 지지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덕분에 요철을 넘을 때 1차 충격은 효과적으로 걸러내면서도 이후 차체의 불필요한 상하 움직임은 빠르게 억제한다. 다만 감속 구간에서 회생제동과 차체 하중 이동이 맞물리며 앞뒤로 살짝 흔들리는 현상은 남아 있다.
고속 영역에서는 차의 성격이 더욱 또렷해진다. 긴 휠베이스와 낮은 무게 중심, 그리고 공력 설계가 맞물리며 직진 안정성이 상당히 높다. 속도를 끌어올려도 스티어링 보정이 크게 필요하지 않고 차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 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도 잘 억제돼 있어 장거리 이동 시 피로도가 낮다. 이 부분은 북미 시장을 염두에 둔 세팅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선을 가족 단위 이동으로 옮겨보면, 아이오닉9의 성능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3열까지 탑승자가 꽉 찬 상황에서도 가속 반응이 크게 둔해지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 덕분에 합류 구간이나 추월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다. 특히 정지 상태에서의 출발 가속은 내연기관 대형 SUV 대비 확연히 가볍게 느껴진다.
승차감 역시 가족 이동에 최적화된 방향이다. 2열과 3열까지 전달되는 충격이 부드럽고 상하 피칭이 크지 않아 멀미를 유발할 요소가 적다. 여기에 정숙성까지 더해지면서, 어린 자녀나 노약자가 탑승한 상황에서도 부담이 적은 주행 환경을 만들어낸다. 지상에서 구현한 항공기 객실과 같은 느낌이다.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역시 VGS(가상 기어 변속)다. 매니아 관점에서는 단순한 재미 요소를 넘어 전기차의 단조로운 가속 패턴에 리듬을 부여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노멀 모드에서는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처럼 부드럽게 이어지고 스포츠 모드에서는 DCT 특유의 직결감과 변속 충격을 구현해 운전 재미를 살린다.
동시에 이 기능은 전기차에 익숙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급격한 감속과 가속이 반복되는 회생제동 특유의 이질감을 완화하고 보다 자연스러운 주행 흐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오닉9의 성능은 ‘빠른 차’라기보다 ‘잘 달리는 차’에 가깝다. 운전자에게는 안정적인 거동과 충분한 응답성을 탑승자에게는 편안함과 예측 가능한 움직임을 제공한다.
▲총평
아이오닉9은 단순히 큰 전기 SUV가 아니다.공간, 효율, 주행감, 그리고 사용 경험까지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된 차다. 마치 연료 효율과 승객 경험을 동시에 끌어올린 차세대 항공기처럼 전기차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동 방식을 제안한다. 특히 가격과 구성의 균형은 분명한 경쟁력이다. 대형 차급, 100㎾h급 배터리, 첨단 기능을 고려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진입 장벽을 낮춘 설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낯섦을 지우는 능력이다. 전기차가 처음인 사람도 어제까지 타던 차처럼 몰 수 있다.
아이오닉9이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새로운 기술을 강요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그래서 아이오닉9은 자동차라기보다 하나의 이동 경험 플랫폼에 가깝다.
아이오닉9의 가격은 6,759~8,330만원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