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차 중심 시장서 신선한 대안으로 부상
-팰리세이드·아이오닉9·스타리아에도 관람객 몰려
-중국차 급성장 속 다음 단계 현지화 전략은 과제
"집에 아이오닉5가 있다면 부유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가이킨도 인도네시아 국제모터쇼(GIIAS) 현장에서 만난 한 인도네시아 기자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대차가 단순한 대중 브랜드를 넘어 세련되고 새로운 자동차를 만드는 한국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차 부스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오닉9과 스타리아 일렉트릭,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등의 신차는 물론 스타게이저 카르텐즈, 크레타 등 주력 제품이 대거 전시됐지만 이미 출시된 아이오닉5를 살펴보는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아이오닉5는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제품으로 꼽힌다. 일본차 중심의 시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독특한 디자인과 전기차라는 상품성, 한국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며 현대차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 음악과 드라마, 영화, 화장품 등 이른바 K컬쳐가 인도네시아에 널리 확산하면서 한국산 제품 전반에 세련되고 현대적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자동차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현대차와 기아는 일본 브랜드와는 다른 디자인과 기술을 앞세우며 한국차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현대차의 신차가 공개되는 순간에는 부스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차량을 덮고 있던 천이 걷히자 관람객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고, 일부는 공개 직후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단순히 새로운 차를 보기 위한 반응이라기보다 현대차 신차 자체가 현지 소비자들의 관심 대상이 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현지 판매 계획이 없는 유럽 전략형 아이오닉3에도 관심이 쏠렸다. 인도네시아에서 판매되지 않는 차임에도 관람객들은 디자인과 실내 구성을 자세히 살펴봤다. 현대차가 어떤 전기차를 만들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관심이 제품 구매 여부를 넘어 브랜드 전반으로 확장된 모습이었다.
현대차의 현지에서 쌓은 프리미엄 이미지는 팰리세이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팰리세이드는 현지 대형 SUV 세그먼트에서 토요타 랜드크루저 등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평균 판매 가격이 10억 루피아(한화 약 1억원)를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인도네시아에 독립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처음으로 자체 부스를 꾸린 기아도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차만 전시하기보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현지 소비자의 관심을 부스로 끌어들이며 브랜드를 알리는 방식이었다.
기아 부스에서는 신형 셀토스와 목적기반차량 PV5에 관람객의 관심이 집중됐다. 셀토스의 외관과 실내를 살펴보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이어졌고, PV5 주변에서는 넓은 공간과 다양한 활용 방식을 확인하려는 관람객들이 발길을 멈췄다. 특히 현지에서 아직 생소한 PBV의 구조와 용도에 대한 질문이 잇따랐다.
부대 체험 시설로 마련한 ‘한국 거리’ 테마 공간도 인기를 끌었다. 관람객들은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거나 바나나우유 등 한국 음료를 맛보며 체험을 즐겼다. 자동차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여행과 음식, 대중문화에 대한 호감까지 브랜드 경험으로 연결한 셈이다.
결국 한국차의 경쟁력이 상품 자체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고 느껴졌다. 현대차가 아이오닉5와 팰리세이드로 기술과 고급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기아는 한국 문화에 대한 친밀감을 활용해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자동차 구매 관심으로 전환하려 한다는 점은 같았다.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일본차에 대한 익숙함이 오히려 한국차의 기회가 됐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관람객은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에게 일본차는 오랫동안 첫 차이자 가족이 함께 타는 대중차였다"며 "높은 신뢰성과 넓은 서비스망을 갖췄지만 너무 익숙해 새로움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일본차의 위세는 여전히 강력했다. GIIAS의 한 전시관 절반 가까이는 토요타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들이 차지했다. 토요타와 렉서스, GR, 다이하츠, 스즈키가 대규모 부스를 꾸리고 전기차부터 하이브리드, 소형차, 상용차, 모터스포츠 차량을 폭넓게 전시했다.
현지 생산 기반과 판매망, 금융서비스, 중고차 가치까지 이어지는 일본차의 생태계는 한국 업체들이 단기간에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 서비스망과 부품 수급, 재판매 가격을 중요하게 보는 인도네시아 소비자에게 일본 브랜드는 여전히 가장 안전한 선택지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거세다. BYD와 우링, 체리, 지커, 샤오펑 등은 저렴한 가격과 풍부한 편의품목, 공격적인 금융 프로그램을 앞세워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일부 업체는 이미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추며 가격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한국차는 일본차와 중국차 사이에서 새로운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일본차처럼 오랜 신뢰와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했고, 중국차처럼 가격을 크게 낮추기도 쉽지 않다. 아이오닉5와 팰리세이드로 구축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현지 생산과 금융, 서비스 경쟁력을 함께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