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점은 ‘안전(safety)&편의(Convenience)’이 돼야
자동차를 구매할 때 소비자가 먼저 살펴보는 것 중 하나가 가격표다. 기본 가격에 포함된 품목과 선택 가능한 것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배기량,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인포테인먼트 등 눈에 띄는 품목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가격표에는 제조사가 소비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기준이 숨어 있다. 바로 안전과 편의에 필요한 기능을 어느 트림에 배치하고, 소비자가 이를 선택하려면 얼마를 더 지불하도록 설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른바 상품 전략이다.
<사진: 내용과 무관>
이 과정에서 교묘한(?) 이익 추구 성향을 드러낸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품목을 구분하고 여러 선택 패키지를 만들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상위 트림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상품 구성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때 소비자의 혼선(?)을 유발하는 게 만약을 대비한 안전·편의 품목이다. 세이프티 파워윈도우, 터치타입 아웃사이드 도어핸들, 2열 선블라인드, 틴티드 글래스와 이중접합 차음유리 등이다. 최신 기술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안전·편의 품목을 활용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세이프티 파워윈도우는 창문이 닫히는 도중 신체 일부가 감지되면 작동을 멈추거나 다시 여는 기능이다. 특히 어린이 또는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가 탑승한 경우에는 필요한 기능이다. 반려견이 함께 타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이 기능 하나만으로 모든 끼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발생할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안전 품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일부 제조사는 전 좌석에 해당 기능을 적용하려면 상위 트림을 선택토록 유도한다. 기본형에서는 일부 좌석에만 적용하거나 아예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복잡한 첨단 기술이 아니다. 가족 누구나 어느 좌석에 앉더라도 기본적인 안전 기능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전 좌석 세이프티 파워윈도우를 기본화하거나 적어도 별도의 선택 품목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터치타입 아웃사이드 도어핸들이다. 스마트키를 소지한 상태에서 도어 핸들을 잡거나 터치하면 잠금이 해제되는 방식으로, 차에 접근하고 승하차할 때 편리하다. 과거에는 고급차의 특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대중적인 제품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 편의 품목이다. 하지만 문제는 적용 범위와 가격이다. 일부 차종은 기본형에서 이 기능을 제공하지 않고 상위 트림에만 적용한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운전석과 조수석에만 적용되고 2열에는 없는 경우도 많다. 반면 일부 제조사는 앞좌석과 뒷좌석 모두에 적용한다. 같은 종류의 편의 품목이라도 제조사와 차종에 따라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는 셈이다.
<사진: 내용과 무관>
물론 도어 핸들의 설계와 전자 장치 구성, 차체 구조에 따라 비용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소비자가 필요한 기능의 선택 기회까지 제한할 이유는 없다. 기본형에서 제외해도 선택 품목으로 제공한다면 소비자는 예산에 맞춰 필요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제조사가 정한 트림 구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소비자가 직접 필요한 품목을 고르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세 번째는 2열 선블라인드다. 어린 자녀와 함께 이동하는 가족이라면 햇빛이 강한 날 뒷좌석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이 신경 쓰일 수 있다. 별도로 햇빛가리개를 구매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자동차에 맞게 설계된 선블라인드는 사용과 보관이 편리하고 실내 디자인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런데 일부 차종의 경우 해당 기능을 선택하려면 상당히 높은 트림까지 올라가야 한다. 예를 들어 기본형 가격이 3,140만원인 차종에서 선블라인드가 선택으로 제공되지 않고, 3,790만원인 최상위 트림에만 포함된다면 소비자는 선블라인드 하나를 위해 650만원의 가격 차이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두 트림 사이에는 다른 품목 차이도 존재한다. 차액 전체를 선블라인드 가격으로 볼 수 없지만 핵심은 소비자가 원하는 특정 품목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다른 품목까지 함께 구매해야 하는 구조에 있다.
자동차 가격표의 트림과 선택 품목 구성은 단순한 목록이 아니다. 제조사는 수많은 기능을 기본에 넣거나 선택으로 구성한 후 적용 트림을 결정한다. 그리고 당연히 상품 구성 결과는 소비자 최종 구매 가격과 선택의 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 제조사가 수익성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품목을 기본으로 제공하면 원가가 상승하고 차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과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전략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제조사가 소비자의 필요를 충분히 고려한다면 기본형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안전·편의 품목을 별도 선택 품목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것은 더욱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법규상 요구되는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것과 소비자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안전 기능을 폭넓게 제공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법규를 충족했다고 소비자가 바라는 모든 안전 기능을 제공한다고 여기는 것은 일종의 착시 또는 착각이다. 오히려 안전 품목의 필요성과 실제 원가, 적용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능한 범위에서 기본 적용의 최대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에게도 자동차 가격표를 꼼꼼히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본 가격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전 좌석에 어떤 기능이 적용되는지, 원하는 품목을 별도로 선택할 수 있는지, 상위 트림으로 올라가야만 얻을 수 있는 품목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가격표를 읽는 기준이 달라지면 자동차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자동차는 많은 소비자에게 가장 비싼 소비재 가운데 하나다. 제조사가 정한 상품 구성에 따라 수백만 원의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소비자 선택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안전에 필요한 선택권은 오히려 이익 추구 측면에서 제조사가 주도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소비자 신뢰를 얻는 기업은 이윤만을 좇는 기업과 다를 것이다. 소비자가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을 어떻게 제공할지 고민하고, 그 선택을 최대한 보장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자동차 가격표는 단순히 차 값을 알려주는 종이가 아니다. 제조사가 소비자를 바라보는 지향점이 기본적으로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소비자가 자동차를 선택하듯 자동차 가격표를 통해 소비자는 제조사의 제품 철학을 평가할 수 있다. 소비자를 위한 제조사인지 아니면 오로지 이윤 추구를 위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제조사인지 말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