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엔진 스포츠카의 등장
글 : 이경섭(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자동차공학과 박사과정)
화창한 주말, 차양이 큰 모자와 선글래스, 망원렌즈가 부착된 괜찮은 성능의 카메라와 쌍안경을 들고 서킷링으로 나서 본다. 대당 몇 천만원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몇억씩하는 경주용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폭주하는 것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열광하는 관중속에 파묻혀 경주에 몰두하다 보면 왜 카레이스가 축구나 야구만큼 관중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스포츠인지를 느끼게 된다. 축구장 관중들의 함성이 축구팬들에겐 더 이상 소음일 수 없듯 경주차의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도 레이스경기에 미쳐버린 관람객들에겐 짜릿한 환상의 리듬으로 들린다. 아니 어쩌면 배기가스머플러 끝에서 불꽃을 튀기면서 "팡팡" 터지는 연속적인 폭팔음은 레이스의 재미를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흥분을 고조시키는 최고의 교향악이 아닐까?
어떤 종류의 레이스이든 하루에 모든 승부가 결판나는 일은 별로 없다. 보통 2-3일 정도 걸린다. 대개 첫째 날은 타임트레이닝이라는 것을 실시한다. 출전선수가 각기 개인별로 주어진 시간 내에 서킷을 달려서 나온 기록을 재는데, 이때 나온 기록으로 다음날 본 경기 때 출발 위치가 결정된다. 당연히 타임트레이닝 때 최고 좋은 기록을 낸 선수가 본 경기 출발선 맨 앞에 서는 소위 폴포지션을 받는다. 말이 타임트레이닝이지 최고기록을 내기 위해 그야말로 출전선수 개개인은 최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더구나 관중들은 출전선수 각자가 낼 수 있는 최고기량을 엿보며 다음 본경기의 결과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출전 투어링머신 역시 이 때가 최고의 부하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시합에 대비해 새롭게 개조됐을 각 엔진부품들이 제 성능을 발휘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대개 타임트레이닝 후 기술자들은 각종 시뮬레이션에서 검출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본 경기를 대비해 손질을 한다. 엔진에 문제가 있으면 곧바로 엔진해체작업에 들어가 밤샘은 물론 본 경기 출발직전까지 재조립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과연 진정한 프로가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본 경기는 대회마다 혹은 종류마다 많은 차이가 있다. 단거리를 누가 빨리 달리느냐 하는 경기서부터 장거리를 누가 먼저 돌아 나오느냐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최장거리 경주로는대륙을 횡단하거나 종단하는 파리-다카르 같은 랠리경주가 있지만, 서킷링에서 벌어지는 대표적인 장거리경주는 아무래도 24시간레이스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의 르망 레이스도 24시간동안 달리는 것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독일도 그에 못지 않은 24시간레이스가 있다.
수퍼투어링카 24가 바로 그것인데, 지난 2000년 6월 13-14일 독일 뉘르부르그링(Nurburg Ring)에서 벌어진 수퍼투어링카에선 역사적인 사건이 하나 터졌다. 예정대로 실시된 13일 오전의 타임트레이닝에서 최초로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나온 BMW의 320d가 각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25-35km의 서킷링을 9분28초68로 주파해 9분 43초44를 기록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따돌리고 2위로 올라서며 파란을 일으킨 것. 결국 다음날 개최된 본 경기에서 4명의 BMW레이서가 교대로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137라운드를 돌면서 약 3,475km를 달려 BMW가 우승컵을 거머쥐며 24시간 레이스 역사상 최고의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아우디 콰트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포르쉐터보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질 쟁쟁한 후보들을 뒤로한 채 우승을 한 BMW 320d는 가솔린엔진이 아닌 디젤엔진이다. 24시간 레이스역사 상 처음으로 디젤엔진을 장착한 레이싱카가 우승을 한 것이다. 물론 순간가속도와 빠른 순발력 등이 요구되는 단거리경주에서는 순간적으로 높은 출력을 낼 수 있고, 엔진의 응답성이 빠른 가솔린엔진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24시간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장거리경주에선 엔진 내구성이 좋고 고장이 적은 디젤엔진이 유리하리라는 이론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실제 디젤엔진의 출력성능이 가솔린에 비해 월등히 떨어져 그 때까지 디젤엔진 레이싱카는 상위권은 물론이고 중하위권에도 오르지 못했었다. 그런데 BMW 320d가 뉘르브르그링에서 우승해 결국 디젤엔진이 단거리용보다는 장거리, 아니 어쩌면 마라톤형 레이스에 더 잘 어울린다는 이론이 실제 입증된 것이다.
그러면 당시 BMW 320d는 과연 어떤 개조를 했고 어떤 전략으로 우승컵을 쥐었을까? 우선 BMW 320d의 기본 엔진 베이스는 양산되고 있는 모델을 그대로 사용했다. 물론 엔진은 양산모델을 개조했다. 배기량 1,950cc에 136마력짜리 양산모델엔진에 4밸브테크닉, 고압의 직접연료분사방식, 터보차저 등의 엔진개조기술이 첨가돼 토크가 400Nm, 최고출력이 200마력이상 되는 괴물로 바뀌었다. 특히 주목을 받는 테크닉은 1,750바의 고압으로 연료를 분사해 주는 연료분사장치와 터보차저의 터빈에 유입되는 배기가스량을 조절하는 터보와 상상을 초월한 디젤엔진의 경량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나라 자동차업계는 디젤엔진에 관한 이러한 테크닉에 대해선 그야말로 타불라라사(tabula rasa)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으리라. 2,000cc가 채 안되는 중형 BMW 320d의 디젤엔진 전체무게가 145kg 정도이니 디젤엔진이 가솔린엔진보다 마력당 중량이 무겁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겐 아직도 현실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독일에서는 이제 아득한 시절의 전설이 되고 있다.
BMW가 새로이 선보인 당시 터보테크닉도 대단한 작품이었다. 터보차저에 의해 압축된 공기를 식혀주는 인터쿨러와 과급압을 조절해주는 바이패스시스템 그리고 터빈입구의 가변익이 엔진의 모든 운전상태에서 항상 최적으로 작동되도록 설계됐다. 터보테크닉은 다른 많은 공학적인 기술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경험치에 의존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하자면 많은 실험과 테스트, 그리고 오랜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축적돼 이뤄지는 기술이다. 이것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지만 컴퓨터의 시뮬레이션이나 수학적 모델링 등의 방법을 빌리면 원리와 이론의 근사값을 얻어 어느 정도는 연구시간이나 개발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경험치가 없이 정확하고 최적의 생산품을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고 힘들다.
BMW사가 개발한 이 디젤엔진은 압축비가 높아서 가솔린엔진보다 토크가 높고 가솔린엔진을 능가하는 출력을 내면서도 연료소비는 동급 가솔린엔진보다도 절반이상이나 적게 소비한다. 바로 이 훌륭한 연비로 인해 BMW 320d는 장거리 레이스에서 연료공급을 받기 위해 멈춰야만 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고, 바로 이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디젤엔진은 독일사람인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라는 사람이 고안했다 해서 그의 이름이 그대로 엔진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 디젤엔진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인 1992년 2월 베를린왕립특허청은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라는 한 엔지니어가 내연기관에 대해 제출한 특허출원을 허가해줌으로써 디젤엔진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디젤엔진은 오늘날 각종 산업용 동력기관과 교통기관의 동력원으로 없어서는 안될만큼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버스나 트럭 등 대형교통기관의 대부분이 디젤엔진을 사용하고 있으며, 디젤엔진을 장착한 소형승용차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1,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디젤엔진에 대한 기술이 크게 발전한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디젤승용차는 시장점유율이 30%선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유럽의 유수한 자동차메이커들은 최고급 럭셔리 승용차를 제외하고는 중형이건 소형이건 경차건 각 부분별로 반드시 디젤모델을 생산한다. 최근에는 승용차의 디젤엔진이라면 단연 선두임을 자랑하는 메르체데스 벤츠가 최고급 럭셔리급인 S클래스에도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을 선보였다. 3,000cc급인 이 디젤엔진은 터보과급기가 장착된 6기통으로 가솔린엔진과 다름없는 성능을 유지하면서 휘발유엔진과 다름없는 정숙한 주행성과 탁월한 연비를 자랑한다. 물론 벤츠의 영원한 경쟁상대인 BMW도 고급 럭셔리 승용차인 7시리즈에 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을 이미 시장에 내놨다. 740d가 바로 그 모델인데 배기량이 4,000cc에 8기통 무려 286마력이다. 우리식으로 따져 디젤 1 리터당 평균주행거리는 거의 10km를 넘는다. 8기통 배기량 4,000cc의 대용량 엔진이 현대 소나타보다 높은 연비라면 자동차값이 비싸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생가해보면 일반 서민이라 할 지언정 어찌 구매욕구가 아니 생기겠는가.
아무튼, BMW가 디젤엔진으로 모터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우승함으로써 디젤엔진이 장착된 스포츠카가 생산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산화배기가스정화장치와 매연필터를 장착한 우수한 성능과 높은 출력을 자랑하는 BMW New 320d가 성공적으로 양산되면 가솔린엔진에 대한 디젤엔진의 여러 단점들이 사라지고 디젤엔진의 장점들만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토크, 낮은 연료소비와 알코올 및 식물성 오일 등 다양한 연료사용가능성으로 디젤엔진은 가솔린엔진을 제치고 차세대엔진으로 각광을 받으며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이제 앞으로는 빠른 속도로 승부를 판가름하는 카레이스에서도 경주용 디젤엔진 자동차가 등장할 것이어서 가솔린엔진 시대에서 서서히 디젤엔진시대로 전환됨은 분명하다. 즉, 머지 않아 디젤엔진이 장착된 스포츠카가 등장하리라는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