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드디어 새 엔진을 얻었다. 쌍용은 95년 무쏘를 개발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엔진을 조금씩 개선하면서 지금까지 써 왔다. 10년 가까이 엔진을 바꾸지 못한 한을 이번에 보란 듯이 풀었다. 170마력짜리 커먼레일 디젤 직접분사 엔진을 개발, 렉스턴에 얹은 것.
쌍용으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일 것이다. 가장 큰 약점을 뒤늦게 보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며 벌써 수 년 전에 커먼레일 디젤엔진이 보편화되는 추세였으나 쌍용은 예외였다. 부도와 법정관리를 거치면서 빠듯한 살림으로는 신기술 적용이 마음대로 이뤄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춥고 배고픈 와중에도 쌍용은 끈기있게 연구개발을 진행시켜 뒤늦게 커먼레일시대에 동참했다. 170마력의 최강 파워는 가장 늦게 합류한 자가 누릴 수 있는 덤이다. 쌍용이 2004년 시장을 겨냥하며 선보인 야심작, 뉴렉스턴을 만났다.
▲디자인
쌍용이 뉴렉스턴을 내놓으며 배포한 각종 자료에는 디자인에 관련한 언급이 별로 없다. 그 만큼 이번 변화는 엔진과 변속기를 중심으로 한 성능 부분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렉스턴의 디자인 변화는 소폭에 그쳤다. 라디에이터 그릴이 변했고 사이드 가니시를 크롬 소재로 강조한 것 정도다. 루프랙 컬러를 보디와 조화를 이루게 적용했고 휠 디자인이 화려하고 세련되게 변했다. 큰 틀은 여전히 이전 렉스턴 그대로다. 쌍용은 렉스턴의 디자인을 가능하면 그대로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한 듯 하다.
사실 디자인은 생색내기 좋은 부분이다. 소비자들에게 똑 부러지고 쉽게 변화를 어필하기 위해 디자인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그릴, 헤드램프, 트렁크 리드 정도만 리터치하고 모델체인지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이너체인지를 단행하면서 굳이 디자인에 변화를 주지 않은 것에서 오히려 쌍용의 자신감을 읽는다. 엔진과 변속기 만으로도 충분히 변화를 강조할 수 있다는 당당한 자신감 말이다.
탑승객을 위한 배려는 곳곳에 스며 있다. 수납공간이 손닿는 곳마다 있고 1, 3열에는 파워 아웃렛이 마련됐다. 러기지 네트가 있어 짐들이 흩어지지 않고, 디지털 멀티미디어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좁은 듯 하지만 수시로 ‘안전운행 하십시오’라는 경고 메시지를 날리면서 과속으로 촬영단속되는 걸 막아준다. 후진할 때는 모니터로 후방 상황을 볼 수 있어 편하다.
▲성능
이전 렉스턴은 2.9ℓ 132마력으로 엔진 배기량에 비해 힘이 약했다. 특히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는 좀처럼 차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차는 무겁고 엔진힘은 부족해서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야 일하기 싫은 황소처럼 겨우 기지개를 켰다.
뉴 렉스턴 운전석에 앉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첫 발짝을 잘 떼는 가였다. 예전의 굼뜬 움직임의 기억을 깔끔히 지워주길 바라면서 페달을 밟았다. 예전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느낌은 이전과 달랐다. 하지만 무거움은 여전했다.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기대해선 안된다.
중저속에서의 움직임은 상당히 개선됐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밟는 대로 차가 반응하고 굼뜬 느낌도 없다. 시속 160km까지는 여유롭게 가속했다. 시속 120km를 넘는 고속주행에서는 차의 무게가 주는 안정감이 여전했다. 노면에 밀착된 느낌이다. 엔진 소음은 디젤엔진임을 금방 알아 챌 수 있는 정도다.
쌍용은 이 차에 적용된 엔진을 3세대 DI엔진이라고 소개했다. 1,600바의 초고압 방식으로 32비트 ECU가 컨트롤한다는 것. 과도한 매연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적용됐고 수분 분리기능이 뛰어난 연료필터도 달렸다.
수동변속이 가능한 5단 자동변속기는 훌륭했다. 변속충격은 거의 없었고 단단히 물려 돌아가는 느낌이 좋다. 중립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D나 R 레인지로 변속이 되는 점은 의외다. 보다 확실한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D나 R로 변속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급한 코너에서 앞뒤좌우의 회전차가 감지되면 경고음이 작동하고 각 바퀴로의 동력 배분이 조절된다. 이 때 차는 가속페달을 밟아도 멈칫거리며 구동력을 확보한다. 차의 안전을 차가 스스로 알아서 찾아가는 것. 이는 스마트 4WD와 ESP 기능이 있어 가능하다. 이 기능은 특히 미끄러운 눈길이나 오프로드에서 유용하다.
서스펜션은 조금 부드러운 편이다. 높이가 있어 오프로드의 험한 길을 넘을 때는 출렁거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경제성
렉스턴의 캐치플레이즈는 "대한민국 1%"다. 아무나 살 수 없는 고급차로 이미지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 이 같은 고급마케팅은 경쟁사 관계자조차도 “쌍용 덕택에 차값을 높이는 데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뉴렉스턴은 가장 싼 모델이 2,231만원이다. 수동변속기에 4륜구동도 안되고 커먼레일 엔진도 아니다. 커먼레일 엔진에 자동변속기를 장착하면 3,100만원이 넘는다. 가장 비싼 RX5EDi는 3,656만원. 여기에 선루프, AV 시스템, 내비게이션 등 풀옵션을 적용하면 4,500만원 가까이 된다. 이 쯤되면 수입차와 견줘야 할 가격대다. 그래도 렉스턴이 팔릴 수 있는 건 그 만큼 경쟁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커먼레일 엔진의 연비는 수동변속기가 11.8km/ℓ, 자동변속기가 10.4km/ℓ로 모두 1등급에 속한다. 디젤엔진에 이 처럼 우수한 연비까지 겸했으니 비싼 가격을 어느 정도까지는 상쇄시킨다고 봐야 한다. 비싸게 사서 싸게 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시승/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