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스는 명실공히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카다. 글로벌 빅5를 노리는 현대차 군단의 최상급 모델이다. V8 4.5ℓ엔진까지 얹어 국산차의 영역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모델이 바로 에쿠스다. 에쿠스는 라틴어에서 온 말로 "개선장군이 타는 마차"를 뜻한다고 했다.
현대가 그 에쿠스를 신형으로 교체했다. 교체의 핵심 포인트는 디자인과 편의장치에 있다. 엔진과 변속기 등에는 손대지 않았다.
▲디자인
신형 에쿠스는 디자인, 특히 자동차의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말해준다. 이전 에쿠스는 직선과 각이 주를 이루는 디자인이다. 에쿠스의 가장 큰 특징은 트렁크에서 범퍼로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옆에서 보면 깎아지른 절벽을 보는 듯했다. 딱딱했고 권위적이었고 커보였다.
신형 에쿠스는 전체적인 모습에 큰 변화는 없지만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예전과 아주 다르다. 훨씬 부드럽고, 친근하고, 작게 보인다. 이 같은 느낌의 차이를 단적으로 말하면 직선과 곡선의 차이에서 온다. 신형 에쿠스는 이전의 각진 부분들을 잘 다듬어 부드럽게 뭉뚱그렸다. 손을 베일 것 같은 날선 각이 대부분 사라졌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수직과 격자형 그릴 두 개로 운용하고 있다. 리무진 모델과 4.5ℓ 엔진에는 수직 그릴을 적용했고 3.5ℓ 세단은 격자형 그릴이다. 검정과 베이지 두가지 색에 모노톤과 투톤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실내는 고급스럽게 꾸몄다. 큰 평수의 아파트에 들어설 때의 느낌을 이 차에 타면서 가질 수 있다. 운전석 주변을 ㄷ자로 감싸는 공간은 온갖 버튼으로 가득차 있다. 일일이 그 기능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책을 펴놓고 공부해야 할 정도다. 현대가 이 시점에서 적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비와 기능이 이 차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운전석은 아주 쾌적하다. 면적이 넓어 엉덩이를 편하게 의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찬 바람, 더운 바람이 시트에서 나온다. 이름하여 통풍시트다.
기어레버를 후진으로 놓으면 센터페시아의 모니터에는 차 뒤쪽 상황이 보여진다. 트렁크 도어에 카메라가 있어 후진할 때 뒤쪽 상황을 보여주는 것. 마음놓고 후진할 수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봐야 할 게 하나 더 생겨 번잡스럽기도 하다.
모니터를 통해서는 다양한 정보들이 제공된다. 내비게이션 모니터로 주행정보를 지도를 통해 보여주고 모니터 앞의 "정보" 버튼을 누르면 남은 연료량, 그 연료로 더 갈 수 있는 거리, 평균연비 등이 표시된다. 평균연비 표시 방식이 100km 주행에 소모되는 연료량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km/ℓ로 표기하면 한 눈에 연비 수준을 느낄 수 있는데 굳이 ℓ/100km로 표시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참고로 메이커가 발표하는 이 차의 공식 연비는 7.2km/ℓ.
▲성능
이 차의 무게는 정확히 10kg이 빠지는 2t이다. 작지 않은 체구지만 움직임은 가벼웠다. 이 차를 처음 운전하는 이들은 특히 핸들의 가벼움을 실감하게 된다. 빠르게 U턴이라도 할 때엔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도 있다. 저속에서는 핸들의 반발력을 키워 조금 무겁게 만들면 좋겠다.
엔진 소음은 잘 조절돼 실내로의 유입이 차단됐다. 시속 140km를 넘길 때까지도 엔진 소리는 그다지 크다는 느낌이 없다. 바람소리도 마찬가지다. 실내는 바깥과 잘 차단돼 있었다.
자동변속기의 완성도는 높아졌다. 변속충격은 거의 느끼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5단 자동변속기라는 게 아쉽다. 현대가 자랑하는 팁트로닉 방식인 H매틱도 아닌, 그냥 5단 자동변속기다. 이 정도로는 앞서가는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세우기 힘든 시대다. 세계시장에서는 이미 6단 변속기를 넘어 7단 자동변속기까지 나와 있다.
변속레버를 오른손으로 잡으면 일부 레인지에서 엄지 손가락이 닿는 버튼이 헐거웠다.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차 전체의 완성도를 느끼게 마련이다.
이 차는 박력보다는 부드러움에 가깝다. 액션보다는 멜로다. 승차감이 부드러운 게 마치 비단 위를 미끄러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마냥 물렁거리는 차를 연상해서는 안된다.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액션에 약한 건 아닐 터. 필요할 때는 정확한 스티어링과 단단한 서스펜션이 스포츠카 뺨치는 성능을 보였다.
시속 100km까지 속도를 올리며 슬라럼 주행을 했는데 차 뒷부분의 미끄러짐이 거의 없이 잘 따라왔다. 덩치가 큰 차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뒤가 심하게 밀리는 경우가 많다. 차가 크고 길어 방향을 전환할 때 뒷부분의 거동에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의외로 선회안정성이 뛰어났다. 서스펜션이 부드러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차의 자세를 제대로 잡아준다는 말이다.
▲경제성
신형 에쿠스를 내놓으면서 현대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보증기간을 5년 10만km로 대폭 확대한 것. 5년 안에 차를 바꿀 생각이라면 차 고치는 데 돈 쓸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사는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미국에서는 10년 10만km를 보증하는 것과 비교하며 섭섭해 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첫 구매고객에게만 10년 10만km를 보증한다. 국내에서는 신차를 샀건, 중고차를 샀건 출고 뒤 5년 10만km 이내면 무조건 보증한다는 게 현대측 설명이다.
에쿠스가 신형을 투입하면서 대형차시장은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오피러스, 체어맨, 에쿠스 등이 모두 올해 신모델이 나와서다. 하지만 지존의 자리는 여전히 에쿠스의 몫이 될 듯하다. 배기량, 가격 등에서 국산 최고급차의 이미지를 가진 차이기 때문이다.
에쿠스가 더욱 신경써야 할 상대는 국산차들이 아니라 수입차들이다. 이미 수입차들은 3,000cc 이상 고급차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 가고 있다. 고급차장에서는 머지 않아 국산차들이 비주류로 밀려날 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신형 에쿠스의 가격대는 4,090만원부터 8,690만원까지다. 엔진 배기량은 3.0ℓ, 3.5ℓ, 4.5ℓ가 있다. 수입차시장의 대다수 차종들도 이 범위 안에 들어온다. 국산차의 자존심을 내걸고 에쿠스가 이 시장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 지 지켜 볼 일이다. 적어도 미국차들과는 견줘볼 만 하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품질과 성능면에서 크게 밀릴 게 없는 데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한 급 위의 성능을 갖출 수 있어서다.
시승/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