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마력보다 인상적인 섬세한 주행 밸런스
-GT부터 스포츠 플러스까지, 극명한 두 얼굴
-럭셔리와 고성능 모두 놓치지 않은 ‘S’의 가치
‘S’라는 알파벳 하나가 주는 무게가 상당하다. 애스턴마틴에서 S 배지는 단순히 출력을 조금 더 높인 상위 트림을 뜻하지 않는다. 기본형이 가진 성격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고 주행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뜻이 정확하다. DBX S 역시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보면 변화는 숫자로 먼저 다가온다. 4.0ℓ V8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727마력, 최대토크 900Nm를 뿜어낸다. 하지만 DBX S를 직접 몰아보면 출력 상승은 변화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강력해진 힘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운전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훨씬 많은 고민을 쏟았다. 그 결과 주행 밸런스와 반응, 감각은 기존 DBX와 또 다른 영역에 들어섰다. 무엇보다 정교해졌고 그만큼 짜릿하다.
키를 건네받은 뒤 실내외를 천천히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시동을 걸고 도로 위로 나갔다. DBX S의 존재 이유부터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첫인상은 예상과 정반대였다. 도심 속 DBX S는 727마력이라는 숫자를 잊게 할 정도로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가속페달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지 않고 엔진과 배기음도 얌전하다. 특히, 서스펜션이 노면의 자잘한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내는 모습은 웬만한 고급 세단 못지않다. 그만큼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700마력이 훌쩍 넘는 초고성능 SUV라고 해서 늘 운전자를 긴장시키는 차가 아니다. 주중 출퇴근이나 일상에서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애스턴마틴이 일상적인 주행 모드를 GT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속도를 높여 장거리 크루징을 이어가도 차는 한없이 여유롭다. 분명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부담이 없다.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랜드 투어러를 누구보다 잘 만드는 애스턴마틴의 실력이 SUV인 DBX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심을 빠져나와 교통량이 줄어든 외곽에서는 스포츠 모드로 바꿨다.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엔진 회전수는 높아지고 변속기는 한층 적극적으로 낮은 단수를 물었다. 스로틀 반응 역시 즉각적으로 변한다. 그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서스펜션이다. 차체를 탄탄하게 붙잡으면서도 승차감을 망가뜨리지 않는 절묘한 지점을 찾아냈다. 평소에는 유연하게 움직이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롤을 억제하며 정확한 궤도를 그린다.
굳이 무리하게 코너를 공략할 필요도 없다. 흐름에 맞춰 진입하고 탈출 시점을 조금 앞당겨 가속페달을 열어주면 DBX S는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빠져나온다. 차체가 크고 높으며 2톤이 훌쩍 넘는 SUV라는 물리적인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코너링 실력이라면 웬만한 고성능 스포츠 세단과 견줘도 아쉽지 않다.
여기에는 단순한 출력 상승 이상의 변화가 숨어 있다. 스티어링은 더욱 빠른 반응을 위해 다듬었고 전자제어식 액티브 사륜구동 시스템은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앞뒤 구동력을 조절한다. 특히 필요할 경우 최대토크의 100%를 뒷바퀴로 전달할 수 있어 코너 탈출에서 후륜구동 스포츠카 특유의 감각까지 살려낸다.
변속기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9단 자동변속기는 일반적인 토크컨버터 대신 습식 다판 클러치를 사용한다. 강력한 발진과 빠른 변속을 위한 선택이다. 숫자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엔진과 변속기, 구동계, 섀시를 하나의 방향으로 맞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플러스는 어떨까. 부푼 기대를 안고 조금 더 굽이치는 와인딩 로드로 향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DBX에 왜 S 배지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야수로 돌변한다. 조금 전까지 나긋나긋했던 GT 모드의 DBX S는 온데간데없다. 모든 감각이 달리기에 집중한다. 727마력이라는 숫자도 놀랍지만 운전자를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900Nm에 이르는 최대토크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터져 나오는 펀치력은 거대한 차체를 앞으로 집어던지듯 몰아붙인다. 손에는 저절로 땀이 맺힌다.
특히, 고회전으로 갈수록 힘이 꺾이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DBX S에는 미드십 슈퍼카 발할라에서 가져온 터보 기술이 들어갔다. 커진 컴프레서 휠 등을 적용해 6,000rpm을 넘어서는 영역에서도 한층 강한 힘을 이어간다. 그래서 저회전 토크로 차체를 밀어붙이는 고성능 SUV와 느낌이 다르다. 회전수를 끝까지 사용하며 달리는 재미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기본적인 V8 유닛의 뿌리는 익숙할지 몰라도 이를 어떻게 움직이고 들려줄 것인지는 철저히 애스턴마틴의 영역이다. 실제 운전에서도 완전히 다른 차처럼 느껴진다. 대표적인 것이 사운드다. 어떻게 이런 소리를 만들어냈을까 싶을 정도다. 시작은 묵직한 중저음의 바리톤이다. 이후 회전수를 높일수록 성량이 풍부해지고 레드존에 가까워지면 날카로운 고음까지 자연스럽게 섞인다. 중요한 건 무작정 거칠고 크기만 한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음색이 실내를 은은하게 채우며 운전자를 자극한다.
중독성이 강해 자꾸만 거대한 패들시프트를 당기게 된다. 심지어 아이들링에서 ‘웅웅’ 울리는 공명음조차 잘 조율한 관현악기를 듣는 것 같다. 오른발과 두 손으로 연주하는 한 편의 교향곡이다. DBX S를 타는 동안 경험하는 가장 큰 낭만이자 이 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이유 중 하나다.
가벼움을 향한 집착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시승차에는 옵션으로 제공하는 카본 파이버 루프와 23인치 마그네슘 휠, 폴리카보네이트 허니컴 그릴, 카본 소재 공력 부품이 들어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DBX707 대비 최대 47㎏을 줄였다.
그 중에서도 23인치 마그네슘 휠은 현가하질량을 최대 19㎏ 덜어낸다. 단순히 제원표의 무게를 줄이는 것보다 의미가 크다. 노면을 따라 움직이는 휠의 질량과 회전관성을 낮추기 때문에 조향 감각과 차체 반응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 카본 루프 역시 차체 가장 높은 곳에서 18㎏ 이상을 덜어 무게중심을 낮춘다. DBX S가 큰 덩치에도 방향을 바꿀 때 예상보다 민첩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한바탕 DBX S와 즐겁게 춤을 추고 난 뒤에야 차에서 내려 실내외를 천천히 살펴봤다. 디자인은 명불허전이다. 누가 봐도 애스턴마틴이고 그래서 따라올 차를 찾기 어렵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해 거대한 차체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아름답게 표현하면서도 각각의 세부 요소는 반대로 날카롭고 과격하다.
특히, S 배지를 달면서 세부적인 완성도가 더욱 높다. 대표적인 것이 그릴이다. 촘촘하게 이어지는 패턴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굴곡지며 빛을 반사한다. 마치 수면 위 윤슬처럼 반짝인다. 여기에 두툼한 보닛과 에어덕트, 펜더 주변의 디테일, 베일 듯 날카로운 사이드실도 강렬하다. 뒤에서는 애스턴마틴 특유의 아치형 테일램프가 깔끔한 인상을 만드는 가운데 수직으로 쌓아 올린 쿼드 배기구가 결정적인 ‘킥’을 날린다. 얌전함과 과격함이 한 차 안에서 절묘하게 공존한다.
실내도 같은 흐름이다. 완만하게 펼쳐지는 대시보드와 좌우 대칭에 가까운 구성은 시각적으로 편안하다. 큼직한 디지털 계기판과 손에 감기는 스티어링 휠, 거대한 패들시프트까지 더해져 운전석에 앉는 순간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온다.
센터 디스플레이는 경쟁차와 비교하면 크기를 과시하는 타입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다. 실내 디자인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다. 자동차의 인테리어에서 화면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센터터널에는 요즘 차답지 않게 물리 버튼이 제법 많다. 스포츠 드라이빙 중에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원하는 기능을 빠르게 조작할 수 있도록 남겨놓은 결과다. 더욱 마음에 드는 건 버튼마다 조작 방식과 촉감이 다르다는 점이다. 누르고, 돌리고, 움직이는 감각이 명확하게 구분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성능차에서 중요한 인체공학적인 접근이다.
감성 품질은 역시 하이엔드 브랜드답다. 가죽과 알칸타라를 아낌없이 사용했고 천장과 필러, 선바이저처럼 손길이 자주 닿지 않는 부분까지 소재에 신경을 썼다. 마감과 조립 품질에서도 흠잡을 곳을 찾기 어렵다. 여기에 ‘Q 바이 애스턴마틴’을 활용하면 소재와 색상, 디테일까지 취향에 맞게 폭넓게 꾸밀 수 있다. 물론 욕심을 부리는 만큼 지불해야 할 금액도 올라간다.
또 하나의 감성적인 정점은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다. 선택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은 23개의 스피커와 1,600W 출력을 갖춘다. 알루미늄 더블 돔 트위터와 컨티넘 미드레인지, 헤드라이너 스피커와 서브우퍼까지 활용해 DBX의 실내 전체를 하나의 청음 공간으로 만든다.
재미있는 건 V8과 오디오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리고 싶을 때는 배기음이 최고의 음악이 되고 여유롭게 이동할 때는 바워스앤윌킨스가 실내를 채운다. DBX S가 추구하는 두 가지 성격을 소리에서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2열에 앉으면 DBX S가 다시 친숙해진다. 넓은 벤치형 시트는 면적이 충분하고 활용성도 좋다. 일부 초고성능 SUV는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2열까지 독립식 스포츠 시트를 적용하기도 한다. 보기에는 멋있지만 SUV 본연의 활용성을 생각하면 반드시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DBX S는 반대다. 1열에서는 슈퍼 SUV처럼 달리면서 2열은 제대로 된 럭셔리 또는 패밀리 SUV의 역할을 수행한다. 가족이나 동승자를 태우고 장거리를 이동하기에도 부담이 적다. 성능에 집착한 나머지 SUV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트렁크 역시 마찬가지다. 반듯한 형태로 공간을 확보했고 양옆에는 레일을 마련해 다양한 액세서리를 활용할 수 있다. 주말마다 서킷만 찾아다니는 차가 아니라 골프백과 여행가방을 싣고 장거리를 떠날 수 있는 자동차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처럼 DBX S를 이야기 할 때 표면적으로 더 강력해진 DBX라고 정의하면 이 차가 가진 매력의 절반도 설명하지 못한다. 727마력과 900Nm는 분명 대단하지만 진짜 놀라운 부분은 그 숫자를 다루는 방식이다.
GT 모드에서는 부드럽고 우아하다. 스포츠에서는 거대한 차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게 움직이고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운전자까지 긴장시키는 야수로 돌변한다. 그러면서도 고급스러운 소재와 섬세한 마감, 편안한 2열과 넉넉한 적재공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S가 더해진 것은 출력만이 아니었다. 섀시와 조향, 변속기와 구동계, 무게와 사운드까지 자동차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밀도를 높였다. 덕분에 럭셔리와 퍼포먼스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를 오가는 폭은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그 넓어진 간극 속에서도 중심에는 한결같은 애스턴마틴이 있다. 우아하게 먼 거리를 달릴 줄 알고 필요할 때는 운전자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차. 아름다움과 속도, 낭만을 한데 묶어내는 능력자가 DBX S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