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트, 무난함 속에 빛나는 성능

입력 2004년08월01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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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폭스바겐 파사트를 시승했다. 국내에 들여온 지는 꽤 지난 모델이지만 아직 본지에서는 다룬 적이 없다.

폭스바겐은 대표적인 독일의 대중차메이커로 국내에서도 사랑받는 브랜드다. 그러나 파사트는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모델’이다. 골프나 뉴비틀의 그늘이 워낙 넓어서다. 그렇다고 우습게 볼 차는 아니다. 폭스바겐의 고향 독일에서는 골프와 맞먹는 인기를 누린다. BMW 3시리즈, 벤츠 C클래스와 각축을 벌이는 라이벌이기도 하다. 폭스바겐의 숨은 진주라 할 만한 파사트와 주말 데이트를 즐겼다.

▲디자인
뉴비틀의 튀는 디자인을 보며 폭스바겐을 접한 이들이라면 파사트를 대하면서는 조금 실망할 지 모른다. 하나도 튀지 않는 무난한 생김새이기 때문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에 큼지막하게 박힌 "W" 엠블럼을 감추고 차가 많은 주차장 한가운데 섞여버리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디자인 개성이 강한 차는 아니다.

대중차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무난함이다. 튀는 디자인, 강한 개성은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 불호가 명확히 갈려 두루두루 사랑받아야 하는 대중적인 차에는 맞지 않는다. 파사트에서 눈에 띄는 건 이 처럼 ‘명확한 대중성’이다.
앞뒤 어디를 봐도 4도어 세단의 정답같은 모범적인 모습이다.

엔진룸은 4기통 엔진을 세로로 놓은 특이한 배치다. 앞바퀴굴림차들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가로로 엔진을 두는 게 보편적인 레이아웃인데 세로를 택한 것. 파사트는 1.8 터보 외에도 네바퀴굴림인 V6 2.8 4모션이 있다. 즉 네바퀴굴림 방식까지 고려해 엔진 배치를 하다 보니 앞바퀴굴림인데도 세로로 배치했다.

실내는 깔끔했다. 대시보드와 계기판 모두 잘 정돈돼 있다. 손에 딱 잡히는 스티어링 휠 너머로 네 개의 원으로 구성된 계기판은 한 눈에 주행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계기판 가운데로는 연료잔량, 평균연비, 총 주행거리 등의 정보들이 운전자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성능
파사트 1.8 터보의 엔진은 매우 효율적이다. 우리로 치면 준중형에 불과한 엔진으로 150마력을 뿜어낸다. 배기량만 보고 “에게!”하다가 제원표의 출력을 보고 “제법인데”하게 된다. 꼭 제원표를 보지 않아도 이 차의 힘은 쉽게 체감할 수 있다.

킥다운 상태로 가속할 때는 아주 극적인 주행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프의 화살이 90도로 꺾어지듯 속도가 치솟고 엔진소리는 귓전을 맴돈다. 시속 160km를 쉽게 넘어선다. 겨우 1.8ℓ에 불과한 엔진에서 터지는 강한 파워를 실감했다.

엔진은 조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끄러운 건 아니다. 듣기 좋게 잘 조율된 엔진음이다. 엔진음은 노이즈가 아니라 사운드에 가깝다. 듣기 싫은 잡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조건 조용하게 만들기보다 적절한 수준에서 소리를 다스리는 상생의 기술이 돋보인다.

조향핸들은 묵직하다. 무거운 건 아니지만 핸들을 잡고 있으면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간다. 운전하는 데 적당한 긴장감을 갖기에 좋으나 장거리를 오래 운전할 때는 운전자를 힘들게 하는 요소다.

기본으로 장착되는 전자식 주행안정성 프로그램(ESP)은 때로 운전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스스로 판단해 출력을 조절한다. 핸들을 완전히 돌린 다음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차는 시원하게 달려 나가지 않는다. 타이어가 헛돌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출력이 조절되는 걸 느끼게 된다. 타이어의 미끌림을 막아주고 급한 상황에서 차의 균형을 잃지 않게 해주는 안전장치다. 물론 ESP 기능을 해제시키면 타이어가 헛돌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변속기는 5단 팁트로닉. 신경써서 체크하지 않으면 변속순간을 감지하기 힘들 만큼 부드럽고 감쪽같이 변속이 이뤄진다.

서스펜션은 하드한 편이다. 단단하게 차체를 받쳐줄 뿐 아니라 고속주행이나 코너링에서 차체의 흔들림을 가급적 적게 해준다. 때론 딱딱한 서스펜션을 통해 전해지는 노면충격에 신경쓰일 때도 있다. 하지만 평상적인 주행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딱딱한 서스펜션과 조금 민감한 듯한 브레이크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경제성
이 차의 판매가격은 4,170만원이다. 같은 엔진을 쓰는 아우디 A4 1.8 터보(5,000만~5,500만원대)나 같은 세그먼트로 경쟁관계인 BMW 318, 벤츠 C180보다 싸다. 대중적인 브랜드와 럭셔리 브랜드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대중적인 차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유럽차, 그 것도 독일차에 속하는 만큼 미국차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싸다. 렉서스 IS200과 비슷한 가격대로 토러스 3.0보다는 비싸다. 연비는 9.4km/ℓ.

폭스바겐이나 독일차의 가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파사트를 선택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더 싸고 높은 배기량의 차들이 있어서다. 문제는 이 처럼 한 눈에 보이지 않는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데 있다. 이를 수긍하면 지갑을 열고, 그렇지 못하면 지갑을 안연다. 지갑이 텅 빈 기자는 이 쯤에서 물러갈 수밖에 없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박형철 기자 phot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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