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잉스퍼·컨티넨탈 GT 아주르 트랙에서 타보니...
-속도보다 신뢰, 출력보다 여유, 벤틀리식 퍼포먼스 보여줘
페라리를 떠올리면 F1이 생각난다. 포르쉐에는 뉘르부르크링이 있다. 그렇다면 벤틀리는 무엇으로 기억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알싸한 가죽 냄새와 견고한 우드 베니어, 두툼한 양털 카펫을 떠올릴 것이다.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호텔 발렛파킹 구역이 어울리고 비교 대상으로는 롤스로이스나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건 벤틀리의 결과일 뿐이다.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턱시도 대신 레이싱 고글을 쓴 신사들, 런던의 클럽 대신 르망의 피트, 그리고 럭셔리카 대신 24시간을 내달리는 경주차 까지. 벤틀리의 시작은 호텔 앞이 아니라 서킷이었다. 그것도 르망이었다.
1920년대 르망 24시는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제조사가 수백 명의 엔지니어를 동원하고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기술 경쟁의 무대가 아니었다. 사업가와 귀족, 의사와 모험가들이 자신의 돈으로 자동차를 구입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출전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젠틀맨 드라이버'라고 불렀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다. 벤틀리 보이즈(Bentley Boys). 그들은 단순히 레이스를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동차를 사랑했고, 속도를 즐겼으며, 삶 자체를 모험으로 여겼던 낭만주의자들이었다. 런던에서는 턱시도를 입고 사교계를 누비다가도 며칠 뒤에는 같은 벤틀리를 몰고 프랑스 르망으로 향했다. 24시간의 레이스를 마치면 다시 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장난도 서슴지 않았다. 1930년, 벤틀리 보이즈의 핵심 멤버인 울프 바나토는 당시 유럽 최고의 특급열차였던 '르 트랭 블뢰(Le Train Bleu)'보다 먼저 런던에 도착하겠다며 내기를 걸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는 벤틀리를 몰아 도버 해협을 건넜고 열차가 종착역에 닿기도 전에 런던의 자신의 클럽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철없는 객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객기가 아니라 낭만이었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자유와 모험을 상징하던 시대. 벤틀리 보이즈는 가장 빠른 사람이 되기 위해 달린 것이 아니라, 가장 멋지게 달리는 삶을 즐겼다.
지난 19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벤틀리의 트랙 익스피리언스는 문득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시승하기로 한 차는 플라잉스퍼 아주르와 컨티넨탈 GT 아주르. 벤틀리에서 '편안함'을 담당하는 세그먼트였기에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 선택이 벤틀리다웠다.
벤틀리는 레이스를 잘하기 위해 편안함을 포기하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100년 전 벤틀리 보이즈 역시 르망을 달리기 위해 불편한 경주차만 만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레이스를 마친 뒤에도 같은 차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자동차는 서킷에서만 빠르면 되는 기계가 아니라 긴 여행과 일상을 모두 책임질 수 있어야 했단 뜻이다.
그 철학은 오늘날 벤틀리가 말하는 '그랜드 투어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플라잉스퍼 아주르와 컨티넨탈 GT 아주르는 그 철학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차다.
둘 다 최고출력 680마력, 최대토크 94.8㎏·m를 발휘하는 V8 기반 하이 퍼포먼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품고 있다. 컨티넨탈 GT 아주르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7초, 플라잉스퍼 아주르는 3.9초 만에 도달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슈퍼카다. 하지만 벤틀리는 이 성능을 랩타임 경쟁보다 '품격 있는 속도'를 위해 사용한다.
솔직히 말하면 플라잉스퍼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긴 차체와 2.5t을 훌쩍 넘는 차체는 물리법칙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첫 번째 브레이킹 포인트를 지나 스티어링을 꺾는 순간까지도 그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코너를 하나, 둘 이어가자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플라잉스퍼는 민첩한 차가 아니라 그보다 더 놀라운 차였다. 거대한 차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서다.
차체는 분명히 크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는 동작에는 망설임이 없다. 앞머리는 예상보다 가볍게 코너 안쪽을 파고들고 뒤따르는 차체는 묵직한 관성을 품은 채 자연스럽게 회전한다. 덩치를 숨기려 애쓰기보다 운전자가 덩치를 의식하지 않도록 만든다. '산뜻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렸다.
반면 컨티넨탈 GT 아주르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보여줬다. 이 차는 노면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다. 고속 코너에서 스티어링을 유지한 채 가속 페달을 조금 더 깊게 밟자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엔진음이 아니라 타이어의 비명이었다.
인상적이었던건 그 다음. 스포츠 모드에서는 일정 수준의 슬립을 허용한다. 차체는 아주 미세하게 자세를 틀며 운전자에게 한계를 알려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불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타이어는 마지막까지 노면을 움켜쥐고 차체는 운전자를 안심시키며 코너를 빠져나간다.
슬립은 허용하지만 그립은 잃지 않는다. 벤틀리 다이내믹 라이드와 올 휠 스티어링, eLSD, 사륜구동 시스템은 운전자를 대신해 물리법칙과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법칙을 존중하면서도 그 한계를 조금씩 뒤로 밀어낸다. 벤틀리가 만든 퍼포먼스는 공격성이 아니라 신뢰감이었다.
그 순간, 오래전 봤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 도시가 무너지고 고속도로가 갈라지며 절벽 위 바위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재난 한가운데에서, 호기롭게 안토노프 화물기에서 뛰어 내리던 검은색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였다.
그때는 단순히 비싼 자동차를 등장시킨 연출이라고 생각했는데 서킷 위에서 벤틀리를 몰고 있으니 왜 벤틀리를 택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자동차. 무너지는 길에서도 노면을 놓지 않는 자동차. 그리고 운전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믿을 수 있는 자동차. 그것이야말로 100년 전 벤틀리 보이즈가 르망에서 증명하려 했던 가치였다.
벤틀리가 W12를 내려놓고 V8 엔진 기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기량은 줄었고 실린더 수도 줄었다. 대신 벤틀리는 전기모터를 더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와 전동화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석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몇 바퀴 달려본 뒤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벤틀리가 전기모터를 선택한 이유는 친환경이 아니라 벤틀리다운 속도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전기모터가 먼저 94.8㎏·m의 토크를 매끄럽게 전달한다. 그 빈자리를 V8이 자연스럽게 이어받는다. 과거 대배기량 엔진 특유의 묵직한 토크를 잃지 않으면서도 응답성은 훨씬 빨라졌다. 두 동력원이 경쟁하지 않는다. 서로의 단점을 지우고 장점만 남긴다.
680마력이라는 숫자도 마찬가지다. 벤틀리는 운전자를 겁주기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가 아니다. 언제든 추월할 수 있고, 언제든 가속할 수 있으며, 언제든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여유를 주기 위한 출력이다. 실제로도 벤틀리가 말하는 퍼포먼스는 극한에서의 최고속도가 아닌, 여유 속에서의 최고속도를 의미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벤틀리 보이즈가 왜 굳이 르망에 도전했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들의 목표는 가장 빠른 랩타임이 아니었다. 르망은 당시 자동차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믿을 수 있게 달릴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무대였다. 그들은 레이스에서 우승하기 위해 차를 만들었지만 우승한 뒤에도 같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동차를 원했다.
레이스와 여행, 퍼포먼스와 럭셔리, 속도와 안락함. 지금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가치처럼 보이지만 벤틀리는 100년 전부터 그 둘이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플라잉스퍼 아주르와 컨티넨탈 GT 아주르는 그 철학을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플라잉스퍼 아주르는 거대한 체구를 잊게 만들 만큼 경쾌했다. 럭셔리 세단이라는 선입견은 연속 코너를 몇 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운전자는 차를 끌고 간다는 느낌보다 차가 먼저 움직여 준다는 감각을 받는다. 반대로 컨티넨탈 GT 아주르는 더 직설적이었다.
고속 코너에서 타이어는 비명을 지르지만 끝내 접지력을 놓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는 운전자에게 아주 약간의 자유를 허락한다. 차체는 미세하게 자세를 틀며 '여기까지는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벤틀리가 100년 동안 발전시켜 온 것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감이었다.
문득 처음 떠올렸던 벤틀리 보이즈가 다시 생각났다. 특급열차와 내기를 벌이고 르망을 달린 뒤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신사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철없고 무모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동차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좋은 자동차란 가장 빠른 자동차가 아니라, 가장 멀리 달릴 수 있는 자동차라는 사실을 말이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만난 플라잉스퍼 아주르와 컨티넨탈 GT 아주르는 바로 그 오래된 믿음을 현대적인 기술로 다시 증명하고 있었다. 결국 벤틀리가 지금도 '벤틀리 보이즈'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정신은 우승컵이 아니라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신사는 속도를 과시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할 때 언제든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이 끝난 뒤에도 피곤함 대신 여유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아마 그것이 벤틀리가 지난 100년 동안 한 번도 잃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잃지 않을 '그랜드 투어러'의 정의일 것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