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차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뛰어난 기술자가 기술적으로 진보된 차를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일즈맨이 잘 팔릴 만한 차를 예견한 뒤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다. 머스탱은 후자의 완벽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미국 자동차업계의 신화로 평가하는 리 아이아코카(Lee A. Iacocca)는 탁월한 판매능력으로 단 5년만에 포드의 말단사원에서 시작, 부사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대중이 원하는 걸 알았고, 1960년대초 "나만의 차"를 원하는 수요를 간파했다. 당시 대세는 젊음과 개인주의였다. 한 가족이 자동차 한 대를 공유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좋은 직장을 가진 젊은이들이 가족의 둥지를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아파트를 소유했으며 자신만의 차를 구입했다. 아이아코카는 일찍이 이런 경향을 알고 이를 만족시킬 차를 찾고 있었다.
그는 재고부품을 사용해 제작단가를 낮추고, 운전자가 고리타분한 세단 부류가 아님을 강조할 만한 멋진 외관의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다. 그의 요구에 따라 포드의 디자인스튜디오에서는 4인승 스포티카의 전통적 요소인 긴 보닛, 운전자와 승객에게 딱 맞는 공간, 적당한 화물적재공간 등이 결합된 지극히 미국적인 모양의 차를 탄생시켰다.
머스탱은 팰컨(Falcon)에 쓰인 6기통 2.8 101마력 엔진과 앞바퀴 독립 서스펜션, 뒷바퀴 일체차축식 서스펜션을 채용했다. 휠베이스는 팰컨보다 1.5인치 짧아 60년대 미국차 중 가장 작은 차로 분류됐다. 당연히 머스탱의 경우 고성능 버전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4.2 164마력의 차가 옵션으로 추가됐다. 다양한 옵션은 각인각색의 구매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맞춤"차를 가능케 했고 이는 "개인적인 용도의 차"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머스탱은 1964년 4월 뉴욕에서 발표된 후 초창기에는 수요가 공급의 15배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래서 머스탱은 프리미엄이 얹혀 팔려 나갔고 예상했던 연10만대 생산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결과 1966년까지 2년동안 68만대 이상이 판매됐고 우아한 패스트백 쿠페도 더해지게 됐다.
이 차의 외관과 성능은 스포츠카팬들을 매료시켰으나 언제나 그렇듯 소비자들은 더 강하고 빠른 차를 요구했다. 포드는 그에 부응해 기존의 두 가지 엔진의 출력을 늘렸고, 후일 전설의 "289" (입방인치로 표기한 배기량, 4.7리터)라고 불리게 된 새로운 V8 엔진 두 종류를 옵션에 추가했다. 270마력의 "289"는 머스탱을 경주장에서나, 도로에서나 최고의 차로 군림하게 했다.
머스탱은 1969년형부터 해마다 무게가 늘어 뚱뚱해지기 시작해 본래의 마술적인 힘은 잃었지만 미국 자동차업계에 포니카(Ponycar:소형 스포츠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이는 고성능의 컴팩트한 모델이라는 뜻으로 GM과 크라이슬러로 하여금 그들 나름대로의 포니카를 개발하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03년 포드는 설립 100주년을 맞으면서 검정색의 100주년 기념모델 머스탱을 내놨다. 이제는 흰 머리의 할아버지가 된 1960년대 머스탱을 타고 환호하던 옛 젊은이들에게 이 차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삼성화재 교통박물관 (www.carmil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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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최초의 포니카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포드 머스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