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평범한 차가 특별해지는 순간

입력 2026년05월22일 08시30분 박홍준
트위터로 보내기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공유


 -포르쉐와 달리는 소형차에 환호한 이유
 -가장 가혹한 서킷을 달리는 평범한 차들에 관하여
 -골프 GTI, 이런 평범한 역사가 쌓여 만들어진 차

 

 올해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두 가지였다. 

 


 

 첫 번재는 올리즈 개러지 레이싱팀의 다치아 로건이었다. 르노그룹의 저가 브랜드에서 만든 소형 세단은 이번 레이스 출전 차 중 가장 느렸지만 화제성만은 그 어느 팀 보다 강력했다. 특히 같은 경기에 출전한 막스 베르스타펜의 메르세데스-AMG GT를 막아 세우는 장면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그걸 보고 누군가는 맥주잔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친구의 어깨를 치며 차를 가리켰다. 

 

 두 번째는 막스 크루제 레이싱팀의 폭스바겐 골프 GTI다. GTI 탄생 50주년을 기념한 리버리를 두르고 뉘르부르크링에 출전한 골프 GTI. 팬들은 GTI 깃발과 빨간색 옷으로 응답했고 이들은 경쟁 클래스(AT3)에서 2위를 거두며 포디움으로 응답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빠르고 비싼 차는 넘쳐났다. 베르스타펜이 탔던 AMG GT부터 포르쉐 911, BMW M3, 애스턴마틴 밴티지 등이 쉴 새 없이 트랙을 달렸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의 표정이 가장 밝아진 순간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평범한 차들이 눈 앞을 지나갈 때였다. 이미 트랙이 익숙한 스포츠카 대신 평범한 일상 속에 있어야 할 작은 차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킷을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더 열광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웬만한 스포츠카조차 긴장하는 곳이다. 총연장 20.8㎞, 70개가 넘는 코너, 300m 이상의 고저차, 예측 불가능한 날씨까지 겹친다. ‘녹색지옥’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곳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 다치아 로건과 골프 GTI 같은 차들이 포르쉐 GT3 머신들과 뒤섞여 밤새 달린다. 그 장면 자체가 이미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면 그 분위기는 더 극적으로 변했다. 캠핑 사이트에서는 사람들이 맥주와 커리부어스트를 나눠 먹으며 레이스를 지켜봤고 헤드라이트가 숲 사이를 가르며 지나갈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유독 작은 차들이 지나갈 때 반응이 더 뜨거웠다.

 

 아마 이유는 단순할 것이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차보다 내 삶과 연결된 차에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리고 골프 GTI는 그런 차다. 1976년 등장한 GTI는 처음부터 거창한 차가 아니었다. 폭스바겐 내부 소수 엔지니어들이 평범한 해치백 골프에 조금 더 강한 엔진과 단단한 섀시를 얹어 “재밌는 차”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당시만 해도 GTI는 대규모 전략 차종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용적인 대중차에 스포츠성을 더한 작은 실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발상은 자동차 문화 자체를 바꿔버렸다. 출퇴근도 가능하고 장도 볼 수 있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웃게 만드는 차. GTI는 그 절묘한 균형으로 지난 50년 동안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게 사람들이 GTI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GTI는 슈퍼카처럼 먼 존재가 아니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차다. 누군가의 첫 차였고, 누군가의 드림카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으로 언젠가 꼭 타보고 싶은 차다. 그러다 보니 뉘르부르크링에서 GTI가 포르쉐 GT3 머신들과 뒤섞여 질주하는 모습은 단순한 레이스 장면 이상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차가 특별해지는 순간. 사람들은 아마 그 장면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소형차가 포르쉐와 BMW 사이를 비집고 달리는 모습은 묘하게 인간적이었다. 빠르고 완벽해서가 아니라 평범하기 때문에 더 응원하게 되는 존재에 가까웠다.

 

 뉘르부르크링 24시는 단순히 가장 빠른 차를 가리는 레이스가 아니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캠핑카에서 잠들고, 작은 차들이 거대한 서킷을 버텨내는 모습을 함께 응원하는 거대한 축제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축제 한가운데서 가장 큰 박수를 받는 차는, 의외로 가장 비싼 슈퍼카가 아닐 때가 많다.

 

 어쩌면 GTI가 지난 50년 동안 특별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아닐까. 누구나 아는 평범한 차였기에 사람들은 그 차가 특별해지는 순간에 더 깊이 몰입한 것일 지도 모른다.

 


 

 골프 GTI는 가장 빠른 차도, 가장 비싼 차도 아니다. 때로는 훨씬 강력한 차들 사이에서 힘겹게 버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차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킷을 끝까지 달려내는 모습에 더 크게 환호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치열한 회사에서 하루를 버텨내고, 누군가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 누군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는 작은 차들 역시 비슷했다. 완벽해서 응원받는 것이 아니라 거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였을까. 밤하늘 아래 포르쉐와 AMG 사이를 비집고 달리던 골프 GTI의 모습은 단순한 레이스카라기보다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버텨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가장 가혹한 서킷을 달리는 평범한 차들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해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뉘르부르크링을 치열하게 달리고 있을 수 많은 골프 GTI에게 응원을 보내며. 

 

 뉘르부르크(독일)=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