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SUV, 완전히 다른 주행 감각
-새로 만든게 아닌, 끝없이 다듬어낸 느낌
-하이브리드·PHEV·GR,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좋은 영화에는 감독판이 있다. 이야기는 같고 등장인물도 같다. 하지만 편집을 다시 하고, 장면을 덜어내고, 디테일을 더하면 같은 영화는 전혀 다른 완성도를 갖게 한다.
토요타 RAV4가 그런 차였다. 한국토요타자동차는 신형 RAV4를 2가지 하이브리드와 2가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로 선보였다. 그리고 이 차들은 하나의 SUV를 여러 차례 걸쳐 다듬어낸 감독판 영화 같았다. 효율을 개선한 하이브리드, 전동화의 완성도를 높인 PHEV, 운전의 즐거움을 끌어올린 GR 스포츠까지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으면서도 토요타의 완성도 높은 제품 경쟁력은 한결같았고 또 각각의 매력은 확실했다.
▲디자인&상품성
RAV4는 한눈에 봐도 이전보다 훨씬 강인해졌다. '라이프 이즈 언 어드벤처(Life is an Adventure)'라는 개발 콘셉트 아래 SUV다운 비례와 존재감을 강조하면서도 도심형 SUV 특유의 세련미를 함께 담아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부분은 전면이다. 프리우스와 크라운 시리즈를 시작으로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램프 디자인은 이전보다 날렵하고 공격적인 인상을 만든다. 여기에 차체와 동일한 컬러를 적용한 입체적인 메시 그릴과 낮게 깔린 범퍼는 차가 더욱 넓고 안정적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측면은 RAV4 특유의 견고한 SUV 비례를 유지한다. 높은 지상고, 두툼한 휠 아치, 각진 캐릭터 라인이 어우러지며 '어디든 갈 수 있는 차'라는 인상을 만든다. 후면부는 수평형 램프와 넓은 펜더를 통해 차체 폭과 안정감을 강조했다
트림별 성격도 명확하다. 이날 시승을 위해 마련된 하이브리드 리미티드는 가장 정제된 분위기다. 전용 20인치 휠을 적용했지만 과하게 스포티하지 않고 패밀리 SUV다운 균형감을 유지한다. PHEV XSE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블랙 컬러를 활용한 디테일과 급속충전 기능을 갖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라는 점에서 상품성이 한층 높다.
반면 GR 스포츠는 같은 차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전용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 와이드 휠 아치, 윙 타입 리어 스포일러, 레드 브레이크 캘리퍼, 전용 경량 20인치 휠까지 적용했다. 단순히 외관만 꾸민 것이 아니라 공력 성능까지 고려한 설계다. 풍동시험을 거쳐 설계된 프런트 립과 리어 스포일러는 실제 다운포스를 발생시켜 고속 안정성을 높인다.
실내는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가장 크게 달라졌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2.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 새로운 인포테인먼트는 반응 속도와 구성, 연결성 모두 이제는 '비교'가 가능할 만큼 일취월장했다. LG와 함께 만든 클로바 AI 음석인식, 실시간 스트리밍, 내비게이션까지 갖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차를 제어하는것도 가능해졌다. 그동안 일본차를 이야기할 때마다 따라붙던 '인포테인먼트가 아쉽다'는 평가를 지워냈다.
디지털화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공조장치와 주요 기능은 물리 버튼을 그대로 남겨 직관성을 확보했고 센터콘솔 활용성도 높였다. 양방향으로 열리는 콘솔박스와 뒤집으면 트레이로 사용할 수 있는 암레스트 등은 사용자의 실제 편의성을 고민한 흔적이다.
적재공간도 넉넉하다. 하이브리드는 기존보다 넓어진 749ℓ의 트렁크를 확보했고 PHEV 역시 672ℓ를 제공한다. 수치만 보면 하이브리드가 조금 더 크다. 이유가 있다. 토요타는 PHEV의 주행 밸런스를 위해 배터리와 연료탱크 위치를 새롭게 설계했고 그 결과 일부 적재공간을 양보했다. 단순히 공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주행 감각을 위한 선택이다.
▲성능
하이브리드 리미티드부터 시승했다. 2.5ℓ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 기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고 시스템 총 출력 239마력을 내는 차다. 복합연료 효율은 ℓ당 15.6㎞. HEV XLE(230마력)보다 출력은 소폭 높고 E-Four 사륜구동 시스템과 20인치 휠을 갖췄다는 점 정도가 차이다.
출발은 모터가 담당하고 속도가 붙으면 엔진이 자연스럽게 개입한다. 이 과정에서 울컥임이나 변속감은 거의 없다. e-CVT 특유의 매끄러움은 여전히 강점이다. 과거 토요타 하이브리드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차'였다면 이번 RAV4는 여기에 모터의 존재감이 더해졌다.
가속 페달을 얕게 밟고 흐름을 타면 엔진은 생각보다 오래 잠잠하다. 일정 구간에서는 전기차처럼 움직인다는 느낌도 든다. 모터가 차를 먼저 끌고 가고, 엔진은 뒤에서 회전수를 억제한 채 효율적으로 힘을 보탠다. 토요타가 배터리 출력과 모터 시스템을 개선하고 엔진 회전 상승을 억제했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실제 주행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고속 효율이다. 시승 환경은 도심보다는 고속 주행 비중이 높았다. 그럼에도 실제 연료 효율은 ℓ당 20㎞를 훌쩍 넘겼다. 고속에서 엔진이 계속 돌아야 하는 환경임에도 모터 개입과 회생제동, 엔진 부하 제어가 촘촘하게 맞물린 결과다.
승차감도 인상적이다. 노면 충격을 날카롭게 전달하기보다 둥글게 걸러내고 차체 움직임도 급하지 않다. 조향 역시 가볍고 자연스럽다. 운전 재미를 앞세우기보다 동승자까지 편하게 만드는 세팅이다. 패밀리 SUV로서 가장 설득력 있는 차를 찾는다면 하이브리드 리미티드가 가장 맞겠다.
다음으로 앉은 차는 PHEV XSE. 시스템 총 출력은 329마력이다. 22.68㎾h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전기만으로 복합 기준 77㎞를 달릴 수 있고 효율은 휘발유 기준 ℓ당 15.3㎞, 전기 기준 ㎾h당 4.3㎞다. 50㎾급 급속충전도 지원하는데 10%에서 80%까지 약 35분이면 충분하다.
숫자만 보면 HEV와 PHEV의 차이는 출력 차이로 읽힌다. 하지만 두 차의 차이는 단순히 'PHEV가 더 빠르다'로 정리되지 않는다. 엔진이 언제 깨어나는지, 모터가 어느 속도 영역까지 주도권을 쥐는지, 배터리 무게가 차체 자세를 어떻게 바꾸는지까지 모두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엔진의 존재감이다. PHEV는 아예 전기차에 가깝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엔진이 쉽게 깨어나지 않는다. 저속은 물론이고 중속 영역에서도 모터가 주도권을 쥔다. 엔진은 필요할 때만 뒤늦게 등장한다.
이 때문에 가속 감각이 훨씬 선명하다. 엔진 회전수가 먼저 치솟고 차가 뒤따라오는 느낌이 아니라, 페달을 밟는 만큼 즉각적으로 밀어붙인다. 329마력이라는 숫자는 절대 작지 않지만 PHEV XLE의 매력은 폭발적인 가속보다 매끄러운 토크 전달에 있다. 엔진 개입이 줄어드니 실내로 들어오는 소리의 결이 달라지고 자연스레 정숙성은 한 단계 높다.
밸런스는 더 흥미롭다. PHEV는 더 큰 배터리 때문에 하이브리드보다 무겁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무게 증가는 운동성능에 불리하다. 하지만 RAV4 PHEV는 그 무게를 약점으로만 쓰지 않는다. 더 크고 무거운 배터리가 차체 아래에 깔리면서 무게중심을 낮춘다. 여기에 토요타는 단순히 기존 공간에 배터리를 얹지 않고 배터리 위치와 연료탱크 위치까지 다시 조정했다.
그래서 차의 자세가 다르다. 코너에 진입할 때 상체가 먼저 흔들리는 느낌이 적고 차체 아래쪽이 노면을 붙잡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생각보다 더 낮게 깔려 움직인다. 차체가 무거워졌지만 둔해졌다기보다 안정감이 늘었다. 적재공간 몇 리터보다 주행 밸런스를 선택한 것. 토요타의 집요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지막은 PHEV GR 스포츠다. 솔직히 가장 놀랐던 차다. 제원상 출력은 PHEV XLE와 같다. 하지만 운전 감각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파워트레인을 두고 섀시와 조향, 휠과 차체 보강만으로 차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변화는 출발하자마자 느껴진다. 스티어링 휠을 돌렸을 때 앞머리가 반응하는 속도가 다르다. PHEV XLE가 안정적이고 묵직하게 움직인다면 GR 스포츠는 한층 날카롭게 방향을 바꾼다. 조향 중심 부근의 유격이 줄었고 코너 진입 때 앞바퀴가 노면을 물고 들어가는 감각도 더 선명하다.
차체 롤도 억제돼 있다. SUV 특유의 높은 자세는 남아 있지만 움직임은 훨씬 낮고 단단하다. 코너 중간에서 스티어링을 조금 더 감아 넣었을 때 차가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적다. 운전자가 입력한 만큼 차가 바로 반응한다. GR 스포츠가 단순한 외관 패키지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실제로도 단순한 '디자인 패키지'가 아니다. 토요타는 GR 스포츠가 '최상위 트림'이 아닌 '고성능 GR 브랜드의 엔트리' 라고 정의한다. 전용 프런트 퍼포먼스 댐퍼와 리어 서스펜션 보강 파츠가 들어가고 EPS도 스포츠 모드에서 더 단단하고 묵직한 조향감을 내도록 전용 맵핑을 적용했다. 전용 20인치 경량 알로이 휠은 일반 휠보다 8㎏ 이상 가볍고, 트레드는 20㎜ 넓어지는 등 고성능차같은 설계가 대거 적용됐다.
그렇다고 거칠지는 않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대개 이런 차들은 승차감을 희생한다. 그러나 RAV4 GR 스포츠는 노면 충격을 무작정 단단하게 튕겨내지 않는다. 큰 충격은 단단하게 받아내지만 잔진동은 비교적 잘 걸러낸다. 차체를 조이는 느낌은 있지만 피로하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승차감과 다이내믹이 공존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가속 감각도 PHEV XLE보다 더 적극적으로 느껴진다. 출력 수치는 같지만 차체 반응이 빨라진 덕분이다. 같은 329마력이라도 GR 스포츠는 페달 입력 이후 차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가는 과정이 더 또렷하다. 파워트레인보다 섀시가 먼저 말하는 차다.
▲총평
다시 처음 이야기한 감독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영화의 구성이나 디테일은 모두 다르지만 영화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RAV4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번 시승에서 가장 크게 느낀 하나의 결론은 '집요함'이었다. 배터리 위치, 연료탱크, 모터 개입 시점, 조향감각까지. 하나하나 끊임없이 손 본 흔적이 역력하다.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기존의 제품에 개선에 개선을 거듭해오는 토요타 다운 접근법이다. 그 결과 하이브리드는 더 부드러워졌고, PHEV는 더 전기차에 가까워졌으며 GR 스포츠는 운전의 즐거움까지 품었다.
신형 RAV4의 가격은 하이브리드 XLE 4,927만원, 하이브리드 리미티드 5,746만원, PHEV XSE 6,160만원, PHEV GR 스포츠 6,180만원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