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드, 날렵한 헤비급 레슬러같은 SUV

입력 2004년09월2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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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모든 게 크다. 식당에서 나오는 스테이크는 한국에선 어른 둘이 먹다가도 남을 것 같고, 햄버거는 물론 함께 마시는 음료수 양도 어마어마하다. 마켓에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물건들은 쉴 새 없이 소비되고 다시 채워진다. 그래서 미국인들도 큰 것일까. 정치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미국"하면 떠오르는 건 이 처럼, ‘크다, 많다, 풍요롭다’ 등이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만났다. 5m가 넘는 덩치에 2.5t에 이르는 몸무게를 가진 풀사이즈 SUV다. 큰 차체 때문에 첫눈에도 마치 미국 사람을 보는 듯하다. 덩치만 큰 게 아니다. V8 엔진의 최고출력은 345마력. 엄청난 파워까지 갖춘 차다. 대강 보이는 첫 인상만으로도 미국의 기본 코드가 그대로 담겨 있는 SUV임을 알아챌 수 있다. 미국판 럭셔리 SUV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운전석에 조심스럽게 올랐다.

▲디자인
처음 이 차를 만나면 SUV라기보다는 스타크래프트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보닛 부분이 나와 있는 걸 제외하면 크기나 인테리어 분위기가 비슷하게 보인다. 차 높이도 1,945mm에 달한다. 물론 가격대로 보면 에스컬레이드가 몇 수 위다. 에스컬레이드는 스타크래프트밴과의 비교 자체가 거북스러운 일일 수 있다. 어쨌든 보는 입장에서는 스타크래프트밴을 닮았다는 인상을 받는 순간, 연애인들이 좋아하겠다는 연상작용이 일어난다. ‘풀 사이즈’, 즉 덩치가 큰 차가 주는 비슷한 이미지 때문이다.

캐딜락 엠블럼은 라디에이터 그릴에 당당하게 붙어 있다. 헤드램프, 엠블럼 등이 큼직큼직하게 배치됐다. 아기자기하다기보다는 덩치에 어울리게 큼직한 디자인이다. 불필요한 선이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디자인은 단순한 편이다. 일부 앞모습과 전체적인 보디라인에서 차의 아이덴티티를 살리고 디테일은 평범함을 넘지 않는다.

차의 보디 표면은 전체적으로 큰 단차없이 야무지게 맞물려 있고 틈새도 좁다. 그러나 뜻밖에도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가 범퍼와 만나는 부분에 엄지 손톱이 드나들 만큼의 틈새가 벌어져 있다. 보닛은 라디에이터 그릴 윗 부분에서 여닫는데 큰 틈새가 아래에 왜 있는 지 의아하다.

실내는 3열 시트까지 마련됐다. 제원표에는 7인승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6명이다. 2열 시트가 독립적으로 분리된 2개이고, 3열 시트 역시 2개여서 합이 여섯이다.

사이드 브레이크는 발로 밟는 풋브레이크에 시프트 레버는 컬럼식이다.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구조다. 운전석 좌우 공간이 여유있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차폭이 넓어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사이드 브레이크 페달이 왼발을 어중간하게 만든다. 운전하다 긴장을 풀 겸 왼발을 앞으로 쭉 뻗어보려다가 그 페달과 부딪히는 일이 생긴다.

워낙에 SUV는 시야가 높아 운전자를 편하게 해주지만 이 차의 눈높이는 더 높다. 어지간한 다른 SUV들조차 눈 아래로 보일 정도다. 차체는 물론 시트 포지션까지 높아서다. 그래서 운전석에 앉으려면 사이드 스텝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마치 트럭에 타는 기분이다. 그렇지 않고 보통 SUV를 타듯 한 번에 오르려면 자세가 어정쩡해지고 불편하다.

시트는 푹신하고 공간은 넓다. 실내 바닥은 평평하다. 드라이브 샤프트가 지나면서 생기는 센터터널이 없다. 차고가 높은 데서 오는 잇점이다. 실내에 앉으면 저절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천천히 세상을 유랑하는 방랑자처럼 서두름이 없어진다. 그냥 시트에 푹 파묻혀 깊은 잠을 자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운전석 주변은 마치 항공기의 조종공간인 듯 운전석을 중심으로 여러 계기들이 나열됐다.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은 운전자의 키에 맞춰 위치를 조절할 수 있다.

▲성능
가속페달을 밟아 2.5t의 덩치를 움직였다. 차체는 무겁고 엔진은 강하다. 어떤 반응이 올까 궁금했다. 마력 당 무게비, 즉 1마력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약 7.23kg으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나 정지상태에서 출발할 때는 차체 반응이 가볍지 않다. 스티어링 휠도 조금 무거운 느낌을 준다. 반면 일단 첫 발을 떼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2.5t이라는 무게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정지상태에서 100km/h의 가속성능은 9초. 마치 날렵하게 드롭킥을 구사하는 헤비급 레슬러같다.

가속 페달을 꾹 밟으면 거침없는 가속이 이어진다. 하지만 시속 160km를 넘기고 180km에 이르면서는 가속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계기판의 속도계엔 시속 200km까지만 표시됐다. 뿐만 아니다. 변속기는 자동 4단이다. 자동 5단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350마력 가까운 8기통 엔진에 4단 변속기를 단 것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시속 80km부터 140km 정도의 속도영역에서 이 차는 최고의 쾌적함을 갖췄다. 꽤 차가 흔들릴 것 같은 고속에서도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는 마치 비행기를 탄 듯한 편안함을 제공한다. 푹신한 소파처럼 차의 서스펜션도 소프트한 편이다. 그렇다고 부드러운 승차감이 멀미를 일으키거나 장애물에 어쩔줄 몰라하며 출렁거리는 약점이 되지는 않았다.

정밀하게 제어되는 서스펜션이 장애물을 지날 때는 충격을 충분히 흡수하면서도 차의 흔들림이 적도록 만들어준다. 서스펜션이 소프트하면 장애물을 건넌 뒤 서너 차례까지 이어지는 여진, 즉 잔진동이 승객과 차체를 피로하게 만든다. 그러나 에스컬레이드는 한 차례의 진동만으로 차체의 자세를 흔들림없이 잡는다. 잔진동은 거의 느끼기 힘든 수준.

에스컬레이드는 차의 앞면이 수직에 가깝게 만들어져 바람소리를 피하기는 힘든 체형이다. 아니나다를까 시속 100km를 넘으면서 앞창에 부딪히는 바람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엔진소리는 그리 신경쓰이지 않는다.

놀라지 마시라. 이 차는 배기관이 하나다. 2.0ℓ짜리 엔진들도 듀얼 머플러라며 뽐내는 마당에 8기통 엔진에 머플러 하나를 달았다.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은 그런 장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운전자를 안심시킨다. 4륜구동의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운전자라면 차를 신뢰하는 정도도 훨씬 깊어진다. 고속에서도 차가 안정되고 무리한 코너에서도 핸들을 잡은 운전자가 불안을 느끼지 않는 건 바로 4륜구동 덕분이다. 하지만 이 차는 다른 SUV들보다도 키가 커 무리한 코너링을 하기에는 심리적인 부담이 크다. 무게중심이 높아 차의 자세가 흐트러질 위험성도 그 만큼 크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요즘 북미시장에서는 SUV의 안전성에 의문을 표하는 경향이 짙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SUV가 훨씬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충돌해도 덜 찌그러지고 탑승객도 덜 다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차가 전복될 정도로 무리하게 운전하지 않는다면, SUV가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경제성
에스컬레이드는 캐딜락의 명예를 걸고 만들어진 럭셔리 SUV다. 얼마에 파느냐는 메이커 혹은 브랜드의 자존심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자존심만 내세우다가는 시장에서 외면받을 위험이 크다. 자존심을 세워도 시장이 받아들이는 브랜드는 그리 많지 않다. 캐딜락은 명실상부한 GM의 럭셔리 브랜드다. 그 캐딜락이 만드는 최고의 SUV가 바로 에스컬레이드다. GM코리아가 정한 이 차의 가격은 1억1,850만원. 미국차로서는 드물게 1억원을 넘겼다.

럭셔리여서 그런 지 경제성에 대해서는 그리 큰 신경을 쓴 것 같지 않다. 비싼 가격도 그렇지만 연비도 상상을 초월한다. 메이커가 밝히는 공식 연비는 5.6km/ℓ. 연료비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들이 좋아할 만한 차라고는 해도 뜨지 않은 연예인이라면 부담이 되겠다. 과장하면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연료게이지가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사실 살펴 보면 이 차에는 연비향상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요소들이 여럿 있다. 상시 4륜구동장치, 큰 배기량, 무거운 차체 등이다. 비교적 기름값이 싼 미국시장에서는 별 문제가 안될 지 모르겠지만 기름값이 사상 최고가를 하루가 다르게 갈아치우는 한국에서는 감점요인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강경숙 기자 cindy@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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