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대신 절제를 선택한 플래그십
-한국적 럭셔리를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해
기업가도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다. 정말 힘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굳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부의 문법도 달라졌다. 예전에야 금시계와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있는 티'를 내야 했지만 오늘날의 부자들은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명품을 고르고 가장 좋은 원단으로 만든 양복일수록 검은색을 선택한다. 과시보다 절제, 화려함보다 품격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제네시스 G90 롱휠베이스 블랙도 같은 철학에서 출발했다. 굳이 '나를 봐달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를 알게 만든다. 가장 많은 것을 더해서가 아니라 가장 많은 것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권위를 완성했다.
▲디자인&상품성
먹은 화려한 안료가 아니다. 단 하나의 색으로 여백을 살리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채운다. 그래서 동양화의 아름다움은 무엇을 그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겨두었는지에서 시작된다. G90 롱휠베이스 블랙도 그와 닮았다.
제네시스는 크롬을 더하지 않았다. 오히려 빼냈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과 엠블럼, 범퍼 몰딩, 윈도 몰딩, 헤드램프 내부 베젤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유광 블랙 전용 휠과 블랙 플로팅 휠캡, 다크 메탈릭 레터링까지 더해 차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완성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기존 G90은 크롬이 만들어내는 화려함이 중심이었다면 블랙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그릴은 물론 날개 형상의 엠블럼, 범퍼 인테이크 몰딩, 헤드램프 내부 베젤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마감했다.
신기하게도 화려함은 줄었는데 존재감은 더 커졌다. 크롬이 반사하던 빛이 사라지자 시선은 자연스럽게 G90 특유의 두 줄 램프와 거대한 방패형 그릴의 형태에 집중된다. 마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흰 셔츠 하나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과 비슷하다.
후면은 화려함보다 여운이 남는다. 다크 메탈릭 컬러의 제네시스 레터링은 가까이에서 봐야 비로소 존재를 알 수 있다. 크롬 레터링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절제된 표현이 오히려 품격을 높인다. 범퍼 하단의 장식 역시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하면서 시선은 차체 전체의 안정적인 자세로 향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검게 만들었는데 오히려 차가 더 잘 보인다. 크롬이 사라지니 시선은 장식이 아니라 차체의 비례로 향한다. 3,375㎜에 이르는 긴 휠베이스와 후륜으로 길게 뻗은 실루엣이 더욱 강조된다. 거대한 차체는 위압감을 주기보다 묵직한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버튼과 스위치, 스티어링 휠, 패들시프트, 도어스텝까지 모두 검은색이다. 블랙 애쉬우드에는 황동(브라스)을 은은하게 입혀 먹 위에 번지는 금가루 같은 깊이를 더했다. 화려한 장식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최고급 세단다운 품격을 놓치지 않았다. 전용 웰컴·굿바이 애니메이션과 그래픽 테마 역시 블랙만의 감성을 완성하는 요소다.
이 차의 진짜 주인공은 역시 뒷좌석이다. 롱휠베이스가 제공하는 넉넉한 레그룸은 물론 세미아닐린 퀼팅 시트는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리클라이닝과 마사지 기능은 이동 시간을 휴식으로 바꿔준다. 후석 스마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화면을 키우고 해상도를 높여 업무와 휴식 모두를 만족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간에서도 화려함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형 디스플레이와 다양한 편의장비를 갖췄지만 모든 것이 조용히 제 역할을 한다. 화려한 우유색빛 가죽이나 브라운 컬러로 탑승자를 압도하려 하지 않고 온전히 탑승자만 도드라지게 한다. 어쩌면 이런 점이 제네시스가 가장 직관적으로 추구하는 럭셔리일지 모르겠다.
▲성능
권력은 힘이 없어서 조용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과시하지 않는 것이다. G90 롱휠베이스 블랙 역시 그렇다.
보닛 아래에는 3.5ℓ V6 가솔린 터보 엔진과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를 품었다. 최고출력 415마력, 최대토크 56.0㎏·m를 발휘하며 8단 자동변속기와 사륜구동 시스템이 맞물린다. 하지만 G90은 그 숫자를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엔진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차를 밀어낸다. 배기음을 키우지도, 운전자의 등을 거칠게 떠밀지도 않는다. 대신 2.4톤이 넘는 차체를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움직인다. 이 '아무렇지 않음'이야말로 G90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시속 100㎞를 넘겨도 차 안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은 두꺼운 문과 이중 접합 유리를 거치며 대부분 걸러지고, 엔진음 역시 필요한 만큼만 실내로 들어온다.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보다 여전히 조용하다는 사실이 먼저 느껴진다.
진짜 성능은 코너가 아니라 요철에서 드러난다. 노면 정보를 카메라로 미리 읽어 서스펜션을 제어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과속방지턱이나 이음매를 한 번 걸러내고, 에어 서스펜션은 그 충격을 다시 한번 다듬는다. 덕분에 차는 노면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듯한 감각을 만든다.
특히 롱휠베이스 특유의 긴 차체는 고속도로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앞바퀴가 넘은 충격을 뒷바퀴가 따라갈 때까지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움직임은 한층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이어진다. 뒷좌석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운전 재미를 포기한 차는 아니다. 후륜 조향 시스템은 긴 차체가 무색할 만큼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준다. 저속에서는 회전 반경을 줄이고 고속에서는 차선을 바꿀 때 차체를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스티어링은 무겁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다.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 전달하고, 운전자의 긴장을 불필요하게 높이지 않는다. 재미보다 신뢰, 자극보다 안정. G90 롱휠베이스 블랙은 운전자를 흥분시키기보다 안심시키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총평
먹은 가장 화려한 색이 아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색으로 가장 깊은 풍경을 그려낸다. 제네시스 G90 롱휠베이스 블랙도 그렇다. 크롬을 덜어냈고, 장식을 지웠다. 대신 차체의 비례를 드러냈고, 소재의 질감을 강조했으며 탑승자의 경험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성능 역시 마찬가지다. 415마력이라는 숫자를 과시하지 않고 승차감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저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에게 '가장 편안한 이동'이라는 플래그십 본연의 가치를 묵묵히 수행한다.
제네시스는 늘 '한국적인 럭셔리'를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G90 롱휠베이스 블랙은 그 철학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차다. 서양식 럭셔리가 더하는 미학이라면, G90 롱휠베이스 블랙은 덜어내는 미학을 선택했다. 먹 한 획으로 깊이를 표현하듯, 검은색 하나만으로 권위와 품격을 완성했다.
제네시스 G90 롱휠베이스 블랙의 가격은 1억7,498만원부터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