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식 프리미엄 아낌없이 드러내
-극강의 정숙함을 넘어 품격까지 담아
지난 5월 일본 토요타 테크니컬센터 시모야마에서 렉서스 신형 ES 350e를 가장 먼저 만났다. 글로벌 시장 공식 출시를 앞두고 위장막을 두른 개발차를 글로벌 미디어 대상으로 짧게 동승하는 제한적인 일정이었다. 직접 운전대를 잡지는 못했지만 차가 지향하는 방향만큼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신형 전기 ES는 렉서스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동화를 풀어갈 것인지 그 철학을 압축해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다가온 것은 압도적인 정숙성이었다. 전기차는 원래 조용하다. 하지만 ES 350e는 그 기준 자체를 다시 세운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고속에서 발생하는 풍절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전기모터가 회전하는 특유의 음색이나 회생제동이 개입할 때 들리는 저주파 진동마저 좀처럼 인식되지 않았다. 단순히 소리를 줄인 수준이 아니라 소음이라는 존재 자체를 실내에서 지워낸 듯한 인상이었다.
비결은 분명했다. 렉서스는 개발 단계부터 '모든 좌석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차체 전면과 바닥, 후면의 강성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려 불필요한 진동을 줄였고 차음 도어 글라스와 개선된 실링 구조를 적용해 외부 소음 유입을 최소화했다. 여기에 흡음재와 차음재, 제진재를 위치별로 다시 설계하면서 실내 전체의 음향 환경을 새롭게 다듬었다.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극적이었다. 실내에서는 오직 마크레빈슨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만 존재했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음향과 앰비언트 조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마치 고급 라운지에 앉아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기차가 조용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렉서스만의 고요함이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차가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차선을 변경하거나 긴 뱅크 구간을 통과하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부드럽다'였다. 그렇다고 무르거나 출렁거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차체를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서도 방향을 바꾸는 과정은 놀랄 만큼 자연스럽다. 조향 입력과 차체의 움직임 사이에 어색한 지연도 없고 자세를 바꾸는 모든 과정이 한 호흡처럼 이어진다. 기존 렉서스 특유의 정교함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세련된 감각으로 발전한 모습이다.
이 역시 새로운 기술의 결과였다. 신형 ES는 HEV와 BEV를 모두 수용하는 새로운 TNGA GA-K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차체 강성을 높여 구조적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ES 최초로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해 구동력 전달과 자세 제어 능력을 개선했다. 여기에 속도에 따라 후륜을 최대 4도까지 조향하는 다이내믹 리어 스티어링(DRS)을 더해 저속에서는 민첩한 회두성을, 고속에서는 뛰어난 직진 안정성을 확보했다.
렉서스가 오랫동안 다듬어온 '아지 미가키' 개발 철학도 그대로 녹아 있다. 운전자가 의도한 만큼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가속과 감속, 조향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지는 감각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왜 렉서스가 '렉서스 드라이빙 시그니처'를 강조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동승에 그친 짧은 경험이었지만 차의 성격만큼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라이벌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정숙성과 완성도 높은 승차감은 신형 ES만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오히려 직접 운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전동화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참고로 신형 ES의 전기차 라인업은 전륜구동 ES 350e와 사륜구동 ES 500e 두 가지로 나뉜다. 고출력 전기모터와 eAxle 변속기 조합이며 각각 최고출력 224마력, 342마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시간은 8.9초, 5.9초가 소요된다.
이와 함께 시승차인 ES 350e의 경우 약 685km의 목표 주행거리를 확보했고 이 외에 ES 500e에는 전후 구동력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다이렉트4 시스템을 적용해 상황에 따라 100:0부터 0:100까지 구동력을 자유롭게 배분한다. 렉서스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전동화 기술과 차량 운동 제어 기술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강렬했던 첫 만남을 뒤로하고 차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천천히 차를 둘러봤다.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은 영롱한 신형 ES는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외관은 온통 신선한 감각으로 가득했다.
화살촉 모양의 주간주행등은 여전하지만 헤드램프는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감싸 특별함을 더했고 전기차답게 스핀들 그릴의 위치는 깔끔한 차체 컬러로 감싸 놓았다. 유광블랙 면적을 키워 존재감을 드러냈고 샤크 노즈 스타일로 앞 코가 나와 있는 형태의 보닛 역시 달려나갈 것만 같은 역동성을 부여한다. 측면의 핵심은 사선으로 내려오는 두툼한 블랙 라인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비례감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그만큼 전기세단은 껑충하다는 편견을 잊어도 좋다
여기에 21인치 휠은 렉서스답게 촘촘한 살로 감싸 우아함을 키웠고 마일리지에 도움을 주는 미쉐린 프라이머시 5 에너지 타이어 조합도 이상적이다. 앞쪽 팬더는 상대적으로 짧은 편인데 전기 충전 포트가 자리한다. 이 외에 공기 역학을 고려해 도어 손잡이를 안쪽으로 감춰 놓은 것도 매력적이다.
뒤는 가로로 길게 이어진 테일램프가 특징이다. 렉서스 로고가 사라졌고 대신 레터링만 중앙에 깔끔히 자리 잡는다. 범퍼 양 끝단에는 L자형의 방향지시등을 별도로 표시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차가 넓어 보이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 외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며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실내도 기존에 알고 있던 렉서스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적용했고 앞으로 렉서스 라인업의 인테리어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심플하면서도 모던하고 그 속에서 고급스러움과 세련미가 공존한다.
크기가 작고 두툼한 스티어링 휠은 무척 단정하고 별도의 기능 아이콘도 표시돼 있지 않다. 패드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손을 대면 저절로 어떤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는지 계기판에 표시될 뿐이다. 이 같은 히든 타입은 센터페시아 중앙에도 놓인다.
손을 갖다 대면 공조 장치 버튼 불이 켜지는 것. 멋과 기능을 모두 잡은 신기술이 따로 없다. 이와 함께 적당한 크기의 디스플레이로 마련한 계기판은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 있지만 플로팅 타입으로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더한다. 거대한 센터 디스플레이 화면은 깔끔한 타일 구성으로 시인성이 좋고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센터터널 역시 공간 활용에 집중했으며 아주 작은 전자식 변속 레버와 꼭 필요한 버튼 한두 개가 전부다.
감성 품질도 빠짐없이 챙겼다. 정교한 빗살무늬 나무로 감싼 도어 패널은 고급스러운 다다미방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해 주며 질 좋은 가죽과 부드러운 스웨이드, 마크레빈슨 사운드 시스템 커버 역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모든 감각은 2열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으며 전기차 특성을 살려 훨씬 더 넓고 여유로운 공간감을 구현했다. 심지어 릴렉스 시트 적용으로 전동식 리클라이닝과 마사지 기능, 종아리 받침까지 스르륵 올라온다. 전용 공조장치와 송풍구, 햇빛가리게, 열선 및 통풍 등 우리가 원하는 기능들은 아낌없이 다 들어있다. 트렁크는 차 급이 보여줄 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를 자랑하며 양 옆으로 깊게 파여 있어 골프백을 가로로 놓아도 충분해 보인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신형 ES 350e는 렉서스가 앞으로 어떤 전기차를 만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긴 주행거리나 강력한 출력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운전자와 탑승자가 차 안에서 얼마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가였다. 압도적인 정숙성과 자연스러운 승차감, 세심하게 다듬은 조향 감각은 숫자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완성도를 만들어냈다.
차체 강성부터 서스펜션, 차음 설계, 전동화 시스템까지 각각의 기술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요소가 하나의 감각으로 이어지며 렉서스 드라이빙 시그니처를 완성한다. 이것이 오랜 시간 브랜드가 쌓아온 노하우이자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경쟁력이다.
일본(나고야) =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