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벤츠의 반등, 레몬 시장이 던지는 질문

입력 2026년11월05일 08시4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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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투명성 확보 넘어 소비자 신뢰가 관건

 

 영어권에서는 결함이 많고 품질이 좋지 않은 자동차를 레몬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결함 자동차의 교환과 환불을 규정한 법률을 레몬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70년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는 이 레몬을 경제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논문 '레몬시장(The Market for Lemons)'은 중고차 시장을 통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거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했다. 판매자는 차의 상태를 잘 알고 있지만 구매자는 그렇지 못하다. 좋은 차와 나쁜 차를 구별하기 어려운 구매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기를 꺼린다. 결국 좋은 차를 판매하려는 사람은 시장을 떠나고 품질이 나쁜 차만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세기가 넘게 지난 오늘날 자동차 시장은 크게 달라졌다. 품질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보의 비대칭성은 여전히 자동차 거래의 한복판에 남아 있다. 

 

 이제는 품질이 아니라 가격이다. 같은 제조사가 만든 똑같은 신차인데도 어느 전시장을 방문하고 어떤 영업사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구매 가격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수백만원을 할인받고, 누군가는 그보다 적은 혜택에 만족한다. 차의 품질은 같지만 거래 조건은 제각각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제시받은 가격이 정말 합리적인지 알기 어렵다.

 


 

 실제로 차봇모빌리티가 최근 자동차 보유자와 1년 이내 신차 구매 예정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가장 저렴한 가격인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수입차 이용자에서는 그 비율이 63%에 달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도입한 '리테일 오브 더 퓨처(RoF)'는 이러한 거래 관행을 바꾸려는 시도다. 제조사가 가격과 재고를 통합 관리하고 판매사는 상담과 시승, 인도 등 소비자 접점에 집중한다. 이른바 직판제다.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물론 벤츠가 애컬로프의 레몬시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신차 가격의 불투명성과 중고차 품질에 관한 정보 비대칭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다만 거래 당사자가 가진 정보의 차이가 소비자의 신뢰를 흔든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변화의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존 판매사들은 오랫동안 할인과 금융 조건을 조정하며 소비자를 유치해 왔다. 영업사원에게 가격 협상은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새로운 판매 체계에서는 이러한 재량이 줄어든다. 판매사에는 익숙한 영업 방식을 바꾸는 과제가,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구매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벤츠 역시 판매 방식 전환 이후 한동안 부진한 실적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벤츠의 국내 신차 등록대수는 지난 8월 4,034대에서 9월 5,475대, 10월 6,737대로 증가했다. 두 달 사이 67.0% 늘어난 수치다. 10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15.4% 증가하며 BMW를 제치고 수입 승용차 판매 2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직판제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직은 이르다. 그럼에도 최근의 실적은 의미가 있다. 새로운 판매 체계 아래에서 제도 전환에 따른 혼란이 해소됐다는 해석이 가능해서다. 적어도 새로운 유통 구조가 벤츠의 판매 경쟁력을 지속해서 제약하는 요인으로 남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가격이 투명해지는 것과 가격이 저렴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판매사 간 경쟁이 사라지면 소비자가 얻을 수 있었던 할인 혜택도 줄어들 수 있다. 제조사가 가격 결정권을 집중적으로 행사하는 구조에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오히려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딜러사의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 역시 살펴봐야 할 문제다. 

 

 애컬로프의 레몬시장이 남긴 교훈은 정보의 차이가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차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매자가 그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벤츠의 실험 역시 이 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제조사가 가격을 통일하는 것은 정보의 격차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 가격이 합리적인지, 소비자가 이전보다 나은 구매 경험을 얻고 있는지는 별도로 증명해야 한다.

 

 반세기 전 애컬로프가 레몬을 통해 던졌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거래 당사자가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시장은 어떻게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가. 벤츠의 직판제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같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과 모두가 그 가격을 신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격을 통일하는 것은 제도의 변화지만, 그 가격을 납득시키는 것은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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