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가 2004년형 SM5를 선보였다. 오랜동안 변치 않는 모습으로 사랑받고 있는 SM5여서 이번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다. 게다가 중형차시장은 항상 눈길이 가장 많이 쏠리는 만큼 늘 뜨겁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지난 9월1일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날이다. 한 날 한 시에 국내 3개 메이커가 일제히 중형 승용차를 마이너체인지한다며 새 모델을 내놓은 것. 이 쯤 되면 경쟁사의 모델체인지 공세를 맞받아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기자는 르노삼성의 공세에 현대, 대우의 물타기로 해석한다. 똑같이 모델체인지를 했는데 차를 알리려는 메이커의 열의는 크게 달라서다. 여기엔 각 메이커의 사정이 다른 탓도 있다. 르노삼성이야 SM5가 말 그대로 회사의 운명을 짊어진 모델이다. 라인업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단 두 개뿐인 모델 중 하나여서 정성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대우나 현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중요한 자식이긴 하나 신경써야 할 다른 자식들도 많은 집이다.
자식 귀한 집에서 오랜만에 차리는 생일잔치에 김빼기를 해야 할 정도로 중형차시장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다.
이번 시승차는 SM520으로 4기통 엔진을 얹었다.
▲디자인
도대체 무엇이 바뀐 것일까. 가장 먼저 달라 보이는 건 헤드램프 디자인이다. 메이커도 CF 등을 통해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2004년형을 상징하는 부분이 바로 헤드램프다. 그러나 나머지 변화들은 사실 눈치채기 어렵다. 안개등, 리어램프,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 등 소소한 변화는 이전 모델과 나란히 세워 놓고 일일이 비교해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숨겨진 변화" 에 그치고 있다.
SM5는 전형적인 세단이다. 조금은 시대에 뒤진 듯한, 혹은 조금은 나이를 먹은 듯한, 혹은 점잖은 그런 분위기다. 그나마 헤드램프에 살짝 준 변화가 부분적으로 나아진 느낌을 풍기지만 SM5가 주는 전체적인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디자인만 놓고 본다면 그랜저XG나 EF 쏘나타의 세련된 디자인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물론 장점도 있다. 튀지 않는 정통 스타일은 오래 간다. 10년쯤 전에도, 혹은 10년쯤 뒤에도 그냥 무난히 묻어갈 수 있다.
▲성능
운전석은 넓고 평평했다. 시동을 걸고 작지 않은 덩치를 움직였다. 143마력의 힘은 여유있게 차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SM5의 여전한 느낌은 하체에서 전해졌다. 과속방지턱, 패인 도로 등 길 위의 장애물을 지나면서 서스펜션이 하체를 잡아주는 능력이 여전했다. 잔진동없이 완충작용을 해내는 반응이 스티어링 휠과 엉덩이를 통해 전해져 왔다. 물렁거림없는, 단단함이다. 서스펜션이 좋으면 차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엔진 소음은 거의 느끼지 못할 수준이다.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시속 80km까지의 주행속도에서 실내는 고요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잠깐 호흡이 거칠어질 뿐 금세 평상을 되찾는다. 속도를 높여 시속 150km를 넘기면서 엔진소리, 바람소리가 소음으로 들렸다. 승차감을 높여주는 실내 정숙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구형보다 나아진 게 아니고 예전 그대의 여전함이다.
고속주행에서는 아무래도 힘이 여유롭지 못하다. 깊게 가속 페달을 밟으면 일단 소리가 커지고 한 호흡 뒤에 차체가 반응한다. 그런 후에도 속도를 높여 나가는 시간이 더디다. 스포츠 세단이라기 보다는 승차감 비중이 더 큰 세단이다.
화창한 가을 햇살이 반갑긴 하지만 변속레버의 표시판에 반사된 햇살 때문에 눈부셨다. 반사되지 않는 소재를 사용하는 게 좋겠다.
시승차에는 텔레매틱스 장치가 있었다. 네이트온을 이용해 다양한 도로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음성인식장치 덕분에 목소리로 작동시킬 수 있어 편했다. 텔레매틱스시스템은 한두 차례 데이터 송수신중 에러가 발생했으나 이를 제외한다면 정확히 작동했다. "서울시", "동교동" 순으로 말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고 목적지까지의 안내도 정확했다.
가끔 운전자가 생각했던 길과 다른 길로 유도하기도 한다. 지시대로 가거나, 내 맘대로 가거나 큰 문제는 없다. 경로를 이탈하면 새 루트를 찾아 다시 안내를 시작해서다. 지도창이 좁은 건 큰 불편이 되지 않는다. 운전하는 동안 지도에 눈길을 줄 일이 없어서다.
디자인에서 헤드램프, 기능에서 텔레매틱스. 새 SM5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이 둘을 꼽을 수 있겠다.
SM5는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차로 유명하다. 그 만큼 잘 만들었다. 완성도가 높은 차를 손대야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문제투성이 차라면 차라리 이곳저곳 뜯어고치며 말 그대로 "개선"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잘 만들어진 차를 손봐 더 좋은 차로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2004년형 SM5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예전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어서지, 전에 없던 새로운 매력이 생겼기 때문은 아니다.
새 차의 가치를 평가하기 힘들 땐 중고차를 보면 된다. 중고차시장에서 SM5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찾는 사람이 많아 가격도 높게 형성되고 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SM5는 내구성에서도 인정받고 있음을 중고차시장이 보여준다.
▲경제성
SM5는 단일모델로는 가격폭이 상당히 넓다. 518이 1,357만원부터이고 525 V6는 2,559만원을 호가한다. 같은 모델이지만 1,000만원 이상 가격차가 벌어진다. 시승한 520SE AT의 가격은 1,749만원. SM5를 원한다면 각자의 형편대로 가격대를 고를 수 있어 좋다. 경쟁차종으로는 EF 쏘나타와 그랜저XG까지를 볼 수 있다.
연비는 2.0 AT가 10.3km/ℓ로 1.8 AT 10.1km/ℓ보다 우수하다. 1.8인 경우 차체는 큰데 엔진이 상대적으로 작아 연비에서 손해를 보는 것. 작은 엔진에 큰 차체는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하는 차다.
르노삼성은 엔진, 변속기 등 주요 부품 5년 10만km, 차체 도장도 3~5년 보증을 실시한다. 그 만큼 자신있다는 뜻으로 소비자들의 유지부담을 줄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승/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