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프리랜더를 다시 탔다. 지난해 여름에 이 차를 시승했는데 다시 해가 바뀌어 뉴 프리랜더가 시장에 투입됐다. 랜드로버 가문의 막내가 변하는 시장에 맞춰 부지런하게 변신한 것이다.
랜드로버는 흔히 "4WD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최고급 SUV 브랜드다. 그 상표를 달고 나온 프리랜더는 보급형 랜드로버로 부를 수 있을 만큼 랜드로버 모델들 중에서는 소비자에게 가장 바짝 다가서 있다. 2003년 한 해동안 세계에서 판매된 프리랜더는 약 6만5,000대로 랜드로버 중에서는 가장 효자 차종이다. 프리랜더 2.5 V6 5도어를 시승했다.
▲디자인
샤프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련됐다고 해야 할까. 뉴 프리랜더의 첫인상은 그랬다. 발랄하고 도회적인 인상을 물씬 풍겼다. 이전 프리랜더가 터프가이에 가깝다면 새 프리랜더는 꽃미남이라면 어떨까. 아무튼 그랬다. 새 얼굴이 곱게 보이는 건 인지상정 때문만은 아니다.
은색 컬러부터가 샤프하다. 헤드램프의 변화는 예견된 일이다. 레인지로버가 모델체인지를 하면서 채용한 사각형 헤드램프가 드디어 프리랜더에도 적용됐다. 프리랜더가 헤드램프를 교체하면서 사각 헤드램프는 이른바 랜드로버 가문의 패밀리룩으로 자리를 굳혔다. 메이커측에서는 새 디자인의 램프는 트윈포켓 헤드라이트로 기존 램프보다 70%나 더 밝다고 소개했다.
뉴 프리랜더의 앞모습에서 눈길을 붙잡는 부분은 범퍼다. 뉴 프리랜더에서 변화의 가장 큰 포인트가 범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범퍼 디자인을 새롭게 하고 컬러를 적용시켜 마치 범퍼가드까지 장착된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안개등은 범퍼 안에 내장시켰다.
실내의 변화도 작은 게 아니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배열이 이전과 다르다. 각 게이지와 버튼들 그리고 컬러 매칭이 훨씬 세련됐다. 대시보드의 표면은 울룩불룩 굴곡이 심하다. 마치 비만환자의 배가 허리띠 위 아래로 나뉘는 듯한 굴곡이 윈드실드와 맞닿은 면에서부터 센테페시아 아래쪽까지 연이어 계속된다. 게다가 대시보드 윗부분에 컵홀더가 파여져 있는 등 앞좌석과 조수석은 정돈되지 못한 어수선한 분위기다.
실내 공간은 좁지도 넉넉하지도 않다. 다만 앞좌석 등받이를 조금 세우면 머리와 천장 사이이의 공간인 헤드클리어런스가 좁아진다. 키가 큰 사람이면 닿을 정도.
▲성능
디자인에서 이 차의 특징이 헤드램프와 범퍼에 집중돼 있다면 성능을 단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부분은 스티어링 휠, 쉽게 말하는 핸들이다. 이 차의 핸들은 조금 과장해 표현하면 파워 스티어링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겁다. 주차장에서 핸들을 이리저리 돌릴 때 무척 힘이 많이 들어간다. 여성이라면 좁은 주차장에서 차를 움직이기가 꽤 부담되겠다. 핸들을 잡는 느낌은 듬직하다. 핸들 두께가 꽤 굵어 손 안에 꽉 찬다.
가속감은 거칠다. 거칠다는 건 야성미가 살아 있다는 말이다. 섬세하고 부드럽고 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약간의 롤링도 느껴지고 차체와 부딪히는 바람소리도 들린다. 급가속하면 순간적으로 변속기가 주춤거리는 경우도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차가 나가는 느낌도 경쾌하다기 보다는 도로에 달라붙는 느낌이다. 껌이 붙은 듯,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가속감이다.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터프하다. 승용차라면 당연히 감점요인이다. 그러나 SUV에서는 크게 타박할 일이 아니다. 차체와 지상고가 높고 오프로드 주행까지 고려해야 하는 차종인만큼 섬세함보다는 조금 거칠더라도 강한 성능이 미덕이다.
시속 120km 까지는 무난한 가속능력을 보인다. 그 속도를 넘어 시속 160km를 넘는 속도까지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속으로 갈수록 불안해진다. 절반은 차 때문이고, 절반은 해가 갈수록 겁이 많아지는 시승자의 소심함 탓이다.
풀타임 4륜구동 방식이어서 코너에서는 탁월한 안정성과 선회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 바닥에 잔모래들이 깔려 있는 미끄러운 길에서 시속 80km 전후의 속도로 급한 코너를 시도하는데 타이어가 밀리거나 오버, 혹은 언더 스티어링 현상없이 정확한 뉴트럴 스티어링을 보였다. 운전자가 핸들을 조절하는 만큼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만큼만의 반응을 보였다. 코너에서 느끼는 4륜구동의 참맛이다.
오프로드에서 이 차는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이다.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걸까. 프리랜더가 랜드로버 혈통임을 오프로드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오프로드용이 아닌 노멀 타이어를 끼었는데도 물이 고인 진흙길을 잘 건넜다. 순간순간 미끌림이 있었으나 그 때마다 구동력을 되살려 헛바퀴 도는 일을 막았다. 경사진 길에서 정지한 뒤 다시 출발할 때는 전혀 뒤로 밀리지 않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간다.
프리랜더라는 이름 때문일까. 프리랜더는 땅 위를 달리는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는 차다. 길 위가 아닌 땅 위를 달리는 자유로움이다. 그 땅에 길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이 차에서 주목할 만한 장비는 내리막길 제어장치 HDC다. 풀타임 4륜구동 방식인 이 차에는 로 레인지가 따로 없다. 저속으로 강한 구동력을 내는 로 레인지 대신 HDC가 그 소임을 맡는다.
변속 레버 아래에 마련된 HDC 버튼을 누르면 1단과 후진에서 매우 강한 토크를 낸다. 로 레인지와 동일한 기능이 되는 것. 이 상태에서 경사진 언덕길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도 저속으로 내려갈 수 있다. 자연스럽게 가속이 되는 상황에서도 가속되는 일은 없다. 가끔 변속기와 구동계통에서 약간의 소음과 충격이 느껴지지만 이는 오히려 HDC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기어레버를 2단 이상으로 가져가면 HDC 버튼이 눌려 있어도 그 작동은 멈춘다.
▲경제성
프리랜더는 가솔린엔진과 디젤엔진, 3도어와 5도어 등으로 모델 라인업을 이룬다. 이 중 가솔린 모델인 2.5 V6의 가격은 3도어가 4,990만원, 5도어가 5,290만원으로 책정됐다. 디젤 모델인 2.0 TD4는 4,890만원과 5,390만원으로 팔린다. 구형의 가격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랜드로버코리아측은 이전과 비교할 때 700여개의 부품이 새로 적용됐고 기본사양을 고급화해 실질적으로는 약 500만원 정도 가격이 내려간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메이커 발표 연비는 가솔린엔진이 7.7km/ℓ다. 디젤엔진도 10.9km/ℓ다. 풀타임 4WD 방식이어서 그다지 연비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프리랜더는 작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성능을 가진, 역시 랜드로버가 만든 차였다.
시승/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