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 베를린 공과대학 자동차공학과 박사과정]
하노버에 자동차로 다녀 온 독일인 친구가 침을 튀기면서 자랑한다. 베를린에서 하노버까지 1시간40분밖에 안걸렸다며. 베를린에서 하노버까지의 2번 아우토반은 편도 3차로로 새로 깨끗이 포장됐고 공사구간도 거의 없다. 평균시속 250km로 달리는 독일이 자랑하는 고속전철(ICE)이 베를린에서 하노버까지 논스톱으로 1시간36분 소요되므로 독일인 친구가 1시간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도 역시 평균 200km 이상을 달렸다는 말인데, 사실일까.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비행기로도 꼬박 1시간을 가야 하는 600km다. 평균시속 200km 이상을 질주하는 고속전철 ICE도 3시간30분이 필요한 거리인데, BMW 735i로 3시간40분만에 주파했다고 우기는 유학생도 있다. 사실일까.
독일 아우토반에서 잠시동안 시속 200km로 달려봤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2시간 이상 주행하면서 평균시속 200km를 기록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그럼에도 위의 얘기들은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물론 두 사람 모두가 주장하는 시간은 다소 과장됐을 수 있다. 어쩌면 중간 휴식시간을 빼고 순수하게 달린 시간만을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0분 정도의 오차만 더한다면, 그리고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면 이 시간 내 주파가 가능한 게 바로 독일의 아우토반이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속도제한이 없어서다.
고속도로보다 중요한 건 자동차다. 독일 친구가 탄 차는 아우디 A8이었고 한국 유학생의 차는 BMW 735 V8이었다. 8이라는 숫자는 8기통 엔진을 말하는데, 기본적으로 200마력이 넘는 강력한 파워를 소유한 차들로 평균시속 200km는 거뜬히 낼 수 있다.
BMW나 아우디, 벤츠 등은 모든 자동차에 자발적으로 최고시속이 250km를 넘지 못하도록 자동잠금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에 최고속도는 그 이상을 넘지 않았을 것이지만 시야가 탁 트인 베를린-하노버 구간이나 베를린-프랑크푸르트 구간에서 마음껏 달렸을 것이란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최근 10년새 자동차의 출력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독일 고속도로에서의 평균속도가 무척 빨라졌다. 일반 양산차들도 아우토반에서 시속 200km는 이제 일상이고, 출력을 업그레이드한 각종 튜닝카나 속도잠금장치가 없는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의 스포츠카는 시속 300km가 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한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달리는 걸까.
한 리서치업체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교육수준이 높은 인텔리로 자유전문직 종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의 의식은 대개 스스로를 리버럴리스트라고한다. 그들은 비교적 구속이 덜한 직종에서 일하면서도 아이러니칼하게도 외로움과 자유를 위해 달린다고 한다.
왜 그렇게 달리냐는 질문에 “자유를 느껴 보기 위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혼자 있을 때 주로 달린다고 말했다. 사실, 누가 옆에 타고 있으면 마음껏 달릴 수가 없다. 아무래도 옆에 탄 사람이 더 살고 싶다고 애원(?)하거나 생명에 위협을 느껴 소리를 지르며 자제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자들은 또 환경문제와 안전을 위해 속도를 제한하자는 제안에는 수긍하면서도 정작 속도제한을 위한 입법에는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보고서는 아우토반에서의 속도무제한정책이 자동차의 기술발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긍정적으로, 통행료 징수에는 부정적으로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 조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실시됐는 지는 모르나 현재 독일의 고속도로와 속도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해주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앞으로도 아우토반에서의 평균속도는 결코 줄어들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필자도 람보르기니라는 스포츠카로 처음으로 시속 300km를 넘어섰을 때 전신을 감싸는 짜릿함과 더불어 경탄과 공포가 마구 뒤섞인 매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 바퀴는 땅에 붙어 구르고 있을진대 차가 날아가고 있는 듯한, 물리적으로 아주 이상한 현상을 느꼈다. 살짝 굽어진 도로가 날카로운 예각으로 보이는가 하면 탁 트였던 시야가 아주 좁고 길게 보이며 뇌와 다리와 팔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었다. 소위 전문가들이 말하는 "휜토끼 효과"를 체험한 것이다. 즉 제어공학에서 말하는 피드백이 되지 않는 제어회로다.
운전에서는 유일하게 포뮬러 경주가 바로 이런 경우다. F1에서 최고속도로 질주할 때 하키넨이나 슈마허가 피드백없는 운전을 하는 것이다. 피드백이 없다는 말은 쉽게 설명하자면 달리는 중에 장애물이 나타나도 피할 수가 없어 그대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드백 현상이 사라지는 속도, 그 것은 개인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훈련을 하지 않은 일반인의 경우 시속 220km를 넘어서면 나타난다고 한다.
얼마 전 영국의 스포츠카클럽이 실제 "캐논볼" 이벤트를 아우토반에서 실시하려다 독일경찰이 대대적으로 검거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자동차로 대륙을 횡단한다는 70년대의 영화 캐논볼을 모방한 이 이벤트는 영국의 젊은 스포츠카 애호가들이 프랑스의 칼레항구에서부터 시작해 시속 300km 이상의 속도로 질주해 대륙을 종단한다는 행사였다.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가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격파했던 프랑스의 칼레항구에서 시작된 현대판 캐논볼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의외로 쉽게 무너졌으나 아직도 독일 아우토반에서는 심심찮게 불법 자동차 속도경기가 열리곤 한다. 도심지 혹은 아우토반에서 벌어지는 불법 경기를 막기 위해 독일경찰은 해마다 많은 경비를 지출하고 있다.
아우토반에서 열리는 속도경기에는 대부분 20-30대의 광적인 튜닝 애호가들이 참가한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개조했으니 누구 차가 잘 나가는 지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순발력과 최고속도 등을 겨루는 데는 아무래도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이 적격이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달리다 발생하는 사고는 거의 대형으로 이어지고 선량한 다른 사람의 목숨도 앗아가기 때문에 이런 불법 속도경주는 독일에서 엄벌에 처하고 있다. 그래도 워낙 은밀히 진행되는 데다 그 뿌리가 깊어 여간해선 줄지 않고 있다.
대다수 건전한 의식을 가진 일반 독일인들은 아우토반에서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의 출력밀도가 커지고 점차 고속도로에서의 속도가 높아지는 추세여서 국민의 안전과 환경을 위해 아우토반에서의 속도제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필자약력 : 독일 AURA Sportwagen GmbH 기술개발 및 마케팅 이사
독일 자기부상열차 트란스라피드시스템 프로젝트 참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