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발전소 되고 트럭이 스스로 달려
-이동형 ESS부터 전기 지게차·자율주행 트랙터까지
-차박·영화관으로 꾸민 ‘전생’..충전기도 전력망 연결 준비
25일 서울 코엑스. 이곳에서 개막한 '2026 퓨처모빌리티위크'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최신 전기차들이 아니었다.
퓨처모빌리티위크는 EV트렌드코리아, 자율주행모빌리티산업전, 무인이동체×민군협력엑스포가 통합 개최되는 전시 이벤트다. 전시 행사의 성격에 맞게 완성차부터 충전·배터리, 자율주행, 드론, 국방 기술에 이르기까지 미래 이동수단을 둘러싼 다양한 기술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장에서 더 오래 발길을 붙잡은 건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전시물들이었다. 대형트럭은 전기가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이동형 발전소로 변했고, 지게차는 배기가스 없이 물류 현장을 누비는 작업 장비가 됐다.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트랙터-트레일러는 운전자 부족에 시달리는 장거리 물류의 대안을 제시했다. 전기차를 집과 사무실, 캠핑장과 영화관으로 바꿔놓은 공간도 등장했다. 충전기 역시 단순히 전기를 넣는 기계에서 벗어나 차를 자동으로 인증하고 결제하거나, 차에 저장된 전력을 다시 전력망으로 보내는 에너지 단말기로 진화하고 있었다.
코엑스 A홀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타타대우모빌리티의 전기트럭 기쎈이었다. 더 인상적인 부분은 트럭 뒤쪽. 화물을 싣는 적재함 대신 거대한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타타대우모빌리티와 인디고가 협업해 제작한 이동형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다. 겉모습은 대형 화물차지만 역할은 바퀴 달린 발전소에 가깝다. 전기를 저장한 뒤 전력 공급이 필요한 현장으로 직접 이동해 각종 장비와 시설에 전력을 공급한다.
물론 기존에도 소형 전기 상용차를 활용한 이동형 충전 서비스는 있었다. 현대차 ST1과 같은 차에 배터리와 충전기를 싣고 찾아가 방전됐거나 충전이 필요한 전기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인디고의 시스템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승용 전기차 한두 대의 긴급 충전보다 대량의 전력을 한꺼번에 옮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형트럭을 기반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더 많은 배터리와 관련 설비를 싣고 군부대와 항만, 건설 현장처럼 일시적으로 많은 전력이 필요한 곳에 대응할 수 있다. 재난으로 전력 공급이 끊긴 지역에 긴급 전력을 보내거나 여러 대의 전동화 장비를 동시에 충전하는 활용법도 기대된다.
이동형 ESS 옆으로 걸음을 옮기자 이번에는 지게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클라크가 선보인 전기 지게차다. 최신 전기차가 늘어선 전시장에서 지게차는 다소 투박해 보였지만 전동화가 향하는 방향을 설명하기에는 오히려 적합한 전시물이었다.
산업 장비의 전동화는 주행거리나 가속 성능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배출가스와 소음을 줄이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면서 운영비까지 낮추는 기술이었다. 클라크 측에 따르면 지게차에는 66.2㎾h또는 87.6㎾h 리튬 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해 최장 작업 시간은 66.2㎾h 버전이 5시간, 87.6㎾h 버전은 8시간이다. 지게차를 10년간 구동시킨다고 가정했을 때, 절감되는 금액은 내연기관 대비 1억원에 달한다는 것도 이들의 설명이다.
연결 통로 너머 B홀은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기술의 무대였다. 이곳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전시물은 마스오토 부스에 세워진 대형 트랙터-트레일러였다. 현대자동차 엑시언트를 기반으로 제작한 차체는 주변 부스보다 높이 솟아 있다. 승용차 크기의 자율주행 실험차를 주로 접했던 관람객들도 거대한 트랙터 앞에서는 한 번씩 걸음을 멈췄다.
외관은 일반적인 대형트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전석과 사이드미러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차를 자율주행 트랙터라고 할 수 있는건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잡은 카메라 기반 인공지능 자율주행 모델 '마스넷' 때문이다.
이들이 공개한 마스넷은주변 환경의 인지와 판단, 차의 제어 과정을 하나의 인공지능 모델로 연결하는 E2E 방식이다. 사람이 상황별 규칙을 일일이 입력하기보다 인공지능이 실제 도로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학습해 주행 방법을 판단한다. 대형트럭의 주행 특성에 맞춘 레벨 2+ 자율주행 솔루션 ‘코파일럿’도 함께 전시했다.
마스오토의 트럭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한 기술 시연용 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스오토는 지난 7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종단간 인공지능 기반 트레일러 화물 유상 운송 허가를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3분기부터 국내 3개 주요 노선에서 수출 화물 자율주행 운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자율주행 트럭 15대로 유상 운송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롱비치항과 조지아주를 연결하는 왕복 약 7,000㎞ 노선을 운영 중이다. 누적 자율주행 거리는 250만㎞, 확보한 실주행 데이터는 2,000만㎞에 이른다.
전기차의 쓰임을 일상으로 끌어온 공간도 눈에 띄었다. EV트렌드코리아 전시장 한쪽에 마련한 ‘전생 체험관’이다. 전생은 ‘전기차 생활’을 줄인 말이다. 전기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일하고 쉬며 취미를 즐기는 생활공간으로 재해석한 전시다.
체험관은 홈과 오피스, 캠프, 시네마, 패밀리·키덜트, 독서·명상, 웰니스, 드레싱 등 8개 주제로 구성했다. 차의 성능이나 주행거리 대신 정차한 전기차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기아 PV5는 집처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넓고 반듯한 실내와 목적에 따라 구성을 바꿀 수 있는 구조를 활용해 전기차를 움직이는 생활공간으로 제안했다.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은 노트북을 펼치고 업무를 볼 수 있는 이동형 사무실로 변신했다.
아이오닉9을 활용한 ‘EV 시네마’는 차 안을 작은 영화관으로 꾸몄다. 외부 소음과 시선을 차단한 독립된 공간에서 화면과 음향을 즐기는 방식이다. 이동 중에는 자동차였다가 주차한 뒤에는 개인 영화관이 되는 셈이다. 이 외에도 폭스바겐 ID.4는 가족과 취미를 위한 공간으로, 메르세데스-벤츠 EQS는 독서와 명상을 위한 장소로 꾸몄다. 아우디 Q4와 포르쉐 타이칸도 각각 건강관리와 패션이라는 주제에 맞춰 실내 활용법을 제안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특정한 신차 한 대가 아니었다. 자동차 산업은 오랫동안 얼마나 빠르고 멀리 달릴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해왔다. 퓨처모빌리티위크에서 확인한 다음 경쟁은 조금 달랐다. 한 대의 차에 얼마나 다양한 역할을 맡길 수 있는가에 관한 경쟁이었다.
행사장을 나서며 기억에 남은 것도 가장 화려한 전기차가 아니었다. 발전소가 된 트럭과 배출가스 없이 화물을 옮기는 지게차, 스스로 장거리 운송을 준비하는 트랙터였다. 퓨처모빌리티위크가 보여준 미래는 새로운 자동차보다 자동차의 새로운 쓸모를 찾기 위한 자리였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