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연합뉴스) 전쟁의 상흔이 깊게 자리한 고도(古都) 바그다드에서 새 물건을 찾아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지속된 금수조치로 대외교역이 사실상 봉쇄됐던 탓이다. 그 중 자동차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심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차량의 십중팔구는 중고차다.
전후 이라크에서 한국을 비롯한 외국산 중고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바트당원, 군인 등 사담 후세인 집권시절 수혜계층이었다는 이유로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라크의 현 실업률은 5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전쟁 와중에 폭격과 약탈로 버스 위주로 운영되던 대중교통체계가 붕괴된 것도 중고차 수입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반도 면적의 2배나 되는 비교적 큰 나라인 이라크에서 마비된 대중교통을 대체할 이동수단으로 자가용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라크 중고차업계는 지난해 5월 미국의 종전선언 이후 이라크로 들어온 외제 중고차 100만대가운데 한국산이 30∼5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KOTRA 바그다드무역관의 김동엽 과장은 "이라크로 수입되는 중고차는 요르단 등 제3국을 거쳐 들어오고, 이라크의 통관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정확한 통계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월평균 5만∼6만대의 한국산 중고차가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실치 않다"며 "그러나 한국산 중고차 수입이 폭증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라크에서는 2개월전부터 과도통치 정부의 지침에 따라 차량등록이 시작됐으나 대부분의 차량은 번호판이 없는 무적차량들이다.
한국산 중고차가 일본이나 독일산에 비해 인기를 끄는 것은 가격 때문. 택시사업을 하는 아흐메드 세르베스 안들리스(30)는 "2천달러 정도면 쓸만한 한국 중고차를 살 수 있다"며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는 승합차와 승용차 중에서 차체가 큰 프린스 차종이 선호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라크에서 월평균 수입이 500달러면 비교적 높은 임금군에 끼는 점을 고려할 때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바그다드 시내에선 한국어 광고가 그대로 붙은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이라크로 통하는 길목 역할을 하는 요르단의 한국대사관에는 한국산 중고차를 이라크로 가져다 팔기 위해 한국비자를 받으려는 요르단 무역상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요르단 무역상들과 협력해 이라크 중고차 시장 진출을 추진중인 오션무역의 류병실 사장은 "이라크는 한국 최대의 중고차 시장이 되고 있다"며 이라크 시장공략을 서두르는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통관체계가 구축되기 전에 무관세율이 적용되는 이라크 땅에 물건을 최대한 많이 들여 놓으려는 무역상들의 선점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라크로 수입된 중고차 중엔 통관체계가 불비된 허점을 비집고 들어온 폐차 직전의 고물차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앞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차체의 옆면과 범퍼가 찌그러진 것은 물론이고 전조등이나 백미러가 부서진 차량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현지인들은 일단 바퀴만 굴러가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도로용량 부족과 폭발적인 차량증가로 교통정체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바그다드 시내의 한낮 공기는 중고차들이 뿜어대는 매연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