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장비 이용해 차종별 맞춤 사운드 구현의 시작점
-양산차로 옮겨 적용하고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 만들어
음악은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같은 곡이라도 작은 방에서는 담담하게 들리고 웅장한 공연장에서는 온몸을 울리는 전율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수많은 소음과 반사가 뒤섞이는 자동차 안에서는 어떻게 원곡이 의도한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염곡동의 하만 카랩 청음실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음표와 데이터가 만나 자동차 안에 또 하나의 공연장을 만드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당 장소는 하만 코리아 카오디오 어쿠스틱 시스템 엔지니어링(ASE) 팀이 양산차 오디오를 개발하는 핵심 거점이다. 자동차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음악을 원곡의 의도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상적인 환경에서 소리가 어떻게 들려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만은 이러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 완벽한 청취 환경을 구축했고 이곳에서 엔지니어들은 레퍼런스 사운드를 확인하며 차종별 튜닝 방향을 설정한다. 앞으로는 신기술과 선행 기술 연구, 고객사를 대상으로 한 사운드 프레젠테이션 공간으로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청음실은 스튜디오브릭스의 최첨단 방음 부스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넓이 4.8m, 깊이 7m, 천고 3m 규모의 모듈식 공간은 다양한 테스트 환경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벽면 곳곳에는 입·출력 패널을 배치해 자유로운 시그널 플로우 전환이 가능하다. 원격 제어가 가능한 다채널 디지털 콘솔을 활용해 높은 범용성과 확장성을 확보했다.
음향 장비 역시 최고 수준이다. 메인 스테레오 레퍼런스 스피커로는 뱅앤올룹슨 베오랩 50을 설치했다. 돌비 애트모스 튜닝을 위해 JBL 708P 레퍼런스 모니터 7대와 JBL 705P 레퍼런스 모니터 4대를 활용한 7.1.4채널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에 JBL 신세시스 SDP-55 A/V 프로세서와 조합해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사운드를 구현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하만의 독자적인 공간 음향 기술인 '버추얼 베뉴 라이브'다. 세계적인 공연장의 음향 특성을 정밀하게 측정한 뒤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자동차 안에서도 실제 공연장에 있는 듯한 공간감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엔지니어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며 소비자들이 경험하게 될 미래의 자동차 사운드를 완성해 나간다.
청음실에서 이상적인 레퍼런스 사운드를 확인한 뒤 곧바로 옆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제네시스 G90과 관련 엔지니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청음실에서 들었던 '기준'이 실제 자동차 안에서는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실에서 끝나는 개발이 아니라 소비자가 실제로 듣게 될 마지막 순간까지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 그 결과물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체험한 것은 제네시스 G90에 들어간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이다. 하만은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탑승자의 취향과 감정에 따라 변화하는 '제2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술이 바로 버추얼 베뉴 라이브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차량 탑승자와 그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세계적인 공연장으로 음향적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개발했다. 원래는 아티스트와 밴드가 공연을 준비하며 차고나 연습실, 스튜디오에서도 실제 공연장과 같은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하만 프로페셔널 솔루션에서 개발한 기술이었다. 이후 이를 자동차에 맞게 발전시켜 운전 중에도 라이브 공연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몰입감을 구현했다.
기술의 핵심은 실제 공연장의 음향을 그대로 데이터화하는 데에 있다. 실제로 하만의 음향 엔지니어들은 세계 유명 공연장을 직접 찾아가 임펄스 반응을 측정하고 공간의 잔향과 반사음, 울림 특성을 알고리즘으로 구현했다. 이렇게 완성된 음장 데이터를 차 오디오 시스템에 적용함으로써 자동차 안에서도 공연장의 공간감을 자연스럽게 재현한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제네시스와 하만 엔지니어들의 협업을 통해 G90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에 처음 적용했다. 차에는 총 23개의 스피커와 8개의 마이크가 들어간다.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차 내부 음향을 분석하고 음악 뿐 아니라 탑승자의 목소리와 박수 소리까지 공연장에서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공간 속에 녹여낸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역시 뒷받침돼야 한다. 우퍼와 미드레인지, 트위터로 구성한 3웨이 스피커 시스템은 물론 천장에 배치된 헤드라이너 스피커가 핵심 역할을 맡는다. 머리 위에서 전달되는 소리를 통해 높이감과 입체감을 표현하고 공연장의 웅장한 공간감을 완성한다.
버추얼 베뉴 라이브는 2022년 제네시스 G90을 통해 처음 양산차에 적용했다. 이후 2024년형 G90에는 뱅앤올룹슨의 레퍼런스 청취 공간인 '뱅앤올룹슨 홈'과 클래식 공연의 성지인 '보스턴 심포니 홀'에 이어 영국의 상징적인 공연장인 '웸블리 스타디움'까지 추가했다.
특히, 웸블리 스타디움은 1985년 라이브 에이드를 비롯해 에드 시런, 마돈나, 해리 스타일스, 테일러 스위프트, BTS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공연한 대표적인 음악 성지다. 하만과 제네시스 엔지니어들은 웸블리 특유의 음향 시그니처를 정밀하게 측정해 버추얼 베뉴 라이브에 반영했다. 운전자는 차 안에서도 웸블리 공연장 객석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G90에서 버추얼 베뉴 라이브를 체험해 보니 단순히 잔향을 더한 효과와는 확연히 달랐다. 공연장의 크기와 천장의 높이, 객석에서 반사되는 소리까지 자연스럽게 표현되며 무대와 관객 사이에 앉아 있는 듯한 입체감이 전달됐다. 청음실에서 시작된 엔지니어들의 집요한 튜닝은 결국 자동차 안에 또 하나의 공연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