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양돈·육가공 현장에 토요타생산방식 적용
-작업 동선·대기·불필요한 재고 줄여 생산성 높여
-숙련자의 '감각' 표준화..인력 부족 산업 전반에 시사점
토요타가 자동차 생산 현장에서 축적한 이들의 기업 문화 '카이젠'을 일본 현지 양돈 산업에 이식하고 있다.
2일 토요타에 따르면 토요타의 농업·바이오기술사업부는 일본 최대 돼지고기 생산지인 가고시마현에서 현지 농업협동조합과 함께 토요타생산방식(TPS)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인력 부족과 고령화에 직면한 산업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게 특징이다.
TPS는 토요타가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발전시킨 경영·생산관리 체계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 공급하는 ‘적시생산(Just in time, JIT)’과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멈춰 원인을 바로잡는 ‘자동화’를 두 축으로 한다. 더 빠르게 일하거나 인원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 숨어 있는 낭비를 찾아 지속해서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TPS가 지목하는 낭비에는 과잉 생산과 대기, 불필요한 운반과 이동, 재고, 불량 등이 포함된다. 작업자가 물건을 찾기 위해 걷거나 다음 공정을 기다리는 시간도 생산에 직접 기여하지 않는 낭비로 본다. 현장 구성원이 문제를 직접 찾아내고 작은 개선을 반복하는 ‘카이젠’ 역시 TPS를 구성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자동차와 양돈은 전혀 다른 산업처럼 보이지만 여러 작업이 순서대로 이어지는 공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동차 공장이 부품 조달과 조립, 검사, 출하로 이어지듯 양돈 산업도 사육과 이동, 도축, 가공, 포장, 출하 등의 단계를 거친다. 특정 단계에서 발생한 지연이나 혼선은 다음 공정의 대기와 노동 부담으로 연결된다.
최근 일본 축산업은 사료와 자재 가격 상승, 인력 부족, 가축 전염병 등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여름철 기온 상승도 더위에 취약한 돼지를 사육하는 데 부담을 더한다. 현장 인력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상당수 업무는 여전히 숙련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한다.
토요타팀은 대규모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기보다 현장의 동선과 반복 작업부터 살폈다. 먼저 각종 도구를 두는 장소를 정하고 불필요한 물품을 정리했다. 물건을 찾는 데 쓰던 시간을 월 4시간30분 줄이고 도구 분실 가능성도 낮췄다.
돼지를 이동시키는 넓은 통로에는 중앙 분리대를 설치했다. 이전에는 몸무게가 200㎏에 이르는 돼지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작업자와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통로를 둘로 나누자 돼지들이 자연스럽게 줄지어 이동했고 작업시간은 34% 단축됐다.
또한 자갈이 깔려 있던 외부 이동로도 포장하고 울타리를 설치해 폭을 좁혔다. 돼지가 자갈 위를 걷지 않으려 하거나 옆으로 흩어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4명이 1시간 넘게 걸리던 이동 작업을 2~3명이 30분 만에 마칠 수 있게 됐다.
새끼 돼지의 몸무게를 재는 수레와 출산을 돕는 수레는 하나로 합쳤다. 작업자가 수레를 바꿀 때마다 축사 울타리를 넘어야 하는 불편을 없앤 것. 그 결과 허리 부담과 부상 위험을 낮추면서 매달 12시간의 작업시간을 절약했다.
개선 활동은 양돈장을 넘어 육가공 공장과 식품 생산시설로 확대됐다. 육가공 공장에서는 포장용 빈 상자를 실제 필요한 수량만 준비하고 자주 쓰는 물품을 작업대 가까이에 배치했다. 이동시간은 월 2시간 줄었다. 바닥에 코팅을 적용해 상자를 밀어서 옮길 수 있도록 하면서 하루 23분을 추가로 절감했다.
식품 가공시설에는 모든 작업자가 볼 수 있는 곳에 업무 현황판을 설치했다. 당일 작업의 우선순위와 변경 사항을 공유하면서 정보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던 혼선을 줄였고 월 10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을 절약했다.기존에는 상자 8개를 수레에 쌓은 뒤 다음 공정으로 보냈던 운반 단위도 4개씩 나눠 이동하도록 했다. 많은 물량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문제를 해소하면서 월 5시간의 대기시간도 줄여냈다.
제품 출하 과정에서는 별도의 종이상자를 없애고 기존 운반 상자를 그대로 활용했다. 상자를 접고 제품을 담은 뒤 내용물을 표시하는 과정이 사라지면서 매달 9시간의 작업시간과 3만엔의 비용을 절약했다. 제품을 받는 판매점도 종이상자를 폐기해야 하는 부담을 덜었다.
사례의 핵심은 생산성을 사람의 숙련도나 체력에 맡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작업자의 속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적은 인원으로도 무리 없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소수 베테랑에게 의존하던 업무를 누구나 배워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신규 인력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생산성을 유지한 결과다.
이는 양돈업만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집약적인 산업 대부분이 구인난과 고령화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자동화 설비나 로봇이 거론되지만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이 같은 개선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토요타 측은 이번 개선 활동과 관련해 "불필요한 작업을 없애 확보한 시간과 인력을 다른 공정에 투입하고 업무 부담과 초과근무를 낮추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현장 구성원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며 "가고시마 현장에서도 개선 효과가 작업자의 안전과 편의로 나타난 뒤에야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