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통 한과 맛에, 풍류 넘치는 정자 멋!

입력 2004년09월2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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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팔월 한가위다. 고속도로, 국도할 것 없이 길이라고 뚫린 모든 길 위엔, 꼬리에 꼬리를 문 자동차 행렬이 이어진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길다. 긴 연휴동안 방 안에서만 뒹굴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집 밖으로 눈을 돌려 보자. 힘들게 내려간 고향 근처의 이곳저곳을 눈여겨 보면 의외로 숨은 구경거리가 많다. 경북 봉화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있다. 그래서 높고 험준한 산들이 많다. 구룡산, 선달산, 문수산, 옥돌봉, 삼봉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만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이 곳은 또 누대에 걸쳐 세거(勢居)해 온 종가와 양반이 유난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안동 권씨 집성촌인 봉화읍 유곡(酉谷)1리 닭실마을이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 상으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곧 닭이 알을 품은 듯한 지세라고 한다.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이 곳을 전국 8대 명당의 하나로 손꼽고 있다.

이 첩첩산중의 양반고을이 대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건 다름아닌 500여년간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있는 전통 한과 때문. 이는 어떻게 보면 주객이 전도된 결과일 수도 있다. 법도와 격식을 따지는 양반마을에서 제사에 쓰일 한과를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았다. 한과는 제사 음식 가운데에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고, 관혼례 등 대소사에서는 가문의 품격을 가늠케 하는 잣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조상을 받드는 마음에서 온 정성을 들여 만들었던 한과가 내림음식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닭실한과가 태어났다.

가문의 맛도 전하고 조상의 덕도 알리기 위한 닭실마을의 노력은 그 곳을 찾아가면 한눈에 볼 수 있다. 90여가구가 대부분 한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옹기종기 모여 살며 부녀자들은 마을회관에서 한과를 만들고 있다. 찹쌀 반죽에 멥쌀튀밥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긴 뒤 조청을 더해 이틀을 말린 다음 깨를 박는 강정이나 약과, 모두 손이 많고 시간도 걸리는 일들이다. 마을회관에선 한과 만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고, 구입도 할 수 있다. (054-673-9541)

안동 권씨의 시조는 본래 신라 왕실의 후예인 경주 김씨 김행(金幸)으로, 고려 건국 때 왕건을 도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왕건으로부터 ‘능히 지혜가 밝고 권도에 통달했다"고 해서 권씨 성을 하사 받았다.

닭실마을의 입향조는 무오사화 때 낙향한 충재 권벌(權) 선생으로, 안동 권씨의 중시조이다. 연산군 때 급제해 사간원과 사헌부를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나, 중종 때 기묘사화로 파직돼 낙향했다. 그 후 다시 복권돼 우찬성에까지 이르렀으나 을사사화에 연루돼 다시 파직당하고, 1547년에는 양재역 벽서사건에 얽혀 삭주로 유배 가서 생을 마쳤다. 그가 이 곳을 택하게 된 동기는 삼척부사로 있을 때 산수가 수려한 이 마을 앞을 여러 차례 지나다니면서 눈여겨 봐뒀기 때문이다.

명당으로 꼽히는 마을 한가운데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충재 권벌 선생의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형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종택 바로 옆, 우거진 숲 속에는 그윽한 운치를 자랑하는 정자 청암정이 앉아 있다. 충재 권벌이 기묘사화에 연루돼 이 곳에 은거하던 당시 큰아들 권동보와 함께 지은 정자다.

청암정은 거북 모양의 거대한 암반 한가운데 세워졌다. 정자가 앉은 바위 주위는 연못이 둥글게 감싸고 있다. 물가에는 아름드리 왕버들이 숲을 이루고, 정자 뒤쪽으로는 고목으로 자란 산단풍나무와 산철쭉이 멋스럽게 에워싸고 있다. 정자에 오르기 위해서는 연못 위를 가로질러 놓인 좁은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동남북쪽으로 3개의 문이 있으며 정자 외 충재 선생이 공부하던 별채가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처음 이 정자를 지을 때 온돌방으로 만들었는데 그 온돌방에 불을 넣으니 바위가 울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노승이 지나다가 말하기를 이는 거북 등에다 불을 지르는 것이니 마루방으로 만들라고 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주변에 연못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인즉 거북은 물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북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된 닭실마을의 고가들은 대개 ㅁ자형 구조가 많다. 충재의 종택에는 ㅁ자형 안채, 사랑채, 사당, 유물관, 청암정 등이 같은 담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사당 안에는 불천위(不遷位) 충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불천위란 어떤 경우에도 위패를 옮기지 않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국가에서 허락한 걸 말한다. 벌써 500년 가깝도록 제사를 지내고 있다.

종택의 유물관 안에는 몇 점의 보물급 문화재와 당시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것들은 한국전쟁 때 집 안에서 항아리에 넣어 땅 속에 몰래 묻어 보관해 왔다. 보물 제261호로 지정된 <충재일기>를 비롯해 <근사록>, <왕세자책례도감병풍>, <우향계축>, <퇴계선생서> 등등 한 집안에 이토록 많은 보물문화재를 보유한 곳도 없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제천IC-단양-영주-봉화를 거쳐 삼계리 4거리에서 좌회전해 1km 가량 달리면 왼쪽으로 닭실마을 입구가 보인다. 마을 안으로 300m 남짓 들어가면 충재 종택이 나온다.

*맛있는 집
닭실마을에서 4km 남짓 떨어진 봉성면으로 가면 유명한 봉화 자연산 송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봉화는 산깊고 골깊은 오지로, 이 곳에서 생산되는 송이는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봉화군 토속음식점으로 지정된 용두식당(054-673-3114)은 자연산 송이를 수집해 저장해 놓고 1년내내 송이요리와 자연송이 돌솥밥을 선보인다. 송이돌솥밥은 쌀, 좁쌀, 흑미, 밤, 대추, 은행, 호두, 감자, 당근, 완두콩, 검은콩 등을 넣은 밥을 돌솥에 지어 10분 정도 뜸을 들인 후 송이를 얹는다. 송이 특유의 은은한 향이 밥에 가득 배어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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