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는 SUV의 명가다. 대략 50년 전에 랜드로버 디펜더에서 시작된 역사는 디스커버리, 레인지로버에서 정점을 이룬다. 랜드로버가 럭셔리 SUV의 면모를 확실히 세운 뒤 추가한 모델은 프리랜더. 사람들은 이 차를 "베이비 랜드로버" 혹은 "미니 랜드로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랜드로버 가문의 막내인 셈이다.
랜드로버는 럭셔리 SUV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레인지로버를 "SUV의 롤스로이스"로 칭할 정도다. 고급스러운 SUV라는 말이다.
프리랜더를 보면서 럭셔리시장의 모순을 읽게 된다. 최고급으로 만들어 비싼 가격을 매기지만 정작 시장규모는 크지 않아 충분한 수익을 얻기가 쉽지 않다. 높은 값에 많이 팔면 좋겠지만 집 한 채와 맞먹는, 때로는 훨씬 더 비싼 제품을 살 수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파는 제품은 고가지만 수익을 내지 못해 밥먹기 힘든 경우도 있는 게 이른바 럭셔리시장이다.
이 같은 한계를 넘기 위해 이른바 보급형 제품들이 나온다. 명품의 상표를 달고 가격을 낮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것. 이 보급형 제품들이 회사를 먹여 살리는 효자상품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제품의 품질을 어느 선에서 타협하느냐에 달렸다. 이른바 가격대비 품질이 우수하면 보급형이 히트를 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보급되기 힘든 보급형"에 머물고 만다.
랜드로버 가문의 보급형 모델 프리랜더를 시험대에 올렸다. 시승차는 2.5Xi 3도어 소프트백이다.
▲디자인
프리랜더는 생김새부터 부담이 없다. 컬러나 부분적인 디자인에서 랜드로버의 혈통을 보게 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가볍다. 프리랜더라는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자유스러움이 디자인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앞뒤 범퍼와 휠아치를 검정색으로 처리한 투톤 컬러는 마치 청바지를 입은 콤비처럼 젊은 분위기를 낸다. 게다가 소프트백이다. 소프트톱이 아닌 소프트백으로 표기한 것은 벗겨지는 부분을 보면 이해가 간다. 뒷좌석까지는 지붕이 남아 있고 그 뒤편, 트렁크 공간에서부터 벗겨진다. 그래서 "톱"이 아닌 "백"이 된다. 어쨌거나 벗겨내면 폼이 난다.
랜드로버의 디자인 특징은 어쩌면 투박함일 지 모른다. 디펜더에서 시작해 디스커버리, 레인지로버에 이르기까지 사각의 딱딱함이 마치 영국의 원칙주의자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만 프리랜더는 모양새가 그나마 덜 딱딱하다. 네모난 형제들 중 가장 둥글둥글하게 생긴 녀석이다.
운전석은 매우 높다. 차의 실내에 낚시의자를 놓고 앉은 것 같다. 시트 위치가 높은 데다 차창이 넓어 실제 느낌은 더하다. 높아서 오는 어색함, 혹은 불안함에 탁 트인 시야가 주는 시원함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센터페시아에 자리잡은 오디오, 공조 스위치들 그리고 변속레버가 단촐하다. 시트 히팅 스위치가 사치스럽게 보일 정도다. 기본적인 스위치들이 있을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뒷창을 여는 스위치가 다르다면 다른 것. 소프트백은 4인승으로 뒷시트도 좌우가 분리됐다.
▲성능
본격 시승에 앞서 소프트백을 벗겼다. 전동식 톱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프리랜더 소프트백은 완전 수동식이다. 지퍼를 떼어내고 뼈대를 접고 지붕을 말아넣는 일을 모두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해야 한다. 자동의 편리함 대신 손으로 벗겨내는 손맛은 색다르다. 처음엔 복잡하고 귀찮았지만 한 번 벗겨 보니 그것도 이력이 붙어 다시 탈착하는 데 속도가 붙는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즐기며 오픈 드라이빙에 나섰다. 의외로 바람의 간섭은 약하다. 차창을 열지 않으면 톱을 벗겨도 바깥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도 있겠지만 SUV를 탄다면 소음에는 너그러워야 한다. 게다가 오픈톱 드라이빙을 즐긴다면 말이다.
변속기는 팁트로닉 방식이다. 자동변속과 수동변속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별도의 부 변속기는 없다. 풀타임 4WD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신 힐다운 보조장치가 있다. 이게 실질적으로 로 레인지의 역할을 한다. 강한 구동력이 필요할 때 사용하면 된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버튼을 눌러 이 장치를 작동시키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도 천천히 움직인다. 엔진 브레이크가 되는 것. 변속레버 아래 노란색 버튼을 누르면 작동한다.
운전석이 높아 처음 차를 움직일 때는 심리적으로 부담이 됐다. 불안했다는 말이다. 평지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앉은 채 움직이는 듯해 차와의 일체감을 느끼기 힘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불안함은 조금씩 사라졌다. 적응이 되면서 차는 점점 빨라지고 급한 코너도 마다 않고 달려들게 됐다.
프리랜더의 작은 체구는 때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오프로드 주행에서는 큰 차보다 작은 차가 유리하다. 기동성이 앞서기 때문이다. 177마력의 파워는 프리랜더를 끌고 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승차는 고속주행에선 쉽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시속 120km를 넘기면서는 가속이 쉽지 않다. 4단에서 최고시속 187km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이 속도를 실제 체험하기는 힘들다. 온로드보다는 오프로드에 강한 차라 할 수 있겠다.
▲가격
국내에서 판매되는 프리랜더는 2.5ℓ 가솔린엔진과 2.0ℓ 디젤엔진이 있다. 시승차는 V6 2.5ℓ 가솔린엔진. 작다고는 하지만 배기량이 2.5ℓ에 달하고 풀타임 4WD 방식이어서인 지 연비는 8.1km/ℓ로 3등급이다. 그리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
판매가격은 가솔린엔진차가 4,790만원부터 5,540만원까지 3개의 그레이드가 있고 디젤엔진은 4,990만원과 5,290만원 두 종류가 있다. 시승차인 2.5Xi는 4,790만원이다. 파는 입장에서는 5,000만원 전후 가격으로 랜드로버를 살 수 있다며 유혹할 만한다. 랜드로버를 아는 이들은 이 말에 동의하겠지만 조그만 차가 뭐 이리 비싸느냐고 눈꼬리를 치켜 올리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랜드로버 프리랜더라는 이름 어느 부분에 엑센트를 주느냐에 따라 가격에 대한 반응은 이 처럼 갈릴 지도 모른다. 랜드로버의 브랜드 가치를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 차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승/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