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벤츠, BMW를 겨냥해 최고급차 페이톤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척 궁금했다. 폭스바겐이 품질좋은 차를 만드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중적인 브랜드의 메이커가 만든 고급차는 어떨 지 가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폭스바겐이 아시아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새차 발표회를 가져 독일에서 페이톤을 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익스테리어&인테리어
페이톤은 전혀 튀지 않는 스타일링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기까지 하다. 뒷모습이 부가티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파사트를 부풀린 듯한 인상이어서 크고 묵직한 걸 빼면 고급차의 카리스마가 부족한 듯 보인다. 대중적인 차를 만드는 브랜드의 한계일까. 그러나 안을 보면 이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박살이 난다. 호화로운 수공예 작품이 그 평범함 속에 들어 있어서다.
페이톤의 경쟁차는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렉서스 LS430 등이다. 하지만 페이톤은 이런 차들보다는 영국의 전통적인 고급차 벤틀리에 가깝다. 그만큼 복고적인 성향이 강하다. 대시보드를 포함해 실내를 온통 감싸고 있는 가죽과 호두나무 패널 그리고 크롬, 은은한 룸램프, 독특한 디자인의 센터페시아 등에서 `돈냄새"가 팍팍 풍긴다. 정교한 품질감도 읽을 수 있다.
시승차는 4인승 W12기통 엔진을 얹은 고급형으로 리무진 스타일이다. 핸들에 달린 비행기 조종간 모양의 변속기가 눈에 띈다. 양쪽 좌석을 위한 두 개의 재떨이는 예쁘고 깜찍해 재를 떨기 힘들다. 목이 짧은 변속기와 안으로 밀어 넣는 원형 컵홀더도 특이하다. 통풍구를 막고 있던 호두나무 패널은 바람이 나오면 저절로 열린다. 선바이저의 거울은 손잡이가 두 개여서 위쪽을 잡고 열면 물체가 확대돼 보인다. 여성들이 화장할 때 유용할 듯. 18방향으로 조정되는 시트는 히팅과 함께 통풍도 된다.
센터페시아는 조금 좁혀도 좋았을 뻔했다. 그러면 앞좌석 레그룸이 좀더 여유있지 않았을까. 크롬 페달이 품위를 나타낸다. 우드 핸들의 안쪽은 가죽으로 마감돼 있다. 전동으로 앞뒤로 움직이는 뒷좌석은 메모리 기능도 갖고 있다. 뒷좌석 중앙까지 센터패널이 가로지르고 있고 주변 모양은 앞좌석과 같아 통일감을 살렸다. 바람의 방향 등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있다는 게 다르다. 앞뒷차와의 간격을 대시보드 모서리에서 LED램프로 알려준다.
트렁크 도어는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여닫힌다. 키커버인 폭스바겐 엠블럼을 누르면 작동되는 게 재미있다. 양쪽에 2개씩 달린 머플러는 이 차의 위용을 가늠케 한다. 헤드램프는 곡선미가 뛰어나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사이드미러에는 벤츠차처럼 방향지시등이 달려 있다.
페이톤은 취급설명서 내용을 모두 읽을 수 있는 콘솔 스크린 등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 장비를 조절하기 위해 모두 120개의 버튼과 스위치가 있다. 이렇게 많은 기능과 조절 스위치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나 파에톤의 인포메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infomainment)시스템은 깔끔하고 본능적으로 작동이 쉽도록 만들었다고 폭스바겐측은 밝혔다.
▲성능
페이톤의 시동을 걸었을 때 첫 느낌은 조용하다는 것. 렉서스 LS430과 맞먹을 정도의 정숙성을 갖췄다는 걸 알 수 있다. 진동도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시동이 꺼져 있는 것으로 착각해 다시 스타터키를 돌려 엔진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폭스바겐은 시동이 걸리면 스타터키가 작동하지 않게 했다. 이런 정숙성은 주행 내내 변하지 않는다. 시속 160㎞를 넘어서면 바람소리가 안으로 들어올 뿐이다. 엔진의 절제된 음은 이면에 터프함도 갖고 있다. 엔진 브레이크를 걸거나 킥다운 때의 엔진음이 매력적이다. 저주파의 포효하는 듯한 사운드다.
운전방법에 따라 이 차는 부드러운 차로도, 스포티한 차로도 언제든 바뀐다. 일반도로를 달릴 때 페이톤의 부드러움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전자 액셀러레이터는 페달이 길어 차가 최대한 매끄럽게 출발하도록 만들어주고 빠른 스티어링, 즉 회전조절 보조장치를 달아 길의 상태나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 운전이 가능하다.
420마력의 엔진은 강한 야성을 발휘한다. 액셀 페달을 밟을 때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다. 킥다운을 해도 움찔거림없이 속도가 쭉 뻗지만 경박스럽지 않은 움직임이다. 저속에서 고속으로 가는 도중 잠시 멈칫거리지만 고회전까지 묵직한 토크가 이어진다. 변속충격도 크지 않다. 3,000rpm부터 터지는 최대토크 덕에 순발력도 발군이다. 제원표 상의 최고시속은 250㎞지만 260㎞까지는 쉽게 달릴 수 있다. 속도계는 320㎞까지 표시돼 있다. 고속에서의 주행안정성이 뛰어나 시속 100㎞대의 운전은 싱겁기만 하다.
서스펜션의 충격흡수능력도 뛰어나 승차감이 안락하다. 이 차는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네바퀴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 편안함뿐 아니라 스포티함까지 동시에 제공해준다. 더구나 네바퀴굴림이어서 접지력도 탁월하다. 고속에서의 코너링은 차체가 크고 무겁기 때문인지 원심력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나 차선을 급하게 옮겨도 휘청거리지 않는다. 핸들링은 예민하진 않지만 정확하다.
이 차는 슈퍼카 람보르기니에 사용되는 8개의 365㎜ 프론트 디스크 피스톤 브렘보 브레이크를 적용해 정확한 제동능력을 확보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타이어가 땅에 쫀득하게 달라붙는 느낌을 준다. 큰 차체지만 회전반경이 작아 유턴 때도 별 문제가 없다. 핸들에 달린 변속기는 기어 셀렉터를 수동쪽으로 갖다 놓지 않고도 작동할 수 있어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방향지시등 칼럼과 헷갈리는 게 흠. 정지상태에서 핸들을 돌렸을 때 나는 전자음은 많이 거슬린다.
페이톤은 첨단보다 고급이란 의도를 갖고 만든 차로 판단된다. 내년 상반기에 판매될 국내에선 벤츠, BMW의 명성에 도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나 특별한 대접을 받고, 고급스러움을 만끽하며,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는 차를 원하는 사람에겐 딱 알맞은 차다. 어쨌든 폭스바겐이 쌓아 온 60여년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차만 놓고 보면 페이톤은 정말 매력적이다. 드레스덴(독일)=강호영 기자 ssyang@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