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독일 북부도시인 노이뮌스터에서 한국산 자동차들의 충돌실험이 있었다. 국산 준중형 승용차 3대가 차례차례 벌집형 고정벽에 부딪치며 처참하게 부서져갔다.
막 출고되자마자 부산 앞바다에서 배에 실려 독일 함부르크항에 도착한 뒤 의자의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채 유로앤캡(Euro-NCAP)이라는 이름의 충돌테스트를 당해야 했던 이 차들은 결국 자동차의 피라 할 수 있는 엔진오일과 냉각수를 바닥에 흥건히 흘린 채 사망하고 말았다.
그 중 하나는 충돌 후 얼마나 찌그러져 밀려들어갔던지 운전석 도어가 열리지 않았다. 이는 수동안전도에 대한 치명적인 차체 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이 차에 실제로 이런 유형의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부상당한 승객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쨌든 우리 국산차들은 유로앤캡 테스트에서 점수와 함께 별 등급을 받았다. 국내 S사의 승용차가 별 5개 만점에 4개를, D사와 H사가 각각 별 3개를 얻었다. 국산차가 신화나 전설에서처럼 죽어서 별이 됐던 것이다.
이렇게 한국산 자동차들이 머나먼 이국 독일까지 와서 장렬하게 죽어가며 얻은 별과 점수는 엄밀히 말하면 유로앤캡 방식에 따라 해석돼야 마땅하나 사실은 점수와 별 등급을 온전하게 얻었다고 하기엔 찜찜한 구석도 있다. 또 그 해석과 관련해 문제의 소지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국내 사정상 아직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기에, 또 이 글에서 다뤄야 할 성질도 아니므로 차후 적당한 시기에 언급할 예정이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그리고 유로앤캡이란 대체 무엇이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차를 때려부수는 걸까. 이렇게 박치기를 해서 얻은 별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여기서 일반인들이 궁금한 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짓이란 멀쩡한 차를 부수는 일이고, 부가적으로 궁금한 건 왜 한국산 자동차의 테스트를 독일까지 와서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은 결코 쉽지 않다. 자동차 충돌실험과 차의 안전도에 대한 우리 일반 소비자들의 인식이 아직은 미비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안전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동안 국산차메이커들이 자동차의 안전도를 등한시했고, 또 고의적으로 무시해서다.
여기엔 자동차산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내시장을 보호해준 정부의 간접적인 책임도 있다. 세계 6위의 자동차생산국이라는 찬란한 빛에 그늘이 있다면 바로 안전도에 대한 후진성과 판매시장에서의 독점에 가까운 배타적인 시장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그 그늘을 계속 숨기면서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는 없게 됐다.
우선, 자국산 차들로 가득한 국내시장부터 서서히 깨지게 돼 있다. 유럽차, 미국차들이 들어와 점유율을 넓히기 시작하고 있으며 이제 일본차가 본격적으로 국내시장에 진입하면, 국산차의 시장점유율 90%라는 기괴하고 경이적인 기록은 역사에 남으면서 사라지는 게 필연이다. 전형적인 자본주의 시장의 다른 선진국처럼 자국산 차의 시장점유율이 40%에서 50%에 머무를 것이다.
그 동안 국내의 정치적인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뤘으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경제적인 민주화는, 적어도 국내 자동차시장에서는 아직이다. 그러나 이제 그 것이 깨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자동차시장에서 국산차의 점유율이 낮아지면서 동시에 차의 안전도에 관한 인식도 보다 넓어지고 다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자동차에 있어서 안전도와 충돌테스트란 무엇이며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 살펴 보는 걸 시작으로 다시 처음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아 떠나보자.
인간의 모빌리티에 관한 대표적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가 탄생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자동차란 하드웨어가 탄생한 후에 도로교통법, 운전면허증 제도, 아우토반 등 자동차와 관련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또 다른 문명과, 전혀 새로운 문화가 등장했다.
말과 마차 등에 의지하던 인간과 물자의 이동성이 차가 나오면서 소위 그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짧은 시간에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모든 패턴과 형식이 급작스럽게 변화되는 걸 말하는데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150여년 전 전문가들은 마차를 끄는 말들의 배설물이 유럽의 대도시에 큰 문제가 될 것을 예언했다가 자동차가 선보이면서 예언이 기우에 그쳤다. 기차와 차의 등장으로 마차가 사라지자 말값은 곧 헐값이 될 거라던 예상도 근대에 들어서면서 승마라는 스포츠의 발달로 어긋났다.
당시에는 차가 오늘날 대기오염과 에너지, 교통사고 등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걸 누구도 제대로 예언하지 못했다. 마차에서 자동차로의 패러다임 변화는 이렇듯 전혀 예상이 불가능했다.
자동차문화 역시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 차라는 문명의 하드웨어에서 그 순기능은 더욱 향상시키고, 역기능은 가능하면 배제하려 노력해 왔으나 교통사고, 환경오염, 에너지문제 등은 그다지 해결된 게 없다. 반면 자동차문화는 운송수단에서부터 모터스포츠까지 아주 다양하게 그 폭을 넓혀 왔다.
초기의 자동차는 이동수단보다는 왕과 귀족들의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초기엔 지붕을 얹을 생각도 못한 채 지붕이 없는 차가 당연시됐다가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비로소 지붕을 얹었다. 그 때부터 지붕이 없으면 차가 아니라고까지 평하던 분위기는 또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프트톱의 럭셔리 카브리올레가 출시되면서 오히려 지붕이 있는 차보다 더 비싸졌다.
승용차에서 피스톤 왕복기관을 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4바퀴의 리무진 기본형태가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뒤에는 과연 어떤 형태의 차가 유행하게 될 지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다.
이렇듯 자동차문화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신없이 발달해 왔다. 그래서인지 차에 있어 문명과 문화는 그 발전과정이 서로 종속되는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동차문화 중 비교적 뒤늦게 고려된 점이 바로 자동차의 안전도에 관한 문제였다. 차를 타는 일이 때로는 곧 죽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도 정작 상당 기간동안 사람들은 이 문제를 간과하고 있었다.
1886년 발명 당시 초기의 차는 범퍼는 물론 차가 충돌할 때 충돌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 또 핸들과 핸들축이 너무 딱딱해 충돌 시 운전자의 가슴이 핸들에 부딪혀 죽고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다치고나서야 비로소 차의 안전도에 관한 문제를 의식하고 대처하자는 데 처음으로 생각이 미쳤다. 그 때가 1920년대였다.
그 첫번째 생각이란 핸들을 다소 부드럽게 제작하고, 핸들축의 구조를 바꾸고, 충돌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소위 "클럼블존"을 만들어 사고 후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대가로 치르고서야 등장하게 되는 자동차의 첫 안전도문화는, 그러니까 수동적 안전도개념에서 출발했다.
차의 안전도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는 필자의 글 "자동차의 수동적 안전도와 파트너보호개념"에 개략적으로 소개했으니 중복은 피하고, 여기서부터는 자동차에 국한된 수동적 안전도와 나중에 파생되는 적극적 안전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동적 안전도에 대한 개념이 탄생된 이후 그 것을 실제 차에 적용해 실현한 사람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엔지니어였던 벨라 바렌니였다. 1952년 10월30일 벤츠가 등록한 특허 854157번 "클럼블존" 장착에 관한 건 바로 오늘날 수동적 안전도의 기본원리로 통한다.
이 클럼블존의 안전성을 공인받고자 벤츠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 충돌실험을 실시하게 된다. 1954년 벤츠공장이 있던 슈투트가르트 근처의 진델핑겐에서 실시된 출돌테스트를 통해 클럼블존에 대한 안전성이 확인됨과 동시에 교통사고에 있어서 "생존공간"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게 됐다.
교통사고 발생 시 충돌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클럼블존과 승객의 생명이 보장되는 최소한의 자동차 실내공간, 그러니까 소위 "생존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가장 이상적인 클럼블존의 변형이 가능한 보디구조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충돌실험을 실제상황과 비슷하게 맞춘다며 승객 대신 모형인형(더미)을 태웠고, 충돌 시 전달된 에너지로 더미가 실내공간의 다른 부분에 2차 충돌을 하는 걸 보게 됐다. 그 결과 충돌이 곧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결과를 유추해낼 수 있었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게 바로 안전벨트 시스템이다.
수동적 안전도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충돌실험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동적 안전장치를 새롭게 개발하는 동시에, 이에 맞춰 충돌실험 자체도 끊임없이 개발해 왔던 것이다.
이렇듯 수동적 안전도와 충돌실험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발전했다. 충돌실험에 대한 발전이 없는 곳에선 수동적 안전도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셈이다.
충돌실험이 가장 발전된 곳은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이다. 충돌실험의 선구자답게 독일에서 제안한 유로앤캡 방식은 이제 유럽의 표준모델로 자리잡았고, 하루에도 독일 전역에서 수십 대의 차가 이 방식에 따른 충돌실험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또 그 기준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이에 따라 수동적 및 적극적 안전도분야도 단연 세계 최고 수준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결국 충돌실험이 제대로 발전되지 못한 나라에서 만든 차의 안전도는 선진국 것을 모방하거나 수입하지 않는 한 절대 우수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안전벨트에 대한 컨셉트는 이미 50년대 초반에 페가소에 의해 제시됐으나 실제 의무적으로 장착되기 시작한 건 80년대였다. 프리 텐셔닝(Pre Tentioning) 안전벨트 시스템과 안전벨트의 강력한 보조장치인 에어백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건 90년대 들어와서다. 차의 다른 부분의 발전과정에 견줘 보면 차에 있어 수동적 안전도분야는 생각 외로 더디게 진행된 셈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