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를 키운 '판매의 신' 가미야 쇼타로

입력 2026년06월05일 08시0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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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장 투성이었던 G1 트럭, 서비스로 신뢰 쌓아
 -'코롤라 신화' 이끈 토요타 영업 설계자의 교훈은...

 

 "나는 기술자라서 차를 만드는 건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파는 건 자신이 없어요."

 


 

 1930년대 초 일본, 아직 일본산 승용차 산업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이던 시절, 토요타의 창업자 토요다 기이치로는 한 남성에게 이 같은 말을 던졌다. 상대는 가미야 쇼타로. 훗날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판매의 신'이라고 불리게 되는 인물이었다.

 

 당시 가미야는 GM 일본판매법인에서 판매 담당 임원으로 활동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반면 토요타는 이제 막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신생 기업이었다. 일본이 독자적으로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 자체를 무모한 도전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했던 시절, 당시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조차 결국 미국차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가미야 역시 쉬운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GM은 일본 최고의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였고 가미야 역시 촉망받는 경영인이었다. 반면 토요타는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신생 업체였다. 급여 역시 기존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토요타행을 선택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고생할 가치가 충분해서". 훗날 가미야는 "월급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차를 위해 일하기로 한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세일즈 직원들을 채용할 때조차 "입사 하겠다면 일본차를 키우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영업 실적보다 회사를 키워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가미야가 처음 판매를 맡은 차는 1935년 등장한 G1 트럭. 토요타 최초의 양산차 가운데 하나였지만 품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출시 이후 각종 고장이 이어졌고 당시 기록에 따르면 수개월 사이 수백건의 결함이 보고됐다. 말 그대로 툭 하면 고장나는 차였다.

 

 보통의 판매 책임자라면 판매량 감소를 걱정했겠지만 가미야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비용은 상관없으니 반드시 서비스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고장이 발생하면 즉시 정비 인력을 현장으로 보냈고 소비자 불만은 곧바로 생산 현장으로 전달했다. 당시 세간에서는 '토요타의 서비스 직원들은 차가 고장나기도 전에 도착한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차보다 사람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훗날 토요타 판매 철학의 뿌리가 된다. 첫째는 소비자여야 하며, 둘째는 판매점, 그 다음이 제조사라는것. 가미야가 강조한건 판매량이나 생산 실적이 아닌 신뢰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오늘날에야 기업들이 소비자 중심 경영을 말하지만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이 철학은 전국 판매망 구축으로 이어졌다. 가미야는 일본 전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판매점을 모집했다. 판매점 사장들을 만나 일본차의 미래를 이야기했고 토요다 기이치로 역시 전국을 돌며 판매점과 제조사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설명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자금도 아니었고 실적도 아니었다. 꿈과 열정뿐이었다.

 

 정비와 보험, 금융, 중고차 판매를 하나로 묶은 원스톱 서비스 역시 그의 작품이다. 자동차 금융회사를 설립해 일본 최초 수준의 할부 판매를 시작했고 제조사가 보증하는 인증 중고차 사업도 추진했다. 소비자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현대적 CRM 개념 역시 이 시기 토요타 판매 조직에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가미야의 영향력은 일본을 넘어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1950년대 후반 그는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했다. 초기 수출 차종인 크라운은 고속도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며 실패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분석했고, 그 경험은 코로나와 코롤라 개발로 이어졌다.

 

 특히 코롤라는 가미야가 중요하게 여긴 차로 꼽힌다. 단순히 값싼 대중차가 아니라 고속도로 시대에 걸맞은 상품성을 갖춘 차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과적으로 코롤라는 세계 자동차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가미야의 관심이 판매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후반 자동차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일본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급증했고 그는 이에 착안해 자동차학교를 세우고 안전운전 교육을 강화했다. 나아가 교통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사고 근절을 기원하는 사찰까지 건립했다. 판매의 신이라 불렸던 남자가 마지막까지 고민한 것은 실적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토요타를 만든 두 사람으로 오노 다이이치와 가미야 쇼타로를 꼽는다. 오노가 생산방식 혁신을 통해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만들었다면 가미야는 소비자와 회사를 연결하는 판매 시스템을 구축했다. 차를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같은 꿈을 꾸었던 시대. 토요타의 성장 뒤에는 판매의 신 가미야 쇼타로가 있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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