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지난 5월 SAV라는 수식어를 앞세워 X3를 국내에 선보였다. SAV는 스포츠 액티비티 비클을 줄인 말이다. 기존 SUV와는 다른 의미라고 하지만 SUV와 SAV가 어떻게 다른 지 명확한 구분이 없다. 남들 다 쓰는 SUV라는 말 대신 SAV라는 단어를 ‘창조’함으로써 뭔가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이 처럼 같은 뜻을 달리 부르는 용어의 홍수는 때로 의미전달을 가로막고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같은 얘기를 다르게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떤 장치를 한 메이커가 먼저 개발해서 이름을 붙이면 다른 메이커에선 좀처럼 그 이름을 쓰지 않으려 한다. 자존심 때문이다.
DOHC 라는 명칭을 보자. "더블 오버헤드 캠 샤프트"의 머릿글자로 캠 샤프트가 두 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메이커들이 이 명칭을 사용하지만 토요타는 트윈캠 이라는 말로 부른다. 팁트로닉, 스텝트로닉, H매틱은 모두 수동변속 기능을 더한 자동변속기를 이르는 단어들이다. 4륜구동장치도 그렇다. 4모션, 콰트로, X드라이브, 4WD, 4x4, AWD 등 제각각이다.
글로벌 스탠더드, 모듈, 플랫폼 공유 등이 화두인 자동차산업이지만 정작 용어의 ‘통일’은 기대난망이다. 남이 쓰는 용어는 내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 있는 탓일까. 어쨌든 BMW가 SAV라고 분류하는 X3가 오늘의 시승 주인공이다.
▲디자인
X3는 BMW공장에서 만들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있는 MSF라는 업체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현재 판매모델 중 유일하게 위탁생산하는 모델이다.
세계적인 SUV시장 트렌드 중 하나는 소형화다. 랜드로버 프리랜더, 토요타 RAV4, 현대 투싼 등 작은 SUV들이 나오면서 소형 SUV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BMW의 패밀리룩이 어김없이 이 차에도 적용됐다. 키드니 그릴 아래 범퍼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이 눈길을 끈다. 막혀 있어야 할 것 같은 공간인데 트여 있으니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한 번 더 보게 된다.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형상이 새롭다. 휠베이스는 길고 오버행은 짧다.
엔진룸을 열어 보면 직렬 6기통 엔진이 세로로 자리잡고 있다. 배터리는 엔진룸에 없다. 뒤쪽 트렁크 공간에 위치해 있다.
X3의 트렁크에는 아기자기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느껴진다. 두 개의 고리로 붙들어 놓은 스페어타이어, 짐을 효과적으로 고정할 수 있는 잠금레일, 탈출용 받침대 등이 그렇다. 선루프는 파노라마 루프로 이름지었다. 그 만큼 넓게 보인다는 뜻을 담은 명칭이다. 기존 선루프 크기의 유리 두 개가 이어져 하나의 선루프를 만들었다. 이 선루프를 열면 확실하게 하늘을 볼 수 있다.
▲성능
차를 타다 보면 차마다 다른 느낌이 온다. X3는 맞춤양복을 입은 듯 ‘딱 맞는’ 느낌이다. 주차장에 차를 넣고 뺄 때, 골목길을 벗어나 도심주행을 거쳐 고속도로에 이르는 모든 구간에서 내 몸에 딱 들어맞는 감동을 준다. 차의 크기, 엔진의 성능, 시야, 차체의 반응 등등이 한데 어우러져 차에서 사람에게 전해지는 "감"이다.
그 느낌의 출발선에 엔진이 있다. 직렬 6기통 3.0ℓ엔진의 최고출력은 231마력이다. 8.1초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할 만큼 순발력이 있다. 그 순발력은 시속 150km를 넘는 속도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하면 시속 160km까지는 순식간에 도달한다. 가속할 때의 엔진소리는 부드럽게 귀에 감긴다. 엔진음은 사람의 몸에 튕겨 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부드럽게 안겨드는 소리다. 고속에서도 강하지만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 차에는 X드라이브라는 네바퀴굴림장치가 있다. 앞뒤로 동력배분을 최적화하고, 특히 코너링에서 최적의 파워 배분으로 안정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방향을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 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DSC)이 있어 네 바퀴에 걸리는 브레이크 파워도 각기 다르게 조절된다. 이 장치들로 인해 X3는 때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운전자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적당한 파워만 허락한다. 안정된 움직임을 위해서다.
DSC의 기능 중 하나는 HDC다. 가파른 언덕길을 안전하고 부드럽게 주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강력한 엔진 브레이크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 4WD의 로 레인지 기능이라고 보면 된다. HDC 상태에서도 가속 페달을 밟아 차의 속도를 높이면 HDC 기능은 자동으로 해제된다.
오프로드에서 안정적인 달리기는 기대했던 대로다. 노면이 패여 조그만 웅덩이가 계속 이어진 비포장길을 달리는데도 그다지 피곤하거나 흔들리는 게 없다. 그럼에도 이 차는 오프로드보다 도심 온로드에 더 어울린다. 이 차를 타고 거친 오프로드에 올라서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지간한 오프로드야 못갈 일이 없겠으나 자칫 차가 긁히고 다치기 쉬운 좁고 험한 길이라면 돌아가는 게 낫다. 기분 내다가 차 고치는 데 큰 돈이 들 수 있어서다. 비싼 차로 험로를 달리는 건 무모한 일이다.
안전 최고시속은 210km로 제원표에 표기돼 있다.
▲경제성
작은 SUV들은 이른바 꿈을 실현시켜주는 차다. 많은 이들이 이 다음에 꼭 타고 싶은 차로 SUV를 꿈꾸는 건 사실이다. 소형 SUV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들의 꿈은 좀더 앞당겨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작은 만큼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X3 3.0의 연비는 8.3km/ℓ 수준이다.
X3의 판매가격은 2.5i가 6,440만원, 3.0i가 7,250만원이다. 미디엄 사이즈의 SUV라고는 하지만 BMW가 만드는 프리미엄급인만큼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대다. 그러나 X5를 보며 BMW의 SUV를 꿈꿔 왔던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확"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