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 베를린 공과대학 자동차공학과 박사과정]
최고의 안전을 자랑한다는 독일의 BMW 750iL과 국산 경차인 아토스가 정면충돌을 하면 어느 차가 더 충격력을 많이 받을까. 아주 쉬워 보이는(실제로도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서 정상적인 물리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결코 어려운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문제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 궁금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토스가 750보다 더 많은 충격력을 받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 충격력과 충격량, 운동량과 운동에너지의 차이를 정확히만 구별할 수 있다면 이 문제를 푸는 건 간단하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면 750이 아토스에 가하는 힘은 아토스가 750에 가하는 힘과 크기는 같고 방향은 정반대다. 그러므로 750과 아토스가 받는 힘은 서로 똑같다. 단지 방향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향의 이 두 힘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왜일까. 바로 질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750iL은 무게가 2,070kg이고 아토스는 800kg에 불과하다.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라는 관계에서 당연히 무게가 가벼운 아토스가 750보다 더 큰 가속도를 갖게 된다. 가속도란 속도의 시간에 대한 변화율이다. 짧은 시간 내에 속도변화가 크면 클수록 그 만큼 가속도는 높아진다. 자동차충돌 시 가속도와 속도의 변화가 승객에게 주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교통사고에서 승객이 받는 부하를 수치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바이오 미캐닉의 HIC(head injury criterion : 머리의 부상정도)값도 바로 승객 머리의 가속도를 적분해서 얻는 값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무게가 똑같은 마티즈 두 대가 같은 속도인 50km/h로 100% 정면충돌한 경우와, 똑같은 마티즈가 50km/h의 속도로 두꺼운 고정 철벽에 부딪쳤을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질량과 속도가 같으므로 충돌 후 더 이상 앞으로 나가거나 뒤로 밀리지 않고 갑작스런 충격과 급정거가 동시에 일어난다. 후자 또한 고정된 철벽이 뒤로 밀리지 않으므로 50km/h로 부딪치는 마티즈는 전자와 마찬가지로 순간적인 충격과 급격한 감속이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충돌실험인 크래시테스트도 콘크리트벽이나 고정된 철벽에 실시한다.
그러나 실제 자동차충돌 교통사고에서 같은 속도로 100% 정면충돌을 하는 예란 찾아보기 힘들다. 두 차의 무게중심이 일직선상에서 일어나는 100% 정면충돌보다는 서로 다른 속도로 중심이 엇갈린 상태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 때 자동차충돌사고에는 소위 "탄력"이 있기 때문에 충돌 후에도 움직임이 존재한다. 즉 서서히 감속한 후 정지하므로 탄력이 없는 고정철벽에 충돌하는 것보다 낫다.
빠른 차와 충돌, 갑자기 뒤로 밀리는 소위 "음의 탄성"을 갖게 되는 충돌일 경우 충격력도 클 뿐 아니라 감속이나 급정거보다 더 파괴적이다. 그래서 요즘 유럽에선 보다 실제 상황에 가깝도록 철벽이나 콘크리트벽보다 충돌 시 어느 정도 변형이 되는 벌집형의 알루미늄벽에 40% 혹은 50%의 옵셋 크래시(offset Crash) 테스트를 실시한다.
다소 장황해 보이는 이 모든 문제들은, 속도의 변화는 힘과 시간을 곱한 값을 질량으로 나눈 것이라는 간단한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힘에 시간을 곱한 게 바로 충격량이므로 곧 충격량이라는 건 질량에 속도의 변화를 곱한 것, 즉 운동량의 변화가 된다.
고등학교시절 운동량보존의 법칙을 배웠다면 이제 두 차가 정면충돌을 했을 때 각각의 자동차가 받는 충격량인 운동량의 변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때의 운동에너지는 어떨까. 아쉽게도 보존되지 않는다. 차체가 구부러지거나 찌그러지는 변형이 일어나면서 운동에너지가 손실되는 것.
운동량은 힘이 작용한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만 운동에너지 문제를 다룰 때는 힘이 작용한 "거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자동차충돌사고에서 운동에너지가 승객에게 직접 전달되는 걸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자동차의 전면부에 크래시 존 혹은 크럼블 존을 만들어둔다.
운동량보존의 법칙과 회전 임펄스, 일과 에너지법칙 등의 역학적인 기본개념들을 정확히 이해해 이를 응용하면 각종 교통사고를 재구성할 수 있다. 비오는 한밤중에 두 대의 차가 충돌사고를 일으켜 승객 모두가 사망하고 목격자는 물론 브레이크 자국도 알 수 없을 경우 이러한 교통사고 재구성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두 차의 최후 위치에서 출발해 최초의 충돌지점과 충돌속도를 구하고 계속 역으로 추적해 두 차가 언제 상황을 인식하고, 언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는 지, 어느 차가 속도를 얼마나 위반했는 지, 차선은 누가 어겼는 지를 알 수 있다. 교통사고 재구성은 크게 맥헨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인 SMAC(Simulation Model of Automobile Collision) 등을 필두로 컴퓨터를 이용한 방법과 역학의 기본을 바탕으로 한 그래픽방법으로 나뉜다.
슬리바는 1973년도에 오늘날까지도 교통사고의 그래픽 재구성에 있어 표준으로 통하는 동력평형방법(Antribs-Balance-Verfahren)을 고안해냈다. 1980년대엔 심멜페니히와 베케는 이를 더욱 발전시킨 임펄스-슈피겔(Impuls-Spiegelverfahren) 방법을 창안했다. 이 밖에 롬보이드(Rhomboid-Schnittverfahren) 방법과 에네르기-링방법(Energie-Ringverfahren) 등이 있다.
자동차끼리의 충돌뿐 아니라 차와 보행자 사이의 교통사고 재구성을 위한 방법도 있다. 퀴넬이 개발한 이 방법은 거리와 시간의 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된다. 이를 분석해 보행자와 자동차가 공간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어떻게 충돌하는 지를 명확히 알 수 있어 특히 보행자가 사망했거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 아주 유효하다.
퀴넬의 방법은 운전자가 보행자를 인식한 지점과 위험을 알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시점 그리고 충돌 시의 속도 등을 거리와 시간의 다이어그램에서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공간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충돌사고를 미리 피할 수 있었는 지 여부를 따지는 법적 책임소재에 유용하다.
자동차가 많아지면 당연히 교통사고도 늘어난다. 해마다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불행을 겪는다. 가능한 한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질량과 속도를 갖는 자동차가 관성의 법칙에 지배당하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교통사고를 완벽히 피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교통사고를 철저히 분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법적 책임소재를 가리는 건 물론 그 자료를 축적, 사고 뒤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자동차의 수동안전도 발전과 개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교통사고가 많기로 세계적인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를 정확히 분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교통사고전문가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곳은 없다. 이 보다도 이런 제도가 운영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조차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