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시대는 갔는가

입력 2004년03월12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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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할 것인가, 상생을 할 것인가. 양자택일을 하라면 누구든 선뜻 하나를 택할 수 없는 질문이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반면 또 생존을 위해선 "상생"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쟁과 상생의 복잡미묘한 관계는 자동차업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자동차제조사는 모두 5개다. 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르노삼성이다. 큰 틀로 묶으면 현대와 기아가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며, 나머지는 모두 제각각이다. 현대와 기아의 시장점유율은 70%를 넘는다. 자동차업계의 맏형이란 애칭도 이 같은 거대한 시장점유율에서 비롯됐다.

반면 GM대우, 쌍용, 르노삼성은 규모가 현대-기아에 비해 절대적으로 작다. 현대-기아가 차지한 70% 외의 시장을 두고 아웅다웅 다투는 형상이다. 따라서 이들은 언제나 "맏형"격인 현대-기아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시각의 제한은 어디까지나 한국 내에서 한정된다. 따라서 자동차업계는 "맏형"을 중심으로 경쟁과 상생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근래들어 업계에선 상생보다 경쟁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유는 단 하나. 외국 자동차회사의 등장 때문이다. 대우가 GM으로 넘어가지 않고, 삼성이 르노에 편입되지 않았더라면 "경쟁"보다 "상생"이 우선순위였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결과는 GM대우가 됐고, 삼성 앞에 "르노"가 먼저 배치됐다.

이 같은 구도는 현대-기아의 시각을 크게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현대-기아는 GM대우와 르노삼성을 작은 회사로 보지 않는다. 한국 내에선 작지만 글로벌에선 현대-기아보다 규모가 크기에 지구촌 전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한국 내에서도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GM대우와 르노삼성은 "맏형"인 현대-기아가 "경쟁"에 치우치는 데 불만을 터뜨린다. 한국 내에서 함께 상생해야 하는데도 현대-기아가 "동생"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 이들은 GM과 르노가 글로벌에서 현대-기아의 경쟁이 되는 것이지, GM대우와 르노삼성은 여전히 한국 내에서 작은 회사라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현대-기아는 글로벌적 시각을, GM대우와 르노삼성은 국내적 시각을 내세우는 데서 생기는 관점의 차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규모가 크지도 않은, 그렇다고 외국회사도 아닌 쌍용의 시각은 어떨까. 심판격이 될 만한 쌍용의 생각은 "상생의 시대는 갔다"다. 과거 "맏형"이 "동생"들을 다독이며, 업계 전체가 한국의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 공조하던 시대는 이제 사라졌다는 의미다. 따라서 경쟁만이 살 길이고, 이제는 "형과 동생"을 따지지 않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 처럼 각 회사의 경쟁심리는 매우 쉬운 곳에서 실례를 찾을 수 있다. 과거의 경우 회사의 규모가 크든 작든, 대외적인 행사가 있을 때 항상 서로 일정을 맞추며 보완하곤 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신차를 발표하거나 기타 대외적인 행사를 하면 경쟁회사가 "상생"의 차원에서 자사 일정 등을 양보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물타기" 전법이 성행하고, 경쟁사를 깎아내리려는 다분히 작위적인 모습이 다반사다. 경쟁사의 신차발표일에 맞춰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신차 출시 때도 축하는 커녕 제품의 가치를 폄하하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며 21년째 자동차업계에 몸담고 있는 한 자동차회사 고위 임원은 "한국의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 서고 감싸주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주던 옛날이 그립다"고 말한다.

"상생"에서 "경쟁"으로 돌아선 지금,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주영 전 현대자동차 회장을 비롯해 정세영 회장, 김우중 전 대우자동차 회장, 김선홍 전 기아자동차회장 등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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