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운전자들에겐 가장 가혹한 계절이다. 추운 날씨, 꽁꽁 얼어 미끄러운 길은 차와 운전자를 주눅들게 한다. 폭설이라도 쏟아지면 차를 두고 종종 걸음을 해야 한다. 적어도 이럴 때 마음 편한 이들이 있다. SUV를 타는 이들은 악천후에 오히려 힘이 난다. 차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1년 365일 가봐야 4륜구동 기능을 써먹을 일을 좀처럼 만나기 힘든 도시의 SUV 오너들은 그래서 겨울이 즐거울 수 있겠다.
추운 계절을 기다렸다는 듯 현대자동차가 테라칸 업그레이드 모델을 발표했다. 엔진 성능을 개선하고 일부 실내 사양을 고급스럽게 변화시킨 것. 테라칸은 명실상부 현대 SUV의 맏형이다. 기아자동차까지 포함해서도 그렇다. 다른 차들 설설 기는 엄동설한에 보란 듯이 나온 이 차를 한 겨울 칼바람을 헤치며 탔다. 시승차는 JX290.
▲디자인
테라칸의 외부 디자인은 달라진 게 없다.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처음 이 차를 볼 때의 낯설고 어색한 느낌은 많이 없어졌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한 디자인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졌다. 사람의 눈은 그렇게 간사하고,‘정’이 무서운 것이다. 때론 이 처럼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들도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약간의 변화를 찾을 수 있다. 검정 일색이던 실내에 베이지와 회색 등을 적용했다. 광택이 없는 무광 크롬도금을 필요한 부분에 붙이고 메탈릭 페인트를 사용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살렸다. 프라이버시 글래스로 불리는 뒷좌석 유리는 코팅이나 선팅한 것이 아니라 색유리다. 앞창에도 아래쪽에 열선을 채용했다.
▲성능
이번 변화의 초점은 엔진이다. 제원표의 최고출력이 15마력 높아져 165마력이 됐다. 커먼레일 방식의 연료압력을 1,400바에서 1,600바로 높여 출력을 향상시킨 것. 최대토크도 34kg·m에서 36kg·m으로 세졌다. 브레이크 디스크는 16인치를 채택해 제동성능을 높였다. 기존의 틀을 거의 건드리지 않은 가운데 실속있는 변화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로 새 테라칸의 변화를 요약할 수 있다.
시승을 통해 그 변화를 실감할 차례다. 테라칸의 파워는 이전서부터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전 영역에서 고르고 충분한 파워는 이 차의 큰 장점이다. 게다가 출력을 15마력이나 더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테라칸의 파워는 사실 경이롭다고 해야 할 정도다. 디젤엔진으로서는 드물게 고속에서도 매우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서다. 과거의 디젤엔진은 사실상 시속 160km, 잘해야 170km 정도가 한계였다. 그 이상의 속도는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나마 시속 160km에 다가서기 시작하면 엔진이 깨질 듯 한계성능을 보였다.
하지만 요즘의 디젤엔진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 테라칸이 이를 증명한다. 시속 180km를 넘기면서도 엔진은 여유롭고 차체는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다. 말이 180km이지 승용차보다 지상고가 훨씬 높은 SUV는 승용차보다 속도감이 훨씬 높고 안정감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테라칸의 고속 안정성은 승용차보다도 월등한 수준이다. 테라칸에게는 마음껏 달릴 수 없는 이런저런 환경이 오히려 유감이다.
힘이 세면 오프로드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보다 강하게 장애물들을 건널 수 있어서다. 테라칸은 여기에 더해 ATT라는 진보된 기술을 가졌다. 네바퀴굴림 방식이 발전한 것으로 일반 도로에서의 평상주행에서는 뒷바퀴굴림 상태로 달리다가 노면상황이 변하면 그 정도에 따라 앞뒤 바퀴에 전해지는 구동력을 내장 컴퓨터가 판단, 적절하게 배분해주는 시스템이다.
복잡할 건 하나도 없다. 운전자는 그저 지긋히 페달을 밟고 평상시처럼 운전하면 된다. 나머지는 차가 다 알아서 한다. 운전자가 따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풀타임 4륜구동이지만 상황에 따라 구동방식이 변한다는 점에서는 파트타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트타임이냐 풀타임이냐를 구분짓는 것부터가 과거 방식이다. 이제는 의미없는 구분법이다. ATT는 선택품목이다.
운전하는 동안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시선의 분산이다. 운전자의 시선이 자꾸 흩어진다. 원인은 시계와 펜더미러다. 시계는 평소에 그리 신경써서 보지 않다가도 특정한 때에는, 특히 시간에 쫓길 때는 자주 찾게 된다. 테라칸에는 운전자의 머리 위 오른쪽 지붕에 매달린 멀티미터에 시계가 내장됐다. 시계를 보려면 고개를 살짝 올려 오른쪽을 봐야 한다.
펜더미러도 그렇다. 원래 이 거울은 주행중보다는 오프로드 주행이나 주차할 때 타이어 주변을 살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주행중에도 자주 시선을 뺏는다. 크게 유용하지도 않은 거울인데 그 자리에 있다 보니 물 흐르듯 좌우를 살피던 시선이 가끔 그 곳에서 멈춰지는 것.
디젤엔진차를 탈 때는 소음과 진동에 항상 신경이 쓰인다. 이 차의 진동은 "수", 소음은 "우" 정도를 줄 수 있겠다.
▲경제성
2004년형 테라칸은 2륜구동과 4륜구동이 있으며, 판매가격은 수동변속기 기준으로 2,115만∼2,845만원이다. 자동변속기를 선택하면 177만원이 추가된다. 구형 모델에 비해 모델별로 47만~69만원 정도 비싸졌다.
모델 라인업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가솔린엔진인 VX350은 그래도 유지하고 터보 인터쿨러를 장착했던 2.5TCi는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테라칸은 2.000만원대 이상에서 다양한 선택폭을 가졌다고 보면 될 듯하다.
디젤엔진이 갖는 기본적인 경제성은 무시 못할 매력이다. 연료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연비도 우수해 장거리 운행을 자주하는 이들에게는 꽤 인기가 높은 게 사실이다. 2.9CRDi 디젤 4WD에 자동변속기를 얹은 모델의 연비는 10km/ℓ다. 배기량이 2.9ℓ이니 합리적인 수준이라할 수 있다.
경쟁모델인 쌍용 렉스턴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테라칸 입장에서 보면 성능은 약보합, 경제성은 강보합으로 정리할 수 있다. 170마력인 렉스턴에 비해 5마력 뒤지지만 가격은 2,231만원부터 최고 3,651만원까지 하는 렉스턴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것.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선택이 갈릴 것이다.
시승/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