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와 달리기 시합을 해서 이겼다는 괴물이 있다. 비행기도 일반적인 여객기가 아니라 순발력을 생명으로 여기는 전투기다. 이 쯤되면 날개만 달면 하늘을 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닷지 바이퍼 GTS다. 바이퍼는 독사란 뜻이다.
그 괴물이 한국에 왔다. 딱 다섯 대가 상륙했다. 정해진 가격도 없다. 경매를 통해 판매한다고 한다. 바이퍼를 실제 처음 만난 건 2001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였다. 그 때 바이퍼는 무대 위에서 우람한 근육질을 뽐내고 있었다. 그 차가 이제 태평양을 건너와 기자의 시승을 기다리고 있다.
바이퍼는 이미지 리딩카다.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는 차다. 특히 바이퍼 쿠페 GTS는 759대만 한정생산됐다. 그 중 다섯 대가 국내에 들어온 것이고 오늘 탈 차는 그 다섯 대 중 하나다. 전투기를 물어버린 독사를 타고 지상비행에 나섰다.
▲디자인
바이퍼는 근육질 디자인의 전형이다. 그 앞에서 다른 어떤 차도 근육질을 내세우긴 어렵다. 범퍼 끝에서 보닛과 루프를 지나 리어엔드로 이어지는 라인의 굴곡은 예술이다. 두 개의 흰줄 무늬는 차 모양에 큰 포인트를 준다. 기자도 처음에는 그 스트라이프가 도색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것은, 흰색 테이프를 붙여 놓은 것이었다. 의외였다.
압권은 사이드 뷰. 범퍼 모서리에서 타이어를 감싸는 펜더를 지나 한 차례 파도친 굴곡은 뒤로 가면서 다시 살아나 독사의 멋을 마무리한다. 툭 튀어나온 보닛라인은 코쟁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보닛을 열면 이 차의 위세는 더욱 당당해진다. 범퍼 쪽에서 고리를 풀면 윈드실드와 접한 면을 열 수 있다. 그 안에 10기통 엔진이 완전히 드러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난 위용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바이퍼는 길이 4.5m에 폭이 2m에 달하는 거구다. 그러나 탑승자를 위한 공간 배려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달랑 두 사람만 탈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공간은 오로지 차를 위한 것일 뿐이다. 10기통 엔진은 캐빈룸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운전석 앞 계기판은 속도계와 타코미터뿐이다. 냉각수와 오일 게이지 등 나머지는 센터페시아 위로 옮겼다. 속도계는 마일 기준으로 표기됐고 조그맣게 km를 병기했다. 무심코 운전하다가는 80km 속도제한인 도로에서 80마일로 달리기 십상이다.
정면에서 차를 보면 차 높이가 낮아 내려다보게 된다. 영락없이 땅에 달라붙어 눈을 부라린 독사의 모습이다.
▲성능
바이퍼는 승객을 배려하지 않는다. 사람이 차에 맞추라는 식이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기가 불편하다. 앉은 자세도 조금 누운 듯하다.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제대로 보려면 눕듯이 앉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운전하기가 어정쩡해진다. 주어진 형태에 맞춰 운전자세를 잡으면 우측 사이드 미러가 A필러에 걸려 반쯤만 보인다.
운전하는 동안 기자의 왼쪽 발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클러치 페달을 밟기 위해서는 꽤 큰 힘이 필요했기 때문. 클러치 몇 번 밟고 나면 허벅지 근육이 땡길 정도다.
제원표를 살펴 보자. 최고출력 450마력, 배기량은 7,900cc, 최고속도는 309km/h, 최대토크는 67.8kg·m/3,700rpm이다. 엄청난 파워다. 슈퍼카다운 면모를 갖췄다. 그러나 배기량에 비하면 오히려 출력은 한참 모자란 듯 보인다. 그 정도 배기량이면 적어도 500마력은 넘어야 정상이 아닐까.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제작사가 한 일은 단 하나 배기량을 키운 것 밖에 없어 보일 정도다. 밸브 수를 늘려 효율을 높인다거나 하는 잔재주는 부리지 않았다. OHV 엔진으로, 그저 기본에 충실하며 배기량만으로 출력을 높였다. 메커니즘만으로 보면 한두 세대 이전의 고전적인 방식이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반면 변속기는 6단 수동으로 격에 어울린다. 일반도로에서야 3, 4단을 겨우 사용하지만 최고속도가 시속 309km에 이를 정도면 적어도 6단은 있어야 한다.
스티어링 성능은 매우 민감했다. 그런데 특이했다. 핸들을 틀면 앞바퀴가 돌고 나서 몸이 따라도는 시간차가 있다. 머리는 오른쪽에 있고 엉덩이는 왼쪽에 있어 웨이브 춤을 추는 듯했다. 이유는 운전석 위치가 매우 뒤쪽으로 치우쳐 있어서다. 옆에서 차를 보면 운전석 위치가 거의 뒷바퀴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향바퀴인 앞바퀴가 움직이고 나서 한 박자 있다가 운전석이 따라가는 것.
10여년 전 나왔던 쌍용 칼리스타를 생각나게 하는 특성이다. 이 같은 특성을 잘 익히고 있어야 미세한 조종을 할 필요가 있을 때 실수하지 않는다.
바이퍼는 뒷바퀴굴림인 데다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어 급출발을 하면서 핸들을 틀면 거의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하는 파워턴이 가능하다. 뒷바퀴굴림인 만큼 순간적인 핸들조작 시에는 매우 세심한 스티어링 테크닉도 갖춰야 한다.
엔진 소리도 무척 크다. 그러나 차에 애정을 가진 이의 귀에는 심장을 울리는 박동소리로 들린다. 분명한 건 차에 애정이 없는 사람은 바이퍼를 타면 안된다. 그런 이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로 가득차 있는 차이기 때문이다.
가속 페달을 툭 밟자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차를 민다. 1단인 상태로 rpm을 레드존까지 올리자 40마일에 이른다. 2단에서는 80마일을 넘는다. 차가 요동치면서 소리가 주는 불안감만 이겨낸다면 단 한 번의 변속으로 시속 100km를 넘길 수 있다.
가속을 하는 데 문제는 차에 있지 않다. 도로와 운전자에게 있다. 도로상황이 허락하면 속도는 거침없이 오른다. 물론 운전자의 담력도 허락해야 한다. 기자의 담력이 허용한 속도는 옆의 사진을 참조하면 된다. 더 가속이 가능한데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시속 200km를 훨씬 넘는 속도에서도 차는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시속 160km 전후의 속도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속을 거듭하면서 도로 한가운데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활홀한 느낌은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다. 바로 바이퍼의 큰 매력이다.
불편한 운전자세, 엄청난 소음, 좁은 시야. 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바이퍼는 매력 넘치는 차다. 슈퍼카가 불편한 차라는 걸 알고, 충분한 재력을 갖춘 이라면 주인 자격이 있다 하겠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나 이 차를 타고 출퇴근한다거나 러시아워에 몰고 나가는 일은 생각도 말아야 한다. 클러치를 수시로 밟아야 하는 왼쪽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혹시 교통체증인 곳에서 바이퍼를 만난다면 그 운전자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넬 일이다.
▲경제성
슈퍼카의 경제성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이퍼 GTS는 기본가격도 없이 경매로 팔릴 것이라고는 하지만 몇 천 만원에 살 수 있는 차는 아니다. 일본에선 1억4,000만원 정도에 팔린다.
그 뿐인가. 연비는 또 어떤가. 8.0ℓ에 가까운 배기량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차의 왕성한 식욕은 말릴 수 없다. 풀 가속을 한 차례 하고 나면 자연스레 눈은 연료 게이지로 간다. 게이지가 한 눈금 두 눈금 아래로 갈수록 운전자의 마음은 불편해진다. 그런 불편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이 차의 오너가 될 자격이 있다.
시승/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