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지만 유용한 기술 '고-스톱 카'

입력 2004년01월2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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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경섭(베를린 공과대학 자동차공학과 박사과정)

유행이란 의복, 화장술 혹은 사상 등의 일정한 양식이 어떤 시기에 일시적으로 널리 퍼지는 현상을 말한다. 유행은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양식에 대해 동시에 공감대가 형성돼 퍼진다기 보다는 소수의 창조자들에 의해 소개되고 이를 대중이 모방함으로써 널리 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행은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공학적인 기술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학적 기술의 유행도 마케팅과 더불어 고객들의 미메시스(모방) 여부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

자동차에서 첨단 기술을 선취한 기술 강대국이 미메시스를 의도대로 유도해낸 최초는 아마도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기자원국(CARB:Calrifonia Air Resouces Board)의 환경보호법이었을 것이다. 80년대초 모든 승용차에 배기가스 정화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하는 이 법규는 곧 세계로 확산됐다.

신기술 실용화에 따른 새로운 법의 창출이라는 일반적 경향-즉 자동차가 발명되고 나서 도로교통법이 제정됐듯이-과는 달리 법이 인간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경우다. 그 후 미국은 ABS와 에어백 장착 등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 세계적으로 ABS와 에어백 기술을 크게 유행시켰다.

그러나 괜찮은 기술임에도 유행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그 것은 법제화나 실용화에 실패했거나 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실용화에 실패했다는 건 여러 요인들이 있을 수 있으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경제성을 맞추지 못했을 때다. 그런데 경제성도 좋고 기술도 완벽한데 유행에 실패한 기술이 있다. 무엇일까.

자동차에 있어서 연료소비량과 유해 배기가스 방출량은 거의 비례한다. 각 자동차회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연료소비를 최소화하고 유해한 배기가스를 줄일 수 있는 지에 관해 연구해 왔다. 일단은 연비가 높으면 배기가스 방출량도 낮아지고 고객들에게도 당연히 경제적으로 이득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서 자동차의 운행은 이제 굳이 출퇴근시간이 아니더라도 교통량 증가로 인해 항상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소위 "스톱 앤 고"인 상태다. 오랫동안 정체돼 있다든지, 긴 신호대기에서 멈춰 있을 때 소비되는 연료소비량은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임에 틀림없다. 물론 오랜 시간 정차해 있을 때는 엔진을 끄면 되지만 "스톱 앤 고"인 상태에서 엔진을 껐다 켜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연료소비도 줄이면서 자동으로 엔진을 끄고 켜는 시스템은 없을까.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자동으로 엔진이 꺼지고 페달에 발을 얹으면 자동으로 다시 시동이 걸리는 컨셉트카 SNA(Schwung Nutz Automatik)가 바로 그런 시스템을 갖춘 차다. 이 시스템은 이미 오래 전 폭스바겐에 의해 소개된 바 있다. 전체 몸체는 기존 모델인 골프이고 Cat 디젤엔진을 얹은 골프 이코매틱이 바로 그 차다.

Cat 디젤엔진은 촉매정화장치를 부착한 것으로 터보차저까지 장착해 1,600cc의 배기량에서 60마력의 출력이 나온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약 1,5초 후에는 자동으로 엔진이 꺼지는데 안전을 위해 트랜스미션에 1단 기어나 후진 기어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는 엔진이 꺼지지 않는다.

이렇게 스톱/스타트 기능이 완벽히 작동되는 운행상태를 이코노미-스타프라고 하며 내리막길을 운행할 때 혹은 자동차가 관성력을 갖고 있을 때 클러치가 자동으로 작동되는 리듀스드-이코노미 운행 그리고 첫 시동 후 엔진이 정상 작동온도에 이를 때까지의 세미-리듀스드-이코노미 운행 등으로 나눠진다.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관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엔진이 작동할 때 따로 장착된 플라이휠에 운동에너지를 저장했다가 꺼진 엔진을 시동걸 때 다시 사용한다는 것. 결국 운동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플라이휠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클러치가 붙어 있는 구조다. 두 클러치는 운행상태에 따라 완벽히 자동으로 작동되므로 클러치 페달이 없다.

기존 자동차보다 용량이 큰 배터리와 이코노미 운행시 시동보조용 배터리가 있고 각 컴포넨트에 부착되는 센서와 압력펌프, 클러치 서보 그리고 이 모든 걸 총괄하는 컨트롤박스가 설치돼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모듈에 따른 소프트웨어는 운전자에게 상황에 가장 적합한 변속기어를 선택해준다.

첫 시동 후 엔진온도-보통 엔진온도는 냉각수온도를 말한다-가 섭씨 55도가 될 때까지는 엔진이 절대 저절로 꺼지는 일이 없다. 이는 배기가스 정화장치가 일정한 온도 이상 돼야 정상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이 때 필요에 따라 배터리를 충전하기도 한다.

SNA골프는 통상의 시내주행 시 리터당 21,7km의 연료를 소비하며 90km/h와 120km/h 정속주행 그리고 시내주행을 혼합한 테스트에서 100km당 4,9리터를 소비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보통의 Cat 디젤엔진만을 장착한 골프와 비교해 보면 약 11~33% 정도의 연료소비 절감효과가 있다. 당연히 배기가스 역시 ECE-테스트에서 동급의 골프보다 일산화탄소 약 34%, 탄화수소는 약 17% , 질소화합물과 카본은 각각 13%와 11%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차값은 양산되는 보통 골프와 비교하면 약 500유로(60만원 정도) 비싸다. 독일 니더작센주의 경찰이 업무용으로 10대를 대여해 2년간 테스트한 결과 소프트웨어와 다른 기술적인 결함이 없어 1995년부터 소규모 양산을 시작했으나 독일에서는 유행에 실패,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개발 담당자 중 한 사람인 폭스바겐의 쉐렐리스 박사는 연간 1만대 정도를 예상했으나 1997년까지 6,000여대만 판매됐다고 한다. 폭스바겐의 진단은 클러치 페달이 없는 변속조작의 부자연스러움과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고 페달에 발을 얹어 놓으면 자동으로 시동이 걸리는 시스템에 고객이 어색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는 다소 궁색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보다는 차라리 마케팅에서 고객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기술을 유행시키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SNA시스템은 어쩌면 정체현상이 별로 없는 독일보다는 달리는 시간 못지 않게 정체돼 멈춰 있는 시간이 많은 서울의 교통실정에 딱 들어맞는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SNA는 여러 부품들로 인해 구조가 다소 복잡하고 또 그에 따라 가격이 약간 비싸다는 단점이 있으나 우수한 연비와 더불어 유해 배기가스 방출과 소음을 크게 낮출 수 있어 교통혼잡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이 기술을 응용, 개발해 유행시켜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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